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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행복 전도사 제갈 박사는 방글방글 웃으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너무도 착한 치매라고 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치매에 걸렸는데, 증상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하루종일 행복이 흘러넘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방글방글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행복한 표정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헌날 웃음꽃 만발이니… 가족들이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현대의학은 평균적이지 않으면 병이라고 진단한다. 행복과 웃음은 인간에게 아주 좋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평균치보다 심하면 병이 되는 것이다.

  제법 이름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안개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난생 처음 보는 증상이고, 원인은 짐작조차 못하겠다며 큰 병원을 추천해줬다.

  으리으리 거창한 병원에서 최첨단 과학을 총동원한 초정밀검사를 거듭한 결과,‘너무도 착한 치매’라는 잠정 진단이 내려졌다. 물론 정식으로 공인된 병명은 아니다.

   제갈 박사의 증상은 지난날의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임은 분명한데, 요상하게도 나쁜 기억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좋고 기쁘고 즐거운 기억들만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특별히 아주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들만 남아 갈수록 또렷하고 생생해지는 특이한 증상이었다. 그러니 하루종일 생글생글, 누구를 만나도 방긋방긋…

   허허, 그게 무슨 병이냐? 그것이야 말로 누구나 바라는 증상 아니냐? 늘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 

   사람들은 오히려 부러워했다. 그런 병이라면 나도 당장 걸리고 싶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난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령, 장례식장에 참석해서 시종일관 싱글벙글하거나, 다른 이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방긋방긋 히히… 심지어는 어머니가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소식에도 생긋생긋하자 더럭 겁이 난 가족들이 병원으로 모시고 갈 지경이었다.

  세상일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제갈 박사의 병도 전혀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제갈 박사가 졸지에 세계 의학계의 연구꺼리가 되어 화제를 모으며, 이상하게 떠오른 별이 된 것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연구기관들과 학계의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연구비도 넉넉하게 확보되었다. 

   의학계의 조심스러운 추정은, 제갈 박사의 경우, 뇌에서 슬픔 분노 대립 투쟁 등 부정적인 것에 관계된 부분이 어떤 원인에 의해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이었다. 비유하자면, 그림자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제갈 박사 뇌의 어떤 부분이 망가졌는지를 알아내면--- 그 결과를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인간의 기분을 항상 즐겁게 유지해주는 약을 개발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훨씬 건강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노벨의학상은 따놓은 당상이고, 잘하면 노벨평화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살아서 생글생글 방긋방긋 웃고 있는 제갈 박사의 뇌를 쪼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생체실험의 시대가 아니다. 또, 뇌를 쪼개본다고 어디가 망가진 건지 쉽게 알 수도 없다. 실제로 현대의학은 인체의 신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무튼 그 바람에 제갈 박사는 전문가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다. 방긋방글 웃으며 끌려 다녔다. 온 세상의 모든 실험실로 끌려 다니고, 온갖 놈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물어본 것 또 묻고, 사진 박고 비디오 돌리고 웃음소리 녹음하고.. 졸지에 인류평화와 행복을 위한 실험 대상이 되었으니, 세상에 그런 야단이 없다. 

   그런 연구와 실험이 인류평화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데 매몰차게 거절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시달릴 때마다 약간씩의 돈이 들어오니, 가족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했다. 

   그런 큰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갈 박사는 그저 천진난만하게 싱글벙글 방긋방긋…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루종일 밝게 웃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문득 두려워지면서 공포의 그림자가 밀려온다는 사실을…

   증상이 심해지고, 급기야 제갈 박사는 자면서도 벙글벙글 웃는 지경에 이르렀다. 웃으면서 자는 사람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기보다는 무섭고 두렵다. 정밀 검사를 해보니, 꿈도 기쁘고 즐겁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것만을 골라서 꾼다는 것이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결혼식 날의 두근거리던 감격, 첫 아이 태어나던 기쁨, 큰 딸아이의 아장아장 첫 걸음마, 박사학위… 그런 기쁨들만 바로 눈앞의 일처럼 생생하고 아주 섬세하게 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난 일, 젊은 시절의 억울하기 짝이 없는 감방살이… 같은 일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낮 동안의 일상생활에서나 꿈속에서나 마찬가지였으니, 말하자면 제갈 박사는 한 순간도 빠짐없이 웃고 있는 셈이다. 이걸‘너무도 착한’치매라고 부른다니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달리 짜장면을 자주 찾았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며 맛나게 먹었다. 먹으면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읍내에 나가 처음 먹어본 짜장면의 황홀한 맛을 아주 실감나게 설명하곤 했다. 벙글벙글 웃으면서…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러더니… 얼마 후 제갈 박사는 방긋방긋 웃으며 세상을 하직했다. 왜 불쑥‘너무도 착한 치매’에 걸렸는지가 불분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왜 느닷없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현대의학은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방긋방긋 웃으며 자다가, 아침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는데, 의학적으로는 숨이 막혀 심장이 멈추었다는 설명이 고작이었다. 

  죽은 제갈 선생의 온 얼굴에 화사한 웃음이 가득했다. 아무리 해도 펴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왜 그걸 펴려고 애썼는지, 펴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네 인생이란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의 행복 전도사 제갈 박사가 생전에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웃음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행복해서 웃기도 하지만, 웃으면 행복해진다. 웃자! 웃어서 남 주나?”

  제갈 박사 특유의‘웃음 행복론’이다.

  제갈 박사의 묘비명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다.  “웃다. 가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객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행복하게 웃으며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로세!”

  하지만, 아무도 너무나 착한 치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방긋방긋 웃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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