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의 선한 영향력이 열풍처럼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김장하 장학생’이었다는 이야기도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면서, 그분의 삶이 재조명되는 모양이다. 관심이 전국적으로 커지면서 영화가 재개봉되고, 진주가 관광지로 떠오르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김장하 선생은 이미 TV 다큐멘터리와 영화, 그리고 책으로 관심을 모았고,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발언도 지난 2019년 국회 인사청문회 때 나온 것으로 신선한 감동을 준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김장하 바이러스’가 열풍처럼 번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수선하고 험상궂은 세상을 힘겹게 살면서 참다운 어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답답한 시대 상황이 엇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이 그만큼 삭막하고 흉악스럽다는 이야기다. 닮고 싶은 어른은 보이지 않고 낡은 꼰대들의 잔소리만 난무하는 세상…
김장하 선생은 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 든든한 뒷배, 시민운동의 비빌 언덕, 남명 조식 같은 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호수 등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잘 알려진대로 김장하 선생은 194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 공부를 많이 못 하고, 한약방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주경야독해 19세의 나이에 한약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약방을 개원하고는 질 좋은 약을 대폭 저렴하게 처방해 입소문이 나고,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고등학교를 설립해 국가에 기부했고, 천여명이 넘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문형배 재판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언론계, 차별 철폐나 여성인권, 환경보호 같은 사회 문제, 문화예술 교육 등 지역사회 발전을 폭넓게 지원했다. 많은 단체를 후원하면서도 감투를 쓰지 않았고, 모임에서도 가운데 자리를 마다하고 항상 변두리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평생 자동차도 없이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젊은 시절에는 자기 집도 안 가질 정도로 근검절약했다. 오래된 옷을 입고, 해외여행 한 번 못했다고 한다.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번 돈이니,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서 사회에 다시 환원하기 위해서…”
사실, 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은 많다. 가령, 경주 최부자도 있고, 풍운아 채현국 선생도 있고, 노점상으로 평생 모은 돈을 대학교에 기탁한 할머니 등 감동적 이야기는 적지 않다. 그런 아름답고 건강한 분들 덕에 세상이 이만큼이나마 굴러가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특히 김장하 선생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분의 생활철학과 말없이 실천하는 겸손한 자세, 베풀고도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어른다움 때문인 것 같다. 선생은 대통령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고, 언론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부자’김장하 선생의 미담은 너무도 많아서,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우리 같은 중생은 흉내 낼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닮고 싶어한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선순환, 이른바‘김장하 바이러스’의 힘이다.
물론 나도 이런 어른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 하지만 언감생심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선생의 많은 가르침 중 몇 가지를 골라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실천해보려 애를 쓴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 줬으면 그만이지… 이 세 가지 말씀이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은 등산하는 자세를 말한 것인데, 인생도 거창한 욕심 부리지 말고 그렇게 착실하게 살면 된다는 교훈이다.
선생의 장학금으로 공부한 사람이 찾아와“장학금을 받고도 뛰어난 사람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리고 머리 숙이자 선생께서 하신 말씀“내가 바란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가장 닮고 싶은 것은“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자세다.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 50년이나 베풀며 살았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올곧은 자세… 선생은 장학생들에게“나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대신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선생님께서는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하게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주셨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한 게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장하 선생의 말씀>
★“아무도 칭찬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는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었기에 그것을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100억원 이상의 사비를 들여 설립한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하는 식에서 한 퇴임사의 한 구절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별빛처럼 빛이 아니지만 뭔가 공헌을 하고 있거든. 하지만 공헌했다는 표를 내지 말고 그렇게 살아라….”
★ “항상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무엇을 베풀었다고 뭔가를 바라는, 그런 마음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 김장하 선생한테 자신에 대한 비방과 헛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결과를 보면 알잖아.”
-세월이 증명해주는 거라고요? “예. 그걸 다 증명하려고,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화를 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죠.”
★ “나는 돈에 대한 개념도 그렇게 애착이 없었고, 그리고 재물은 내 돈이다는 생각이 안 들고 언젠가 사회로 다시 돌아갈 돈이고 잠시 내게 위탁했을 뿐이다. 그 생각뿐이야. 이왕 사회로 돌아갈 돈인 바에야 보람있게 돌려줘보자 그런 거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를 내려 사람들한테도 부끄러울 게 없는 삶을 살라는 맹자의 말씀을 나의 생활신조로 삼고 있어요.”<*>

▲ 김장하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