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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10월은 문화의 달입니다. 한국의 10월 달력은 개천절, 한글날, 국군의 날, 노인의 날, 체육의 날, 경찰의 날, 유엔의 날, 독도의 날 등등 법정 기념일로 빼곡합니다. 임산부의 날(10월10일)이라는 것도 있고, 10월5일은 <세계 한인의 날>로 정해져 있다고 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계절이 되면 한글의 위기를 슬퍼합니다. 세계에ㅓ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우리 한글이 지금 단단히 병들어 있습니다. 일본말 찌꺼기도 아직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는데, 영어가 밀려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거기에다 속어와 신조어가 마구잡이로 무분별하게 뒤섞여서…

  세종대왕님 뵈올 낯이 없습니다. 

  “미국 동포 주제에 무슨 한글 걱정이냐 영어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것도 맞는 말씀인 것 같지만, 지금은 눈부신 지구촌 시대인지라 한국의 신조어가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언어는 정신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위기의 우리말 구하기>

 

 “영어를 모르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일간 신문에 얼마 전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어보다 영어를 잘해야만 하는 현실을 비판한 기사다. 생활환경이 온통 영어 범벅이고,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야 하고, 그러니 어려서부터 영어 공부에 목을 매야 하는 기묘한 현실… 

  그런 시각으로 한국의 지금 현실을 살펴보면, 일상생활에서 한국말처럼 쓰이고 있는 영어가 너무도 많다. 텔레비전 드라마, 뉴스, 연예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나는 모르는 영어들이 당연하게 쓰인다. 아,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영어를 이렇게 잘 했나!?  

  가령, ‘와이프’라는 영어가 ‘아내’라는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한지 오래다. 아내란 ‘집안의 태양’이라는 깊은 뜻을 지닌 좋은 말이다. 집사람, 안사람 등도 정겨운 호칭인데, 요즘 한국 사람들은 ‘와이프’라는 낱말을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버린 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많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의 걱정이 크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없지 않다. 온 국민이 이처럼 영어 공부에 전력투구로 매달려 전념하니, 한국의 국제 경쟁력이 막강해지고, 세계화의 앞날이 밝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예 영어를 국어로 정해서 세계화를 앞당기지.... 

  정말 그럴까? 해방 80년이 되어가도록 일본어의 찌꺼기도 아직 청산하지 못했는데, 영어가 이렇게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게 내버려두면… 어쩌자는 건지? 아찔하다. 이건 머리칼 노랗게 염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따위의 꼰대 잔소리를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어 벙어리’ 미국시민인 내 신세를 변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   *   *

  영어나 일본말 찌꺼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속어와 무분별한 신조어들이다. 매우 심각하다. 

  얼마 전에 ‘읽씹’이라는 낱말 한국을 온통 뒤흔들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읽씹? 어느 외국에서 들어온 욕설인 줄로 알았다. 검색을 해보니 설명이 나와 있다. 

  “문자나 메신저, SNS의 메시지 내용을 읽었음에도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속어.” 

  ‘안읽씹’이라는 말도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 속어로구나, 그러면 그렇지! 헌데, 메시지를 씹는다구? 왜 씹어? 맛있나? 메시지가 소시지의 일종인가? 씹는 거 좋아하다 보면 치과의사 좋은 일만 시키는 건데… 

  그러니까, 읽기는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기분 나쁘다, 자존심 상한다. 뭐 그런 말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보고도 대답이 없으면 ‘보씹’이고, 듣고도 묵묵부답이면 ‘듣씹’이 되는 건가? 이건 너무 하다.

  아무튼 그놈의 ‘읽씹’ 때문에 한국 정치판이 온통 난리판이었던 모양인데, 나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알아봤자 도움될 건 개뿔도 없고, 애매한 혈압만 오를 게 뻔하다. 

  다만,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속절없이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는 우리말의 신세다. 글쟁이 주제에 그런 아픔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무기력이 부끄럽고 서글프다.  

  이런 터무니없는 신조어를 아무런 비판도 망설임도 없이 대서특필하고 왕왕 떠들어대는 언론, 뭐 얻어먹을 거 없나 눈치 살피는 정치판, 재미있다고 낄낄대며 즐기는 대중, 못 본 척 못 들은 척 고상한 지식인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읽씹’을 실감나게 발음하다가 혀 깨문 인간이 한둘이 아니란다. 

  세종대왕께서 내려다보며 눈물 흘리고 계신다. 극대노하지 않으시는 것만도 성은망극이다. 이런 신조어를 ‘야민정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감히 훈민정음에 빗대다니, 무엄하도다! 

  내친김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신조어는 엄청나게 많다. 놀라울 정도다. 먹방, 먹튀, 라떼는 말이야, 불금, 내로남불, 가성비처럼 제법 익숙해진 것부터 웃안웃, 뇌피셜, 완내스(완전 내 스타일), 케바케(case by case), 텅장(텅 빈 통장)처럼 방금 탄생한 외계어 수준의 신조어에 이르기까지 현란하게 생성소멸을 거듭하고 있다. 드디어 <신조어사전>이 나왔을 정도다. 

  신조어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많은 것이 줄임말이다. 젊은 세대들의 생활방식이나 통신기기의 획기적인 발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긴 글 읽기 싫어하고, 사색은 질색하는…

  쌤(선생님), 낄끼빠빠, 갑툭튀, 단짠, 넘사벽, 듣보잡,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등 기발한 재치가 빛난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은 그렇게 아껴서 모은 시간에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하다. 

  이런 말 중 ‘틀딱’이라는 낱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틀니+딱딱의 줄임말로, 틀니를 딱딱거리며 잔소리하는 꼰대를 칭하는 말이란다. 아이구, 무서워라, 죽어도 틀니는 하지 말아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과도한 신조어 사용은 언어를 망가뜨리고 세대 간 단절을 부른다. 심각한 문제다. 특히 신조어에는 은어, 비속어 등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서 언어의 품격을 지키는 점에서 큰 문제다.

  우리말의 순수성과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는 노력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신성한 임무이다. 엉터리 신조어에 맞서, 우리말 구하기 대작전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다. 생각은 굴뚝 같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죄송합니다, 세종대왕님!<*>세종대왕.jpg

 

훈민정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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