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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아니 벌써!? 어느새 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고갯마루에 섰네요. 송구영신,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계절…

  올해 수확은 어떠셨나요? 풍성하셨을 줄로 믿습니다.

  2024년 올 한해도 글자 그대로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지요. 기쁘고 즐거운 일, 안타까운 일, 슬픈 일, 후회스러운 일, 아슬아슬 위태로웠던 일…

  감탄사 없는 사회, 느낌표가 실종된 세월을, 그것도 바다 건너 타향살이를 하려니 참 고달픈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12월은 사랑과 감사의 계절, 희망을 설계하는 계절입니다.

  은혜 가득한 성탄절

  행복 넘치는 새해 맞으시기를! 

 

 트럼프 대통령 2기와 우리의 현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2기를 선택했다. 

  박빙의 승부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큰 표 차로 압승을 거두었다. 트럼프가 여러 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이다. 징검다리 대통령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22, 24대) 이후 132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이 선택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읽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국민들은‘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물가와 이민 문제의 해결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트럼프를 선택했다. 

  게다가, 상원과 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힘은 한층 막강해졌다. 트럼프 시절 임명된 연방 판사들로 사법부마저 보수 우위 시대여서 트럼프의 폭주를 제어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거침없이 권력을 휘둘러도 견제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트럼프 1기 때만 해도 트럼프 주변엔 이른바‘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좌충우돌 변덕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2기에 새로 구성될 내각과 참모진은 트럼프 충성파 일색이 될 것이어서 미국 우선주의 색채는 훨씬 강해질 게 분명하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대외 정책의 급변을 예고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선거 기간 동안 줄기차게 강조했던 미국 우선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를 재확인했다.

  “미국의 진정한 황금시대를 열겠다. 미국을 우선시하는 데서 시작하겠다”  

  정식 임기는 새해 1월20일부터 시작되지만, 세계는 이미 술렁이며 새로운 질서에 대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마다 우선 국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향후 국제 및 동북아 안보 질서의 격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트럼프의‘미국 우선주의’는‘자유주의’의 선봉장이 되겠다며 한미동맹에 올인해온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 초대형 후폭풍으로 몰려오고 있다. 눈앞에 닥친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한 난제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큰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염려한다.   

  트럼프의 재선은 한국이 지난 70여년 동안 익숙했던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대변동의 시대’ 앞에 섰음을 의미한다. 정부가‘관대한 우리 편 미국’이라는 환상에 기대어 국제 정세의 냉정한 현실을 외면하고 이념에 사로잡힌‘네오콘’외교로 질주해왔지만, 트럼프 등장으로 그 토대 자체가 붕괴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 등으로 대표되는‘한미동맹의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트럼프 당선인은“한국은 부자다.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며 현재보다 9배가량 늘어난 100억 달러(약 13조9700억원)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1기 때도 한국에 100억 달러의 분담금을 요구했고, 한국이 거부하자 50억 달러로 줄인 청구서를 보낸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은 2026년 첫해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증액하고 이후 분담금 인상률을 물가상승률에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5년간 적용되는 12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전격 합의했다. 2030년까지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 금액을 확정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이 SMA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는 SMA는 국회 비준 절차가 필요하지만, 미국에선‘행정협정’이므로,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 결심만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트럼프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 방위비 분담 규모의 적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1기 때처럼 주한미군 철수, 감축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폭 인상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 감축하는 방안도 협상 카드로 던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방위비 협상 타결이 지연됐을 당시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수시로 언급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알려진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트럼프 측과 소통하며 완벽한 안보 태세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SNS를 통해“그동안 보여주신 강력한 리더십 아래 한미 동맹과 미국의 미래는 더욱 밝게 빛날 것이며, 앞으로도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외 정책 역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과 러시아에 맞선다는‘가치 외교’에서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앞세우는‘일방주의 외교’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 지금 곤혹스러운 외교적 곤경에 빠져 있다.‘가치 외교’를 내걸고 바이든 정부의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대결 구도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맨 앞에 섰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는 사실상 ‘적대적 두 국가’로 변했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만에 북한과 러시아는 전략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국익만을 내세우며 도를 넘는 압박을 가해온다면 한국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트럼프는 1기 때처럼 북한 김정은 정권과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보냈고, 고강도 핵 미사일 도발로 트럼프 당선에 사실상 ‘올인’한 상태다. 김정은은 6년 전 자신을 국제 외교무대에 세워준 트럼프와 함께 북핵 직거래 외교 이벤트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 한국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하는 ‘통미봉남’을 추구하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북한의 요구대로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형태의 협상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안보 우려를 반영하지 않는 형태로 타협을 할 경우 한국의 안보 환경은 상상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국 경제에도 미칠 치명적 영향도 우려된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미국과 중국 무역 전쟁이 심화되며, 양국 모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되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선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국 제품의 대미 수출, 나아가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공언했듯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폐기하면, IRA 혜택 등을 기대하고 미국에 대거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국제 공공재를 공급해온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며 세계 질서는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협력 체제도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 살고있는 이민자인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도 많다. 예를 들어 이민정책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국경을 봉쇄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추방 작전을 수행한다고 공언해 왔다.‘이민자의 나라’미국의 담 쌓기와 추방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재이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현재 미국 내 불법체류자 수는 약 1천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민정책은 미주 한인 비즈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불법체류자나 이민을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민 문호 개방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노벨문학상의 기쁨

