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작> 마지막 수업

by Valley_News posted Oct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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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10월은 문화의 달입니다. 

  10월9일 한글날을 맞으면 서글퍼집니다. 한글 대접이 영 말씀이 아니어서, 세종대왕님 뵈올 낯이 없습니다.

  올해 한글날에는 긴말 줄이고, 세계 명작 소설 하나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자기 나라말을 잘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주는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죠.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같은 일을 겪었기에 한층 감동이 큰 작품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우리 한글이 지금 단단히 병들어 있습니다. 일본말 찌꺼기도 아직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는데,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무차별적으로 밀려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거기에다 속어와 신조어가 마구잡이로 무분별하게 뒤섞여서…

  “언어는 정신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말씀을 되뇌이며 <마지막 수업>을 듣습니다. 

알퐁스 도데.jpg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알퐁스 도데 지음, 김승욱 옮김-

   그날 아침 저는 학교 수업시간에 아주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서 아멜 선생님이 꾸중을 하실까봐 겁이 났어요. 그날 오전에 선생님이 분사법(分詞法)에 관한 쪽지시험을 치르겠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분사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한순간 학교에 가지 말고 그냥 들판을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씨는 아주 따스하고 화창했지요. 티티새들은 숲 가장자리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었고, 그 너머의 제재소 뒤쪽 들판에서는 독일군 병사들이 매일 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어요.

  이 모든 것이 분사 사용법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보였지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유혹이 점점 강해졌지만 저는 힘을 내어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학교를 향해 뛰었어요.

   면사무소 앞을 지나가는데 자그마한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었어요. 그들은 게시판에 붙은 무슨 공고문 같은 것을 읽고 있었어요.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나쁜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모두 그 게시판을 통해서였지요. 전투에서 졌다는 소식, 더 많은 사람들을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는 얘기 같은 것들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뛰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그런데 제가 광장을 가로질러 뛰어가고 있을 때 우리 마을의 대장간 아저씨가 게시판 앞에서 공고문을 읽다가 저를 향해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다, 얘야. 학교에 늦는 일은 없을 거야.”

  저는 아저씨가 저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교를 향해 계속 뛰었어요.

   대개 수업이 시작될 무렵이면 학교가 아주 소란스러워서 거리에서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요. 남자아이들은 서로 물건을 던져대고, 여자아이들은 커다란 소리로 떠들어대곤 했어요. 쾅 소리가 나도록 책상을 열었다 닫기도 했어요. 배운 내용을 합창하듯 큰 소리로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면 결국 선생님이 자로 교탁을 때리면서“좀 조용히 하지 못하겠니!”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 들키지 않고 제 자리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평소 때와 달랐어요.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모든 것이 조용했어요. 열린 창문을 통해 반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어요. 아이들은 벌써 자기 자리에 앉아 있네요. 아멜 선생님은 그 무서운 쇠자를 팔 밑에 끼고 왔다갔다하고 계셨어요. 이젠 도망칠 길이 없었어요. 저는 그 정적 속에서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가야 했어요. 얼굴이 얼마나 붉게 달아오르고, 또 얼마나 겁이 났던지!

   하지만, 겁을 낼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아멜 선생님은 전혀 화난 기색 없이 저를 바라보시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빨리 네 자리로 가거라, 프란츠야. 너 없이 수업을 시작할 뻔했구나.”

   저는 얼른 제 책상에 앉았어요. 제 숨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저는 선생님이 푸른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계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건 선생님이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었지요. 착한 학생에게 상을 주거나 장학관들이 오는 그런 날 말입니다. 게다가 모두들 아주 조용했습니다. 교실 전체가 왠지 엄숙했어요.

  하지만, 제가 가장 놀란 것은 교실 뒤쪽에 마을 사람들이 몇 분 와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어요. 그분들은 평소에는 비어 있는 긴 의자에 조용히 앉아 계셨어요. 오제르 할아버지, 전직 면장, 우편배달부 아저씨, 그밖에도 몇 분이 더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계셨어요. 그리고 오제르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는 낡은 철자법 책이 놓여 있었어요.

  이 광경을 보고 제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동안, 아멜 선생님은 교단으로 돌아가서 부드럽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내가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날입니다. 알자스의 학교에서 독일어만 가르쳐야 한다는 명령이 베를린에서 왔습니다. 새로운 선생님은 내일 도착하실 겁니다. 오늘은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을 주의 깊게 잘 들어주기 바랍니다”

  이 몇 마디 말에 나는 먼저 놀라움을 느꼈고, 그 다음에는 화가 났어요. 아! 못된 놈들! 이것이 바로 면사무소 앞 게시판에 붙어 있던 것이구나.

  오늘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니!

  저는 프랑스어를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아주 게으른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프랑스어로 하는 수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제 자신에게 얼마나 화가 났던지! 저는 배울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해버린 거예요. 그 시간에 새둥지를 찾아 뛰어다니거나 얼어붙은 강에서 스케이트를 탔어요. 

