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45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너는 누구냐?

  웬 뜬금없는 실존철학적 잠꼬대냐구요? 글쎄요, 지금 내게는 매우 심각한 질문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몇일 전 친하게 지내던 사람 장례식에 갔었는데… 그 사람 참 안타깝게 갔어요. 성공적으로 잘 살던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라는 게 참… 무지하게 슬프데요. 슬퍼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번개처럼 그런 생각이 든 거예요, 너는 누구냐?

   묘지에 이름이나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다… 뭐 그런 거 적은 동판 있잖아요. 문패 같은 거… 그걸 보는 순간에 “아, 나는 어떤 이름으로 죽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탁 들지 뭡니까… 탁 달라붙어서 떠나질 않아요. 깜짝 놀랐죠. 

   왜냐구요? 내가 이름이 여러 개 거든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재키 래핑스톤, 재클린 콩탁, 공복자… 이게 모두 내 이름입니다. 이것 말고도 몇 개 더 있어요. 

   미국에서 여자로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나만 그런 거 아닐껄요…

   재키 래핑스톤은 영업용 이름입니다. 밥벌이 때 쓰는 이름… 미국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놈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야 비즈니스 제대로 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영어이름을 만들었죠. 이왕이면 재미있게 하자. 그래서 래핑스톤을 붙였어요.

   래핑스톤 그러니까‘웃는 돌’은 내 예명입니다. 옛날에 노래 부를 때 쓰던 이름인데요. 무명 가수였거든요. 돌맹이처럼 생겨 가지고 실실 웃기는 잘 웃는다고 웃는 돌, 래핑스톤이다. 한자로는 소석(笑石)… 아 그래도 웃는 돌이 굴러다니는 돌, 롤링 스톤보다 낫지 않나요? 안 그래요? 

   아무튼 미국 생활하면서 이 이름 덕을 많이 봤습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거든요. 고마운 이름이죠.

   재클린 콩탁은 법적 이름입니다. 운전면허중이나 여권에 적힌 리걸 네임. 내 성이 공씨이고, 이혼한 남편 성이 탁씨, 그래서 콩탁이 됐죠. 그냥 미세스 재클린 탁이라고 해도 되는데, 어쩐지 섭섭해서 콩탁으로 했어요. 지겹게도 콩탁거리며 싸웠죠. 그리고는 바이바이…

   공복자(孔福子)는 한국에서 쓰던 본명,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복 많이 받으며 살라고 복자라고 지었다네요. 나도 어렸을 적에는 제법 복스럽게 생겼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름만 복자였지 복 받은 기억은 거의 없네요. 오히려 ‘공복’으로 배고팠던 기억만 생생하네요. 어째서 그렇게 지질이도 가난했던지…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만 보면 콩 볶자, 콩 볶자며 놀려댔죠.

   콩 볶자 콩 볶자, 무슨 콩 볶을까?

   동글동긍 검정콩, 길쭉길쭉 완두콩

   무서워라 베트콩, 콩 볶자 콩 볶자,

   아이구 맛있어라, 콩 볶자 콩 볶자,

   아 그런데, 미국에 오니, 이번에는 미국 친구들이 콩뽁짜 콩뽁짜 이렇게 부르지 뭡니까! 기겁을 했죠. 콩이 아니라 공이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안 통해요. 계속해서 콩뽁짜 콩뽁짜… 하긴 뭐 공이나 콩이나 굴러다니기는 마찬가지, 굴러다니다가 구석에 처박히기는 마찬가지…

   어쨌거나 내 본명이 공복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재키 래핑스톤과 공복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거죠.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아는 겁니다. 한 사람과 두 사람 사이… 참 실존적 희비극이네요.

   그건 그렇고, 형편이 이러니, 내 무덤에 어떤 이름으로 문패를 달아야 하나… 부모님이 주신 본명을 쓰는 게 맞다고 말하겠지만, 난 그 이름이 아주 싫거든요. 지긋지긋해요. 그렇다고 콩탁씨로 죽기도 싫고, 여러 가지 이름을 모두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사이)

   그건 그렇고, 거창하게 말해서 이름이 세 개이니 자기 정체성도 세 개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죠. 그렇지는 못하죠.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아니니…

   나는 과연 누구냐? 어떤 것이 가장 나다우냐? 

