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이 불러서 널리 알려진 <모란 동백>은 작가 이제하 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다.
조영남은 이 노래를 매우 아껴서“내가 죽으면 장례식 때 이 노래를 후배들이 합창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잔잔히 흐르는 멜로디와 노랫말이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노래는 50대 이상의 남성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사를 찬찬히 새겨보면, 삶의 끄트머리에 와 닿아있는 쓸쓸한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조영남이 어느 공연무대에서 이 구절을 부르다 목이 메어 3번이나 다시 부른 일화가 있다. 이 노래는 조영남의 은퇴음반 <은퇴의 노래>에 실려 있다.
나훈아, 설운도 등 많은 가수들도 자기 나름의 분위기와 맛으로 이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작곡자인 이제하가 부른 노래를 으뜸으로 꼽는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거친 음성으로 소박하게 부르는 울림이 일품이다.
이 노래는 이제하가 김영랑, 조두남을 연모하며 글을 쓴 게 노랫말이 되었고, 거기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제하는 <모란이 피기까지>를 쓴 김영랑(1903년~1950년) 시인을 좋아했다. 어느 날 가곡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1912년~1984년)의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이란 노래를 듣던 중 문득 악상이 떠올랐다. 첫 멜로디가 너무 마음에 들어 김영랑 시를 접목, 작시했다.
제목은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 그는 시에 멜로디를 붙여 공식, 비공식자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로 불렀다. 곧이어 자신의 노래모음집 <빈 들판> 음반(CD)에 이 곡을 실었다.
이 노래를 만들어 처음 부른 이제하(李祭夏)는 시인, 소설가, 화가, 싱어송라이터 등 ‘전방위예술가’다. 조영남이 노래 외에도 화가, 저술가, 방송인, 라디오 DJ로도 활동한 것과 비슷하다.
193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그는 홍익대 미대에서 조각과 서양화를 공부했고, 여러 신문 잡지에 시, 동시, 동화, 소설 등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여,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쳤다.
그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호소하는 작가로 이름나 있다. 회화적 문체, 시적 상징수법, 공간의 확대와 심화를 노리는 기법으로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굳혔다. 그의 작품엔 환상과 현실이 역동적으로 작용, 우리 시대의 현실적 문제들이 여러 이미지로 담겼다.
창작영역이 그림, 영화까지 넘나드는 종합예술가로 활동하며, 1987년엔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업과 영화주제가를 작곡하기도 했고, 한국일보와 잡지에 영화칼럼을 연재하고 개인전을 여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표출을 꾀했다.
이 글은 <여성소비자신문>에 실린 왕성상 언론인/가수의 칼럼을 참고했습니다. <자료 정리: 장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