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발명왕이 오셨네요. 기쁘다 발명왕 오셨네, 반갑게 맞으라! 그런데 잔뜩 시무룩한 것이 어째 이상하네요. 무슨 일이 또 터졌나?
“이건 좀 어렵겠지?”
발명왕이 중얼거리며 뭔가를 내미는군요. 불쑥 내미는 바람에 잠깐 놀랐는데, 받아서 살펴보니 조그맣고 아주 잘 생긴 십자가로군요.
“아니, 이건 십자가 아닌가? 느닷없이 십자가는 왜?”
“응, 조금은 특수한 십자가지… 이거이 무슨 십자간고 허니…”
설명을 들어보니,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네요.
무슨 십자가냐 하면, 보통 십자가가 아니라 신앙심을 측정하는 특수 십자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를 지니고 있으면 그 사람의 현재 믿음의 깊이와 강도, 순수성, 절실한 마음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신앙심의 강도에 따라 십자가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우뚱 휜다는 이야기예요.
아주 심해지면 십자가가 45도 각도로 기울어서 X자가 되도록 설계되었답니다. 십자가가 기울어서 X자가 된다? 참 기발한 발상 아닙니까?
아무튼 그렇게 신앙심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만있어 보시게… 이거 목사님들이 은근히 좋아하겠는데…”
“신앙심을 점수로 매긴다는 게 아무래도… 하나님이나 하느님께서 못마땅하게 여기시지 않을까?”
“글쎄… 그런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도들 각자가 이걸 보고 각성하고 반성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구만… 목회자들도 신도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니 목회 방향을 바로 세우는데 도움이 될 거고…”
“물론, 나도… 그렇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발명하긴 했는데…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잘못 사용되면…”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라는 이야기올시다. 나는 어지간하면 내 친구 발명왕을 인정하고 격려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이건 정말 도저히 안 되겠다 싶네요. 적극적으로 말려야겠어요.
왜냐구요?
예배시간에 신도들이 이 십자가를 지니고 예배를 보면 신도들의 신앙심 강도가 하나로 집계되어 예배당 정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십자가에 반영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삿된 생각을 가지거나 건성건성 예배를 보는 신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십자가도 삐딱하게 기운다는 거예요. 특히 돈독이나 허세에 민감하게 반응한 답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께서 십일조 이야기를 힘주어 강조하면 십자가가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삐뚜룸해진다는 이야기올시다.
내 친구 발명왕이 제작한 특수 센서를 설치하면 그런 종합적 측정이 가능하다는군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한데, 그 다음이 문제올시다.
이렇게 집계된 신앙심 강도가 예배당 안의 커다란 십자가를 통해 교회 건물에 설치된 대형 십자가로 전달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교회의 신앙심이 만천하에 고스란히 공개되는 것이죠. 십자가만 보면 누구나 한 눈에 믿음 좋은 교회냐 날라리 교회냐를 알 수 있는 겁니다. 이건 대단히 곤란한 일이죠. 교회의 일급 경영기밀이 공개되는 것이니 단순한 일이 아니지요.
“포기하시게! 이건 정말 안 되겠네. 세상에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종교, 언론, 벌집, 마누라 염장… 그 중의 으뜸이 종교라!”
“역시… 포기해야겠지?”
“빠를수록 좋겠소이다.”
“포기 기념으로 곡주나 한 잔 하세…”
내 친구 발명왕이 그렇게 알맞게 취해 쓸쓸하게 돌아간 뒤… 혼자 생각해보니, 만약에 그‘조금은 특수한 십자가’가 실용화된다면 사방에 참 대단한 풍경들이 펼쳐질 것이 뻔하니… 섬뜩해지더군요.
가령, 어두운 밤에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붉은 네온 십자가가 잔뜩 보이지요. 즐비하게 늘어서서 성령충만 경쟁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내 친구 발명왕의‘조금은 특수한 십자가’가 기능을 발휘하면, 그 붉게 빛나는 네온 십자가들이 저마다 삐딱빼딱 기우뚱 휘영청 개우뚱 온통 난리가 벌어질 것 아닙니까! 그 꼴을 어찌 봅니까, 무슨 추상미술도 아니고…
일찍 포기하길 정말 잘한 일이죠! 아무렴, 잘 했군 잘 했어!
잠깐! 이 친구 혹시 목탁소리 가지고 불교 신앙심 측정하는 기계 만드는 거 아냐? 말려야지, 암 말려야지, 바짝 말려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