   이건 참 실존철학적 문제입니다. 그렇죠?

   생각해보면 미국에 오지 않았으면 애당초 생기지도 않았을 일입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생긴 갈등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유식하게 말하면, 디아스포라 여성의 숙명적 희비극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정체성의 갈등이 이름도 버리고 정체성도 내동댕이쳐버리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렇지 않나요? <*>


  1. No Image

    <짧은 글 긴 생각> 어느 이름으로 죽을까?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너는 누구냐? 웬 뜬금없는 실존철학적 잠꼬대냐구요? 글쎄요, 지금 내게는 매우 심각한 질문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몇일 전 친하게 지내던 사람 장례식에 갔었는데… 그 사람 참 안타깝게 갔어요. 성공적으로 잘 살던 행복한 ...
    Date2025.08.29 ByValley_News
    Read More
  2. <노래의 추억> 청년문화의 주제곡 송창식의 [고래사냥]

    송창식 최인호 <고래사냥>은 70년대 한국의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노래였다.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 1975년 발표된 이 노래는 당시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소설가 최인호가 가사를 쓰고 송창식이 곡을 붙이고 노래했다. 최인호는 &...
    Date2025.07.30 ByValley_News
    Read More
  3. <독자글마당>헐리웃 볼 여름 콘서트 이야기 -오바마케어 공인 에이전트 김희란 -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2000년 봄, 이후 몇 개월은 누구나 그렇듯이 신분 문제, 아이들 학교 문제, 생활 적응 문제 등으로 정신없고 참 힘이 들었다. 마음 한편으론 늦은 이민이라는 선택에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져 갈 때쯤, 틈틈이 도움을 주던 한 이웃의 초...
    Date2025.07.30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독자의 글>첫 사랑 영이 -수필가 이진용 -

    미국으로 이민 온 지 15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어디를 가나 어리둥절할 정도로 너무 많이 발전했다. 20일 일정으로 한국에 와서 모든 용무를 마치고 출국할 날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 이 기간 중에 첫사랑의 여인 영이...
    Date2025.07.30 ByValley_News
    Read More
  5. <알아두세요> 자유의 여신상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시(詩)의 의미

    뉴욕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하지만, 미국이 만든 것이 아니고, 프랑스가 1876년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맞아 양국의 우정을 축복하며 미국에 선물한 초대형 조형물이다. 키 93....
    Date2025.07.30 ByValley_News
    Read More
  6. No Image

    인권변호사 한승헌의 유머

    인권변호사 한승헌(1934-2022)은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다수의 법조인이 시류에 영합하고 보신 출세에 급급할 때, 타고난 반골정신과 학문적 탐구심 그리고 체화된 유머를 즐기며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선 인물이다. 한승헌은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나 알바를 ...
    Date2025.07.30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이 달의 시> 어머니의 하늘

    < 어머니의 하늘> -고 원 시인- 당신이 아무 말 없이 오래오래 하늘을 보고 있을 때 당신 맘을 내가 안다. 당신은 어머니를 대하고 있다. 그럴 때 내 맘속에도 어머니가 가득 차서 당신의 눈을 보면 하늘에 비치는 모습을 보고 안다. 당신과 나는 똑같이 돌아...
    Date2025.07.30 ByValley_News
    Read More
  8. <노래의 추억>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 싶어… 하덕규, 양희은의 <한계령>

    한계령 하덕규, 정덕수 공동작시, 하덕규 작곡, 양희은 노래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
    Date2025.06.30 ByValley_News
    Read More
  9. No Image

    역지사지의 인생 -이정아 수필가-

    박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쥐가 소리친다. “오, 천사로구나!” 생쥐의 눈에는 날개 달린 박쥐가 천사로 보일 수 있겠구나 하고 실소했다. 2016년 91세를 일기로 작고한 프랑스 작가 미셸 트루니에의 <외면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쥐들이 ...
    Date2025.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여행으로 깨닫는, 아는 만큼 보인다 -김희란 (오바마케어 공인 에이전트)-

    산악인이나 모험가들이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장소들이 있다. 히말라야, 알프스, 파타고니아, PCT, JMT, 산티아고 순례길 등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의외의 명소가 있다. 바로 알래스카의 데날리산(Mt. Denali, 6,194m)이다. 많은 이들이 맥킨리 산...
    Date2025.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1. <생각의 글> 거울(鏡)

