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진> 시 : 울라브 하우게, 사진 : 김인경
2024.07.31 15:10
▲ 김인경 사진작품 <숲속의 숨은 이야기>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넒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함께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시인 울라브 하우게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1994)는 현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이는 고향 울빅(Ulvik)에서 원예학교를 졸업한 뒤 평생 정원사로 일하며 400여 편의 시를 쓰고, 200여 편의 시를 번역했다.
그는 매일 노동했으며, 북유럽의 차가운 조용함 속에서 한 손에 도끼를 든 채 시를 썼다. 가장 좋은 시는 숲에서 쓰였다. 그렇게 꿈꾸고 존재를 열면서 당시 시의 형식에서 자유롭게 벗어났다.
그러니까, 배워서 쓴 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시를 썼기에 형식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공부했고, 200여 편의 시를 번역했다. 또한, 문학,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책을 탐독했던 지적 방랑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