  저는 프랑스어 문법책과 프랑스 역사책을 지루하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책들이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젠 그 책들에게 안녕을 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멜 선생님께도. 선생님은 이곳을 떠나실 것이며 다시는 선생님을 뵐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쇠자로 맞은 일도, 벌을 받은 기억들도 사라져버렸어요.

  가엾은 분! 선생님은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해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으신 겁니다. 마을 어른들이 왜 교실 뒤쪽에 앉아 계시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어요. 그분들은 학교에 좀 더 자주 와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그것은 또한 40년 동안 충실하게 근무하신 우리 선생님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제 사라져가는 조국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 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는 제 이름이 불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제가 암송할 차례였어요.

  그 어려운 분사법의 규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하지만 저는 첫 마디부터 막혀버렸어요. 저는 자리에 선 채로 몸을 흔들며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아멜 선생님이 제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프란츠야, 난 널 꾸짖지 않겠다. 넌 이미 충분히 벌을 받았어. 세상 일들은 다 그런 거란다. 우리는 매일‘쳇! 내일 배우면 되잖아’라고 말하지. 그러다가 일이 어떻게 되어버렸는지 깨닫게 된단다. 아!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언제나 우리 알자스의 커다란 불행이야. 이제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뭐야! 너희들은 프랑스인이라면서 자기 나라 말을 읽지도 못하고 쓸 줄도 모른단 말이냐!’ 

  가엾은 프란츠, 네 죄가 크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너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탓해야 해.

  너희 부모님들은 너희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키는 데 별로 열성을 보이지 않으셨다. 가족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너희들에게 일을 시키는 데 더 열성적이셨지. 그리고 나 역시 자신을 탓할 일이 없겠느냐? 너희들이 공부해야 할 시간에 정원에 물을 주라고 시킨 적이 자주 있었지. 그리고 낚시를 가고 싶어서 한낮에 전혀 망설이지 않고 너희를 집으로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이어서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프랑스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며, 우리는 그 언어를 항상 생생하게 간직하고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왜냐하면, 한 민족의 노예가 되더라도 자기들의 언어를 간직하는 한 정신만은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문법책을 들고 수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수업 내용을 너무나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느껴졌어요. 제가 선생님의 말씀에 그처럼 정성스럽게 귀를 기울인 건 처음이었어요.

  가엾은 선생님은 떠나시기 전에 우리에게 프랑스어에 대한 선생님의 모든 지식을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번 기회를 통해 아름다운 언어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셨어요.

  문법 수업이 끝나갈 무렵, 아멜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나눠주셨습니다. 그 종이의 첫머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프랑스, 알자스, 프랑스, 알자스” 

  우리는 그 단어들을 베껴써야 했어요. 그 단어들은 우리 눈앞에서 나부끼는 작은 깃발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 얼마나 열심히 그 단어들을 썼던지! 그리고 우리 모두 얼마나 조용했던지! 펜이 종이 위에 미끄러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때로 종이에서 눈을 들어보면 아멜 선생님은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계신 모습이었어요. 선생님은 40년 동안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작은 뜰과 학생들을 바라보셨던 겁니다.

  의자와 책상들은 반짝반짝 윤이 났으며, 오랫동안 사용하여 많이 낡았습니다. 뜰에 있는 밤나무는 크게 자랐고, 선생님이 직접 심으신 담쟁이덩굴은 지붕까지 뻗어서 이제 창문을 장식하고 있었지요. 이 모든 것을 놔두고 이 마을을 영원히 떠나는 것이 늙은 아멜 선생님께 얼마나 슬픈 일이었을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용기를 내어 수업을 마지막까지 계속하셨습니다. 쓰기 연습이 끝난 후, 우리는 역사 수업을 들었어요. 그 다음에는 어린 학생들이 모두 함께 바, 베, 비, 보, 부를 노래했어요. 

  교실 뒤쪽에 계시던 오제르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철자법 책을 양손으로 드시고는 학생들과 함께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으셨어요. 오제르 할아버지도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감정 때문에 떨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 우스워서 우리는 모두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했어요.

  그때 갑자기 교회 종이 12시를 알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훈련에서 돌아오는 독일 병사들의 나팔소리가 창문 밑에서 울렸습니다. 아멜 선생님이 의자에서 일어나셨어요. 선생님의 얼굴은 아주 창백했어요. 선생님의 키가 그렇게 커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 친구들이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친구들, 난…… 나는…”

  그러나 선생님은 목이 메어서 말을 잇지 못하셨어요.

  선생님이 칠판을 향해 돌아서서 분필을 집어드셨어요.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선생님이 쓰실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글자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프랑스여, 영원하라!”

  한동안 선생님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그렇게 서 계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 가도 좋아.”

 

  <알퐁스 도데 작품선집>(김승욱 옮김, 해누리기획 발행)에서 옮겨실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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