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지성과 투명한 언어로 사랑의 시를 써 온 마종기(86) 시인의 신작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가 한국의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천사의 탄식』 이후 5년 만의 시집으로 수록된 43편의 작품은 모두 시인이 산수(傘壽)의 길목을 지나오며 씌어진 것들이다.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 마종기 시 세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번 시집에는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친구와 일찍이 세상을 떠난 누이 그리고 어린 시절 노란 민들레로부터 보았던 작은 희망에까지 눈길을 주며 삶의 고통 속에도 결코 허물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순간을 돌아본 시들이 실려 있다.“여기에 있는 모든 시가 내 나이 팔십이 지난 후에 쓴 것들이다. 아직도 시라고 써내는 게 새삼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읽어줄 당신께 감사한다.”시인의 말이다.
시집 맨 뒤에 이례적으로 수록한 산문「영웅이 없는 섬」은 감방에서의 고초와 아버지 마해송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생활의 풍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외로운 순간들을 담은 글로, 단 한 번도 사람을 향한 진심을 저버린 적 없었던 시인 마종기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젊은 날에는/ 좋은 시인이 되고 싶어 몇 번이고/ 술 마시고 취해서 땅에 쓰러졌다./ 바른 길 외치다가 감방에도 갔다./ 종국에는 온몸에 상처만 쌓이고/ 나라를 멀리 떠나 외로워져서야/ 나그네가 된 나에게 네가 다가왔다.”(시 <먼 길>에서)
마종기 시인은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온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의 초빙 교수로 본과 2년생에게 새 학과목인 <문학과 의학>을 5년간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13권의 시집을 펴냈고, 그 밖에 시선집, 산문집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