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올해는 고원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해입니다.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그분의 삶과 문학세계를 되살펴 보는 작업은 여러모로 뜻깊은 일입니다. 선생께서 남기신 귀한 가르침들이 미주한인문학의 앞날을 위한 구체적이고 든든한 징검다리요, 이정표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부쩍 활발해진 이른바 K-문학의 세계화라는 면에서도 고원 시인의 위치와 작품세계는 의미심장합니다. 고원 시인은 일찍부터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한국 시를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에 소개했고,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능성에도 주목했습니다.
고원 시인은 1984년 남가주로 이주한 이래 줄곧 노스리지, 포터랜치에서 살아온 밸리 이웃사촌이기도 합니다.
미주한인문단의 든든한 이정표

고원 시인
고원 시인은 그저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교수, 수필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언론인, 민주화 운동가, 문학지 발행인 겸 편집인, 교육자, 문화운동가이자 문단의 지도자등 다방면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고원 시인은 개인시집 12권과 시조집 2권, 수필집 3권 등 총 20여 권에 이르는 작품집과 수많은 산문을 남겼다. 시의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여 성취를 이루었다. 내용면에서는 현실참여시, 서정시, 사랑시, 신앙시, 선시(禪詩)를 연상시키는 명상시, 형식적으로는 현대시, 서사시, 장시, 그림시, 단시, 시조, 노래 가사 등 참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고, 모두 성공적으로 좋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처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큰 성과를 이룬 것에 비해, 평가나 학문적 연구는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많은 시편들을 통해 우리는 젊은 고원, 투사로서의, 아버지로서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민자로서의 고원을 만난다. 그는 때로 시대를 슬퍼하기도 하고, 사랑에 빠져 있기도 하며, 모든 것을 잃은 듯 실의에 차 있기도 한다. 시를 통해 시인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오윤정 <고원론>에서
고원 시인은 비교문학박사 학위를 가진 학자이기도 했다. 박사학위의 무게를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기반이 되는 학문적 탐구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고원의 시세계는 폭넓고 탄탄한 학문적 바탕 위에 펼쳐진 세계다.
학문적 탐구는 자신의 문학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과 자기성찰 능력으로 이어진다. 물론, 한 사람이 창작과 비평을 동시에 하는 것이 늘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원 시인의 경우는 감성과 이성이 바람직하게 균형을 맞추며 조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냉철한 자기성찰과 비판적 반성은 우물에서 벗어나 큰 세계를 그리는 일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다 고원 시인은 한국어와 영어로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다른 사람의 번역에 의존해야 하는 문인들에 비해 훨씬 세계 무대에 가까이 있었다. 이처럼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능력을 가진 한국 문인은 매우 드물고 귀하다.
또한, 디아스포라 문학의 전형적인 모범을 보여준 문인이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우리말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이정표 같은 존재…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원 시인은 작가론을 따로 쓸 필요가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전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전집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놓았고,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답게 많은 글을 통해 문학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밝혀 놓았다.
각 작품집의 머리글이나 후기, 그리고 직접 편집하고 발행한 『문학세계』의 권두언, 다양한 논문을 통해 자기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문학사적 자리매김도 시도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깔끔하고 충실한 정리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했다.
“굳이 나의 사상을 말하라면 인간을 중시하는 인도주의고 평화주의라고 할 수 있지요.”
높이 멀리, 이름의 상징성
고원(高遠)이라는 이름은 작가의 개성을 매우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항상 높이(高) 멀리(遠) 보려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높이 멀리 봐야 현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높고 멀리…는 시인의 예술세계가 바라보는 지향점을 말해준다.
3인 시집『시간표 없는 정거장』을 펴낸 1952년, 그러니까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높고 멀리 보는 작품을 쓰겠다는 시인의 각오를 담은 것이다.
고원 시인의 산문집 제목『노피곰 머리곰』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따온 것이다. <정읍사>는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이자 한글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노래이며, 우리 음악 중 가장 빼어난 경지로 평가되는 <수제천>의 바탕이기도 하다.
고원이라는 이름의 연원은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높고 멀리’는 그의 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징검다리
고원 시인은 글자 그대로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시인이다. 문학 인생의 초반 10년 남짓을 한국에서 보냈고, 그 후 44년이란 긴 세월을 미국에 살며 창작에 전념했다.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조국을 치열하게 사랑하며 모국어로 글을 쓴 문인…
디아스포라 시인 고원을 상징하는 열쇠말은‘나그네 젖은 눈’과‘달 둘이 떠서’다.
