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고은 시/ 김민기 작곡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 고은 시인

▲ 최양숙
가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들어도 좋고 혼자 흥얼거리며 불러도 좋다. <가을편지>가 그런 노래 중 하나다.
고은 시인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가을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잘 표현한 명곡이다. 그래서 이동원, 최백호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그 중에서도 작곡가 김민기가 직접 부른 노래는 외로움을 느끼며 사랑을 원하는 가을 타는 남자의 마음을 담담하게 잘 풀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노래를 맨 처음 부른 가수는 한국 최초의 샹송 여가수로 유명했던 최양숙이었다.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1966년 <황혼의 엘리지>를 히트시키며 제2회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최희준과 함께 남녀 최우수가수상을 수상했던 당대의 인기 가수다.
그런 최양숙이 포크 가수로 변신하여 1971년 내놓은 음반이 <꽃 피우는 아이>였다. 이 앨범에는 김민기의 명곡 <꽃피우는 아이>, <가을편지>, <세노야 세노야> 등이 최초로 수록되었다.
대중음악평론가 최경식이 고은 시인에게 곧 음반을 낼 자신의 동생 최양숙을 위해 노랫말을 써달라고 요청했을 때, 고은이 즉석에서 건넨 가사가 바로 <가을편지>라고 한다. 이 노랫말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고, 최양숙이 맑고 고운 목소리로 불렀다.
인기 샹송 가수 최양숙이 포크 가수로 변신한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발표한 새 음반은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런 호응에 고무된 <대도레코드>는 곧바로 신인 포크 가수 김민기의 독집을 제작했다. 그러니까, 최양숙의 음반은 역사적인 김민기 독집 앨범 탄생의 디딤돌이 된 셈이다.
하지만 제법 팔려나가던 최양숙과 김민기의 앨범은 갑자기 음반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1972년 봄 군사정권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김민기의 독집과 마찬가지로, 최양숙의 앨범도 김민기의 곡 <꽃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묶인 것이다.
아픔을 겪은 최양숙은 활동을 접고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4년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가요제 특별상을 수상하며 반전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최양숙은 그간 빛을 보지 못한 <가을편지>를 악단 세션으로 재녹음해 다시 세상에 내놓아 크게 히트시켰다. 노래에 담긴 짙은 계절의 고독감과 탁월한 서정성은 세대를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작곡가인 김민기가 이를 새로 녹음하여 자신의 음반에 싣게 되는 것은 약 20년 뒤 즈음인 1993년이었다.
<가을편지>는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한 대중가요 명곡으로도 유명하다. 김소월 시에 서영은이 곡을 붙인 <부모>, 정지용 시에 김희갑이 작곡한 <향수>, 박인환 작시 이진섭 작곡 <세월이 가면>, 서정주 시에 송창식이 곡을 붙인 <푸르른 날>, 고은 시에 김광희가 곡을 붙인 <세노야>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