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분들을 뵈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칠십이 되신 할머니는 나의 설명에 이해가 빠르셨고 질문과 대답도 명확했다.
70대 중반의 할아버지는 조용히 앉아계시다 가끔 하시는 말씀은 간결하고 점잖았다. 두 분 사이가 참 돈독하신 것 같다고, 상담 끝에 말씀드리니 결혼 이후 싸움 한번 없이 살아왔다는 할머니의 미소에는 자긍심이 배어있었다.
평생 가장의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고 사생활은 반듯했으며, 허튼소리 없는 권위에 기꺼이 순종하고 살아왔다는 할머니의 차분한 표정엔 남편에 대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조선시대의 선비댁 같은 분들을 21세기 미국에서 보게 될 줄이야, 혼자 미소 지었다.
그 만남 이후, 간간히 업무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그럭저럭 잘 지내왔는데 몇 해 전 심상치 않은 목소리의 할머니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며,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힘들게 말씀하신다.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은 손이 떨리고, 발걸음은 굼뜨게 되고, 웅얼거리는듯한 발음장애와 배뇨장애를 동반하고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큰 무서운 병이다. 아직 이 병은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라는 것도 그저 진행을 조금 늦출 수 있는 게 전부란다. 평생을 풍파 없이 살아오신 부부에게 이런 힘든 노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초기에는 할머니가 운전해서 병원과 교회, 마트 장보기 등을 같이 다니시며, 그저 하루하루가 오늘만 같기를 바랬는데 증세가 깊어지며 차츰 바깥출입이 줄어들더니 작년부터는 손 떨림이 심해 수저를 들 수가 없어, 음식을 떠먹여 드려야 되고, 보행이 어려워지며 목욕과 화장실 배변 처리까지 떠안다 보니 70대 중반을 넘어선 할머니의 온몸 기력이 빠져버린다. 평생 자기를 책임져주었으니 이젠 내가 남편을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그의 괴로움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랑과 의무감으로 간병을 감당해 왔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할머니 역시 끝없이 반복되는 몇 년의 고행 끝에 두 손을 들게 된다.
병든 배우자 돌보다 병 얻는다더니, 할머니의 몸도 성치 않다.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친 할머니 역시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많은 과정과 절차 끝에 할아버지는 결국, 의료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는 ‘어시스티드 리빙’에 입소하시게 되었다. 그 입소 자격을 위한 신분 변경 절차 때문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마침 할아버지께서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신다. 그리고 눈앞에 전개된 상황에 현실을 직감한 할아버지는 온전치 못한 발걸음 탓에 바닥에 넘어지시더니 옆으로 웅크린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으신다. 보호사가 다가가 친절한 목소리로 부축 할려고해도 눈을 꼭 감고, 입을 앙다문 채로 꼼짝하지 않으신다. 그 몸짓에서 강한 거부감이 읽힌다. 아직은 온전한 할아버지의 의식 속에, 체념과 함께 버림받았다는 저 절망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서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할 것 같아 몇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숨죽인 울음이 흐느끼고, 모로 누운 채 눈감은 할아버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다. 그 광경을 방관자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 역시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나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다음날 할머니께 전화를드려 여쭈었더니, 그렇게 시위 아닌 시위를 하시던 할아버지도 결국엔 지쳐 체념하시며 입소를 하셨다고,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인이 알고 있고 그 마지막을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하고 싶어 한 할아버지의 희망과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좋은 기억만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 소망조차 산산조각 나버렸음에 할머니는 절망하셨고 자기는 죄인이라며 또 울음을 터뜨리신다.
은퇴와 함께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꿈꾸던 부부의 노년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힘들게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복된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함부로 다른 사람의 삶의 가치를 판단할 순 없겠지만, 누구에게 하지 않고, 자식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으면서 해로하는 부부, 갖추어진 자긍심, 구차하지 않을 정도의 저축과 연금,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할 건강 그러나 이걸 다 갖출 수 있는 노년의 부부가 얼마나 될까.
상담차 종종 만나 뵙는 아프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그래도 힘내시라고, 잘 드시라고, 건강히 지내시라고 건네는 인사가 때로는 얼마나 공허한지 돌아서는 발걸음이 허전해서 기운 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분께, 좋은 정보와 함께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