    거울(鏡)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민담(民譚) 하나 소개한다. 시골에 사는 선비가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갔다. 과거시험을 치른 후에 한양장터를 구경하게 되었다. 어떤 만물상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참 신기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는데'손거울'...
    Date2025.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이 달의 시> 캘리포니아 갈대

    캘리포니아 갈대 -이성호 시인- 모여 살아도 따습지 않고 부비며 지내도 허허한 마음 하늘 휘저으며 몸부림쳐도 잊혀지지 않는 강산아 훌 훌 갈꽃으로 날아가도 바람벽에 부딪치는 망향. 서러운 바람결에 퉁소소리 들린다 날 부르는 소리 어제는 강 마을 갯벌...
    Date2025.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3. <노래의 추억> ‘낭만 가객’ 최백호의 인생곡 [낭만에 대하여]

      '낭만 가객' 최백호의 대표곡은 단연 <낭만에 대하여>다. 인생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45세이던 1995년 발표된 이 노래는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며 중년의 정서를 묘하게 자극하며 큰 공감을 이끌어냈고, 전 국민적 인기를 모으며 지금까지도...
    Date2025.06.06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내 영혼 어디에 - 수필가 이진용-

    작년 이맘때, 문인 3개 단체가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단합대회 겸 야유회를 갖고자‘카추마 레이크’로 떠나던 중 여류 소설가 K 작가를 버스 안에서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이름 석자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실물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
    Date2025.06.06 ByValley_News
    Read More
  15. <이 달의 시> 우리 땅의 사랑노래 -김용택 시인-

    내가 돌아서 그대 부산히 달려옴같이 그대 돌아서드래도 내 달려가야 할 갈라설래야 갈라설 수 없는 우리는 갈라져서는 디딜 한 치의 땅도 누워 바라보며 온전하게 울 반 평의 하늘도 없는 굳게 디딘 발밑 우리 땅의 온몸 피 흘리는 사랑같이 우린 찢어질래야 ...
    Date2025.06.06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이 달의 시> 먼 데서 오신 손님 -김동찬-

    부대끼며 가는 이 길에 손님 주인이 따로 있을까. 서울 출신 샘박 씨는 전통 때 한국을 방문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와 곧장 망월동으로 갔다. 아직 공사 중인 비포장 길에 흙먼지가 자욱했고 공사장 인부들은 차량을 한 대씩 들여보냈다. 입구에 꽃 파는 ...
    Date2025.04.30 ByValley_News
    Read More
  17. <짧은 글 긴 여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황충상 (소설가, 동리문학원 원장) 평생을 금빛 말씀으로 후생들을 가르치며 살았음에도 죽음의 잠에 들 때는 한마디도 말한 바가 없다고 한 사람이 있다. 살탈다, 그는 깨달음의 꽃 부처가 되었다. 나는 그를 안다 하고 그의 영향력을 말하려 들면 그는 내 ...
    Date2025.04.30 ByValley_News
    Read More
  18. No Image

    <독자의 시>어버이 날을 맞으며

    <어버이 날을 맞으며> -최 유니스 밸리 거주- 길을 가는 나그네 언제나 처음 가는 길 돌이켜 지우고 싶은 시간들 있어도 결코 앞으로만 가야 한다 어린 시절 너무 고은 붉은 감 이파리 한바구니 가득 담아 간직했으나 며칠 후 누렇게 말라 바스러지고 책 사랑...
    Date2025.04.30 ByValley_News
    Read More
  19. No Image

    <노래의 추억>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My Way>

    프랭크 시나트라(1915-1990)를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유명한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팝송계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꼽힌다. 성공한 영화배우이자 가수로 승승장구하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 노래를 낼 1969년 당시에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이혼과 영화 ...
    Date2025.04.30 ByValley_News
    Read More
  20. <노래의 추억>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

    젊은 시절 자주 듣고 흥얼거리던 노래, 특히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던 노래가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 노래를 찾아서 다시 들으면 그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세월을 거슬러 가는 노래의 힘이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대표적 명...
    Date2025.03.31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 Nex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