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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민 1세대들의 삶의 궤적들이 비슷한 게 참 많다는 걸 실감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한국에서의 노도와 같은 산업화 시절부터 올라탄 입시 경쟁과 취업, 결혼, 출산, 아파트 분양 등등, 그리고 아이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감행한 미국 이민과 영주권, 시민권까지의 과정에서 겪은 좌충우돌과 수많은 애환을 헤치며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내 딸들과의 소통이 종종 불편해지고 세대차라는 게 가끔 불편한,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허전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게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님을 남편과의 대화에서 알게 됐다.

   그래서 남편과 선택한 등산 활동과 가끔의 여행은 그 빈공간을 채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덕분에 지불하게 되는 다소의 비용들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그럴듯한 자기 위로도 곁들이면서. 그런 시각에서 보자니,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고방식이 염려스러울 때가 가끔 있다.

   한때 젊은 세대에 유행처럼 번졌던 욜로(YOLO) 열풍이 생각난다.‘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 삶을 즐기라는 의미겠지만, 직장과 사회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세대에게는 탈출구 같은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일견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원하는 직장에 취업은 어렵고, 집을 산다는 건 까마득한 꿈이 되어 가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계산은 도무지 나오지 않으니, 어차피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는 많은 젊은 세대. 책임질 일이 없는, 그래서 경제 개념이 다소 결여된 그들의 소비문화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명품 가방, 비싼 차, 해외여행 등에 그들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혹자는‘욜로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욜로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삶에 부대끼며 어쩔 수 없이 억눌러온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여, 진정 원하는 삶을 펼치고 싶은‘액티브 시니어’들에게도 욜로는 아주 적합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서, 일상의 구속에서 한발 물러서서, 남은 인생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낼 수 없는 진정한 욜로의 삶이다. 여기 욜로의 삶을 온전히 살다 간 이가 있다.

   2015년 8월, 90세의‘노마 바우어 슈미트’ 할머니는 평생을 의지한 남편이 별세하고, 슬픔에 빠진 지 이틀 만에 자신 또한 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병실에서 암 투병하느라 여생을 낭비하기 싫다고 생각한 그녀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들 내외, 반려견과 함께 RV를 타고 미시간주 자택을 떠나 평생 소원이던 미국 전역 여행길에 오른다.

   이후 노마 할머니는 평생 처음 바람 속에 열기구를 타고, 해변에서 수영하기, 굴을 먹고, 물개와 입을 맞추는 등의 여행 중 소박한 일상들이 아들에 의해 페이스북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 네티즌 수십만 명이 응원을 보내기 시작한다.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진 그녀는 이후 미국 국립공원 관리청의 초청을 받아 그랜드캐니언, 옐로스톤 등 20여 개의 명소를 방문하면서 행복한 여행을 이어갔다.

   가장 멋진 곳이 어디였느냐는 질문에는“지금 있는 이곳”이라고 했고,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는 질문에는“지금 이 순간”이라는 명쾌한 대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미국 32개 주, 72개 도시, 주행거리 21,000km를 달린 여행 1주년 기념파티에서 케이크를 자르며“생이 끝날 때까지 여행할 것”이라며 활짝 웃던 노마 할머니는, 그러나 그 한 달 뒤부터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모습으로 눈웃음만의 인사를 건네며 염려를 자아냈다.

   그녀는 여행을 떠난 지 13개월 만에 워싱턴주 산후안제도를 여행하는 도중,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91세의 삶을 조용히 마감했다.

   이게 진정한 욜로의 삶이 아닐까. 하늘에서도 노마 할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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