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은 문화는 물론 인생, 환경,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울림이 큰 명언을 많이 남겼다. 수백 권에 이르는 저서와 강연을 통해 남겨진 그의 말씀들은 우리 삶에서 끄집어낸 예화들로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
단점을 비판하기보다는 본질을 파악하고 장점을 찾아내, 우리가 가야할 미래의 화살표를 그어주었다. 특히, 우리 겨레의 옛 삶에서 찾아낸 정신적 장점을 부각시켜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듣기 좋은 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멋지게 실천했다는 점에서도 단연 앞선 인물이었다.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초대 문화부장관 등이 좋은 예다. 이어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점을 장점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한국어는 모음 하나만 바꾸면 부정이 긍정이 되지요.
씨레기(표준어는 시래기)국이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비틀어 말라 빠진 야채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그냥 버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은 그 쓰레기를 씨레기로 만듭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그 어떤 음식보다 비타민이 풍부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누룽지도 마찬가지지요 밥이 타버렸다는 그'부정'을 누룽지라는'긍정'의 문화로 만들어냅니다.
6.25 때도 미군이 들어왔을 때도. 무질서한 한국인을 보며 미군은 경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경멸은 존경으로 바뀌었지요. 자기들이 버린 맥주병을 재활용해서 집을 만들고, 사람을 죽이는 포탄을 녹여 사랑의 종을 만들어 교회로 가져가고, 총알자국이 남은 헬멧을 두레박으로 바꿔 생명수를 길어 나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요. 그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조상들의 지극한 자연사랑
한국은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특이한 DNA가 있는 나라이며, 쓰레기 매립장에서 생태공원으로 바뀐 난지도 이야기를 하던 중 물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점점 세계가 환경문제로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대한민국만큼 자연을 사랑했던 나라는 없었어요.
여러분, 우리나라 짚신 아시죠? 우리 조상들은 짚신을 만들 때 절대 튼튼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혹시 밟아도 벌레가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이지요.
세상에 그만큼 자연을 사랑한 민족이 있었을까요. 저는 봄에 알 까는 벌레가 죽을까봐 서양에서 구두에 스펀지를 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고수레란 것도 있지요.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세끼 밥도 못 챙겨 먹던 사람들이 벌레랑 같이 먹고 살자고 음식을 조금씩 던집니다.
까치밥은 어떻습니까? 시골에서 아이들이 감나무를 따면 우리네 할머니들은 말합니다. 까치도 먹고 살아야제. 하나 내비두야 된다이.
우리는 그런 민족입니다.”
★88 서울올림픽은 신의 합작품
이어령 선생의 대표작인 서울올림픽의 개최식은 신의 합작품이었다고 회고했다.
올림픽 하루 전날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개최식의 프로그램은 2/3가 비가 오면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도 마음을 졸였는데, 개막식 당일은 보란 듯이 햇볕이 쨍쨍거리며 공중에 한국의 상징을 그릴 수 있었다고.
물론 올핌픽의 성공은 온 국민이 마음을 모은 결과물이었다며, 이어령 선생이 소개한 뒷이야기 한 토막…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올림픽을 할 때는 전국의 소매치기와 홈리스들이 모여들어 물호스를 대고 쏘아내느라 난리를 쳤는데 한국에는 정반대의 일이 있었지요.
1988년, 인천에서 소매치기들이 전부 모인다는 연락을 듣고, 경찰서에는 비상이 났답니다.
“아- 얘네들이 서울에서 모이면 잡히니까 인천에서 모여서 작전을 짜는구나.”
그래서 그 정보를 듣고 경찰이 몰래 잠입했더니 뜻밖의 소리가 나왔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소매치기지만 대한민국이 겨우 여기까지 와서 올림픽을 하게 됐는데,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꺼다. 이번에 외국인 관광객의 주머니를 터는 녀석은 영원히 소매치기 업계에서 매장시키키자.”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기 전, 세계는 한국을 일본의 속국이었던 나라, 그전에는 중국의 속국쯤으로 생각하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사람들은 한국의 올림픽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독일의 조직력, 일본의 단결력, 할리우드의 화려함, 러시아의 집단력이 모두 한데 모여져 있었다고.”
★나라를 지키는 힘
이어령 선생이 강연에서 한 4.19 이야기 한 토막…
“예전 명동에는 유명한 걸인 한 분이 있었습니다. 앉은뱅이였지요. 명동에서 그 걸인을 못 만나면 명동을 간 게 아니라고 할 정도로 예술가나 문인들 사이에선 유명했어요. 그리고 그분을 지나칠 때는 한두 푼을 보태 드리곤 했지요.
어느 날, 4.19 때문에 의연금을 모으고 있던 때에 저 멀리서 그분이 또 돈을 달라고 열심히 이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걸인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구걸하러 오다니 역시 걸인은 걸인이구나 하며, 실망하여 돈을 주려던 찰나, 그 걸인이 의연금 통 속에 모아온 돈을 집어넣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평생 구걸만 하던 사람에게 그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통속에 돈을 넣게 했나…”
그때 선생은 생각했다고 한다.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절대로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저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버티고 있다. 잘난 사람, 지식인들이 아니라 바로 저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진정으로 버티고 있다…
★나에게 이야기하기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하네. 삶은 슬픔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돌려주므로…
너무 고집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으므로…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 하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간 자리에 또 소중한 사람이 오므로…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 하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너무 뒤돌아보지 말라 하네.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의미 있으므로...
너무 받으려 하지 말라 하네. 살다 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쁘므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수 있으므로…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하라 하네.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이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이어령 선생은 2017년 암 선고를 받았으나 치료를 거부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글을 썼다. 그는‘죽음’은‘생의 한 가운데’있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인간은 암 앞에서 결국 죽게 된다네. 이길 수 없어. 다만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겠다는 거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나가면 그게 암을 이기는 거 아니겠나. 물론‘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하고,‘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라는 사실을 느껴가며 글을 쓰는 것이 녹록하지 않은 일이지”
“내가 평생 창조, 창조 해왔잖아. 내 손에서 탄생한 우물물 한 방울이 생명의 순환을 고스란히 따랐으면 해요. 한 인간이 남겨놓은 열정 한 방울, 창조성 한 숟가락, 업적 한 그릇이 이어져서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다시 수증기가 되어 비로 내리고, 골짜기에 쏟아지고, 또 그 물 한 방울이 다시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울림을 주면 좋겠다는 거지.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일 아니겠어요?”
“스스로 묘비명을 쓰라고 한다면 ‘평생 퍼내도 퍼내도 항상 갈증을 느껴 우물을 판 사람’이라고 말하겠어요. 영원히 두레박의 갈증을 가지고 평생 살아온 사람. 두레박은 늘 비어 있어야 물을 퍼낼 수가 있지요. 이 비어 있는 것이 갈증입니다. 영원한 갈증이지요.”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