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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경 사진작품 <숲속의 숨은 이야기>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넒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함께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시인  울라브 하우게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1994)는 현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이는 고향 울빅(Ulvik)에서 원예학교를 졸업한 뒤 평생 정원사로 일하며 400여 편의 시를 쓰고, 200여 편의 시를 번역했다. 
  그는 매일 노동했으며, 북유럽의 차가운 조용함 속에서 한 손에 도끼를 든 채 시를 썼다. 가장 좋은 시는 숲에서 쓰였다. 그렇게 꿈꾸고 존재를 열면서 당시 시의 형식에서 자유롭게 벗어났다. 
  그러니까, 배워서 쓴 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시를 썼기에 형식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공부했고, 200여 편의 시를 번역했다. 또한, 문학,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책을 탐독했던 지적 방랑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