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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라는 소리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고,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 눈에 땀이 나는 것은 아무래도 나이 탓이려나…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나는 믿는다. 맹자 어머니나 한석봉 어머니, 신사임당 같은 분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나름대로 아름답고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고맙고 그립고 아득하다.

  재일교포 학자 서경식 교수의 저서 <시의 힘>에 나오는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내내 축축한 가운데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서 교수의 어머니 오기순(嗚己順, 1920년대 초반-1980) 님은 쉰 살이 되도록 글자를 몰랐다. 읽지도 쓰지도 전혀 못했다. 그 세대 재일 조선인 여성들은 대부분이 평생 정식으로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자식들 거둬 기르기도 벅찼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 50세 무렵에 글자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서울대학에서 유학하던 서승, 서준식 두 아들이 졸지에 정치범으로 몰려 한국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는 엄청난 비극을 겪게 된 것이다.  

  두 아들의 옥바라지, 면회를 위해서 출입국 수속, 면회 신청서 따위를 작성하려면 자기 이름과 집 주소라도 쓸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혼자서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감옥에 있는 두 아들은 신념을 굽히지 않는 비전향 정치범이었다. 형무소 당국은 이들을 전향시키려고 가족을 압박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당했다. 그 부분은 책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전향하라고 해요. 안 그러면 면회 안 시킵니다. 왜 울지 않는 거야? 다른 엄마들은 울던데. 울면서 아들한테 매달려서 전향을 시켜야지!”

  오기순은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학교엘 못 다녀서 전향이 뭔지도 잘 모릅니다.”

  그리고 면회 허가를 받으면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이 전향을 권하라고 하는데, 나는 모르니까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면 돼. 다만 다른 사람을 배신하는 더러운 인간이 되는 것만은 안 된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들의 출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8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경식은 말한다. 어머니는 배우지 못하고, 학교 교육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하고 당당했다고, 주눅 들거나 비굴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자신은 배웠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삶을‘해석’하는 특권을 행사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반성한다.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알량한 지식의 잣대로 자기 편하게‘해석’했다는 지식인의 자괴감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암 투병중인 어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의 감옥으로 면회를 간다. 그 자리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다.

  “어머니는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글쎄, 몽골인이면 좋겄네”

  “왜 몽골인인데?”

  “좋잖여? 들판을 말을 타고 달리니께…”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생뚱맞은 대답에 허를 찔린 아들은 할 말을 잃는다. 

  이 글을 읽으며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를 한 귀퉁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는가? 어머니 꿈이 무엇인지,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라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