타향살이 정서를 묘사한 이 구절은 시집과 시조집 제목으로 올릴 정도로 시인 자신이 애착을 가진 표현이기도 하다.
두 개의 달이란 고향의 달과 지금 이곳의 달이다. 나그네 시인은 눈물 젖은 눈으로 두 개의 달을 올려다보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늘 목이 마르다.
시인에게 고향은 곧 어머니다. 생명의 근본이다. 그리고 물이다.
고원 시의 가장 소중한 덕목은 감상적인 고향타령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향살이가 길어질수록 더 간절하게 시를 쓰고 싶어진다.
떠돌이 나그네, 디아스포라의 서러움은 물론 아프지만, 그 외로움과 괴로움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은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혀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사실 나는 미국의 후배들에게 그들의 문학 현주소는 해외에 있다고 인식하기를 자주 권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적이 달라질 수는 없다. 나처럼 두 가지 말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본적은 엄연히 하나일 수밖에 없다.”-<시와 말의 역학> 문예중앙 1987 겨울호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유달리 고향이 많다. 그만큼 더 나그네살이를 하는 셈이다. 슬프고 괴로운가 하면, 멋과 맛이 그 속에서 우러나기도 한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먼 세계를 찾아 자꾸만 더 떠나는 게 좋지 않은가.”-<시와 나그네>에서
미주한인문학의 큰 어른이자 지도자
고원 시인은 뉴욕에서의 민주화 투쟁을 접고 1984년 남가주로 이주했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시대가 달라지고, 정치나 사회의 상황도 변한 점도 있겠지만,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햇살, 사막의 열기, 태평양 바다의 파도… 같은 환경도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환갑이라는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때마침 로스앤젤레스는 올림픽으로 밝고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였고, 한인사회는 각 분야의 예술이 활짝 피어나는 좋은 시절이었다.
1982년에 창립되어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하던 <미주한국문인협회>는 고원 시인을 쌍수로 환영했다. 시인도 이곳 문인들과 바로 친숙해지면서 어른 또는 지도자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문인협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봉사했고, 문협 외에도 세계한민족작가연합 고문, 미주시인회의 상임고문, 세계 한민족 작가연합 회장 등등 문학단체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며 미주 한인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고원 시인이 미주 한인사회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문예종합지『문학세계(The Literary Realm)』발간과 글쓰기 공부 교실인 <글마루 문학원>을 통한 문인 교육과 양성이었다.
고원 시인은 문학 발전을 위해서 독립성을 가진 발표 지면의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운영, 편집 어느 면에서나 완전히 독립된 정기간행물을 목표로 한『문학세계』는 작가들에게 발표 지면을 열어주고, 많은 신인작가를 배출하여 미주 한인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하지만, 시장성이 거의 없는 정기간행물을 혼자 힘으로 꾸준히 발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힘겹고 외로운 작업을 세상 떠나기 전까지 계속했다.
『문학세계』는 고원 시인 별세로 잠시 쉬었다가, 후배와 제자들에 의해 복간되어 해마다 거르지 않고 발간되고 있다. 올해 33호를 발간한다.
한편, 문인 양성을 통한 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1986년 개설한 <글마루>에 고원 시인은 정성을 쏟았다.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글마루문학회>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고원 시인이 남긴 숙제
시인의 뜻을 받들어 조금이라도 살리고 싶은 뜻을 가진 후배와 제자들이 마음을 모아 <고원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해마다 <고원문학상>을 시상하고,『문학세계』를 복간하여 발행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스승의 존재와 예술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자들은 힘을 모아 시인의 고향에 시비(詩碑)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도 물론 소중하지만, 보다 중요한 과제는 고원 시인이 이루고자 했던 문학세계를 이어받아 이루어나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선생께서 힘주어 추구하신 일은 해외에서의 민족문학, 특히 통일문학의 바람직한 정립, 그리고 한국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문학이었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변방의 나그네로 맥없는 고향타령이나 하며 변두리를 서성거리지 말고,‘세계인으로서의 코리안’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크게는 전 우주적인 세계를 전개시키자는 말씀이다. 이것이야말로 디아스포라 문학의 이정표다.
그러기 위해 고원 시인께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좋은 글을 쓰는 제대로 된 문인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고원 선생께서 늘 강조하신 가르침을 거듭 새긴다.“문제는‘시인’이냐 아니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