 

한강_1.JPG

  올해 가장 큰 기쁨은 뭐니 뭐니 해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경사를 꼽아야 할 것 같다. 드디어 해냈다는 가슴 벅찬 기쁨…

  한국문화의 위상이 단숨에 세계 정상으로 올라갔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인 것은 물론, 아시아 여성으로도 최초라는 자부심… 그동안 변방으로만 여겨져 온 한국문학이 세계 정상에 섰다는 건 여간 큰 기쁨이 아니다. 특히, 변방의 타향살이에 시달리면서 악착스레 한글로 글을 쓰는 디아스포라 작가에게는 더욱 벅찬 감격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의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상을 계기로 한강 작가의 책이 엄청나게 팔리는 것은 물론, 죽어가던 독서 열기가 살아나고, 출판계와 서점들이 활기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다양한 축하 행사나 계획들이 정부나 지자체를 중심으로 발표되었지만, 작가는 모두 단호하게 거절했고, 기자회견마저 하지 않았다. 아버지 한승원(85) 작가의 입을 빌려 전해진 작가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데 무슨 잔치를 하느냐” 

  거의 온 국민이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기뻐하며 축하하는 가운데, 한강 작가에 대한 시비와 딴지걸기가 등장했다. 

  한 여성작가는 한강은 역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을 부정하는 작가라고 폄하, 비판하고 나섰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 규탄한 단체도 있었다. 특정 단체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유해 매체물이라며 학교 도서관에 배치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책의 내용이 선정적이고 극단적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한강 작가의 삼촌인 한충원 목사가 공개 편지를 통해 한강의 작품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나서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념의 대립에 그치지 않고, 종교의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작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광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사건건 이념으로 나라가 찢어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이런 현상에 대한 한 신문의 사설을 인용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작품을 깎아내리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이런 행위는 나와 내 주변만 옳고 바르며, 그 외의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독선과 아집에서 출발한다. 예술작품을 작품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만의 좁은 틀과 짧은 잣대로 가두고 재단하려는 것이다. …(줄임)…

  문학의 기능과 성격은 매우 다양하다. 정신적 즐거움과 미적 쾌감을 주기도 하고, 인간과 삶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념과 사상, 신념, 교훈을 담아내고, 불의를 고발하며 정의를 실현하는데 복무하는 작품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문학작품을 한두 가지 기준과 규범을 내세워 거두절미한 채 자의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단세포적이고 편협한 행위다.

  문화예술인은 역사가도, 도덕교사도, 종교인도, 법률가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문화예술 행위를 규범과 제도, 법의 잣대로 흔들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오래 전에 한강 작가는 정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경력이 있다.

  작금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도약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푸드가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됐다. 여기에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됐다. 문화예술인을 계속 탄압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통제했다면 가능했겠는가? 한강 작품에 대한 공연한 시비와 흠집 내기는 한국문화의 후진이고 퇴보일 뿐이다.”

  -<대전일보> 사설(2024년 10월24일자)

 

  지금 우리 사회가 할 일은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힘과 마음을 모아 제2 제3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 문화풍토를 만들고 다지는 일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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