<편집자의 말>
6월이 되면 저도 모르게 한국전쟁의 기억과 통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삼팔따라지의 자식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다가, 세계 여기저기서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라서 한층 더 평화와 통일이 간절해집니다.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고, 핵전쟁 운운하는 판이니 한층 더 그렇습니다.
6월을 맞으며, 통일을 염원하는 시 몇 편을 함께 감상합니다. 시를 읽으며, 소설가 무라카미의 말을 곱씹어봅니다.
“음악(시)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 돼 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총과 칼을 땅바닥에 버리도록 합니다.
우리가 지금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까닭은 극복의 지혜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뜨겁게 하나로 뭉쳐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철새들이 마음껏 오가는 세상을 향해…
되었다, 통일
윤석중 (1911-2003)
되었다, 통일. 무엇이? 산맥이.
그렇다! 우리나라 산맥은
한 줄기다. 한 줄기
되었다, 통일. 무엇이? 강들이.
그렇다! 우리나라 강들은
바다에서 만난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꽃들이.
그렇다! 봄이 되면 꽃들
활짝 핀다, 일제히
되었다, 통일. 무엇이? 새들이.
그렇다! 팔도강산 구경을
마음대로 다닌다
통일이 통일이
우리만 남았다. 사람만 남았다
통일공부
김규동 (1925-2011)
해방 이듬해
북녘 고향에서
어머니는
담배질이 심한 아들 위해
성냥 한갑 배급 받는다고
반나절을
뙤약볕에 줄서 기다렸다
양곡 배급 탈 때는
주는 대로 고맙게 받고
쌀 한줌
더 받을 생각하지 않았다
죽을 끓였으나
어머니는
욕심 부리는 일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잘 살고
어떤 사람은 아주 못 사는
남한사회에서
검소하게 사는 방법을
어머니의 지난날에서 배운다
통일공부의 첫단계는
이제부터라도 욕심을 줄이는 일이다
끊어진 철길
신경림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민통선 안 양지리에 사는 농사꾼 이철웅씨는
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꿀 따는 것이 사는 재미다
사이다병이나 맥주병에 넣어두었다가
네댓 병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
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주며 말한다
"이게 남쪽벌 북쪽벌 함께 만든 꿀일세
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세밑 사흘 늦어 배달되는 신문을 보면서
농사꾼 이철웅씨는 남방한계선 근처 자연꿀따기는
올해부터는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한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인근
버렸던 땅값 오르리라며 자식들 신바람 났지만
통일도 돈 가지고 하는 놀음인 것이 그는 슬프다
그에게서는 금강산 가는 철길뿐 아니라
서울 가는 버스길도 이제 끊겼다.
눈발을 타고
김지하 (1941-2022)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머리칼 휘날리며
단 한 번 남쪽 하늘 바라보던
당신 얼굴을
나는 어제 보았다
내리는 눈발 속에서
떨어지는 물의 속도를 거꾸로 타고
잉어는 삼단 폭포를 뛰어오른다
내리는 눈발을 타고
눈물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잠시라도 잠깐이라도
북녘 하늘을 향해
당신 눈빛을 보고 싶다.
우리 땅의 사랑노래
김용택
내가 돌아서
그대 부산히 달려옴같이
그대 돌아서드래도
내 달려가야 할
갈라설래야 갈라설 수 없는
우리는 갈라져서는
디딜 한 치의 땅도
누워 바라보며
온전하게 울
반 평의 하늘도 없는
굳게 디딘 발밑
우리 땅의 온몸 피 흘리는 사랑같이
우린 찢어질래야 찢어질 수 없는
한 몸뚱아리
우린 애초에
헤어진 땅이 아닙니다
철망 앞에서
김민기
내 맘에 흐르는 시냇물 미움의 골짜기로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떼 물 위로 차오르네
냇물은 흐르네 철망을 헤집고
싱그런 꿈들을 품에 안고 흘러 굽이쳐 가네
저 건너 들에 핀 풀꽃들 꽃내음도 향긋해
거기 서 있는 그대 숨소리 들리는 듯도 해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 보네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 보네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들어봐 저 소리
아이들이 울고 서 있어 먹구름도 몰려와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저 위를 좀 봐 하늘을 나는 새 철조망 너머로
꽁지 끝을 따라 무지개 네 마음이 오는 길
새들은 날으게 냇물도 흐르게
풀벌레 오가고 바람은 흐르고 마음도 흐르게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하나됨 굿
장소현
백두산에 무궁화꽃
한라산에 진달래꽃
나란히 나란히 웃으며
피어 춤출 때
말없이 우리 잡은 손에
눈으로 통하는 더운 가슴에
넘실대는 바다
헤어졌던 아픈 사연
묻지 말고 묻지 말고
출렁이는 저 바다처럼
백두산에 진달래꽃
한라산에 무궁화꽃
나란히 나란히 피워
노래처럼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