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이론(Savana Theory)이 있다. 인류의 탄생과 진화는 700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숲에서 시작되었고 수렵 생활을 하며 그 방식을 오래 유지해 왔다. 그러다 농경과 축산을 통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숲에서 탈출한 시기가 대략 1만 년 전. 결국 인류 역사의 99.9 % 이상을 숲에서 보냈다는 설명이다.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류 역사의 1%도 안 되는 1만 년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에 턱없이 짧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 심리적 유전 요인은 숲에서 살았던 조상들과 별로 차이가 없이 숲 생활에 알맞게 짜여 있는 것이다. 결국 인류 초창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급속한 환경변화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데 인간의 두뇌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게 ‘사바나 이론'이다. 환경성 질환자가 급증한다. 숲에서 뛰쳐나온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진통이란다. 그 치유를 위해 숲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산림치유에 관한 여러 연구 실험이 행해지고 그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15분간의 자연환경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몸은 쾌적함을 느끼고 1박 2일의 산림 휴양 활동 후에는 인체의 면역기능이 급격히 증가하며 항암효과도 높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증가한 면역력이 1개월 동안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 또한 놀랍다. 숲이 가진 건강의 효과는 결국 인간과 숲의 원초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에 찾은 세코이야 국립공원의 산과 숲과 길을 걸으며 보낸 2박 3일은 그렇게 우리를 토닥이고 치유하고 보듬어주었다. 웨스턴 시에라의 세코이야 국립공원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10그루 중 6그루가 살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나무 ‘제네랄 셔먼트리’. 밑둥 둘레 31미터, 높이 84미터, 수명 2500년. 경이로울 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캘리포니아 고산에서만 자생하는 세코이야 나무는 1900년대 초 서부 개발 때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지금은 멸종위기의 나무이다. 100년도 살지 못할 인간들이 수천 년의 나무들을 마구 베어버린 그 어리석음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세코이야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역 Moro Rock. 거의 수직으로 좁고 가파른 바위산을 파서 만든 400여 계단 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면 저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13,000~14,000피트 웅장한 봉우리들이 보이고 그 봉우리들의 이름과 높이를 알 수 있게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평평한 정상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진 그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맛본다. Lodge Pole 트레일 헤드에서 왕복 3.4마일 토포카 트레일에서 만난, 좌우로 꿈틀대며 호기롭게 내리꽂는 물줄기가 장관이던 Tokopah Falls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백미 Alta Peak 등정은 왕복 14마일, 높이 11,000피트, 등반고도 3,840피트의 쉽지 않은 코스이다. 오래 기다린 기대감으로 모두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초입부터 이야기꽃을 피우고, 그 말소리, 웃음소리, 숨소리도 어느덧 산의 일부가 된다. 차츰 숨이 거칠어지고 대화가 끊길 즈음 2.4마일 지점 Mehrten Meadow에서 눈 덮인 웨스턴 시에라 고봉들의 줄지어선 환상적인 절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절경에 압도당한 우리는 그저 침묵한다. 눈길 산행의 더딘 발걸음이 정상 1마일 여를 남기고 급격한 눈길 경사로에서 멈춘다. 아무래도 안전을 위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하얗게 눈을 뛰집어 쓴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영봉들, 아득한 수천 피트 발아래 울창한 숲과 바위의 광대한 세코이야 국립공원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내 몸과 마음이 며칠 동안 온전히 정화되고 있었음을. 그래, 이런 영혼의 정화 과정이 나를 살게 하리라. 하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