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네라니? -윤금숙 소설가-

by Valley_News posted Feb 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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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헌 차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위해 연락을 했더니 약속 날짜에 두 사람이 차를 가지러 왔다. 한 사람은 한국사람 같아 한국말로 물으니, 그렇다며 나보다 더 반가워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노인네들 두 분만 이 집에서 사세요?”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처음 들어보는‘노인네’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아무도 없는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내가 정말 노인네로 보이세요?”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을 했더니 그도 몹시 당황해했다.

  내가 자칭 노인네라고는 하면서도 남이 노인네라고 하니 왜 그리 놀랐던지… 마치 친정에 가서 남편 흉을 맘 놓고 보는데 가족들이 내 속마음을 모르고 맞장구를 칠 때, 뒷맛이 씁쓸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하고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십여 분이나 늦게 들어오면서도 친구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숨을 몰아쉬며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기가 막혀서 별꼴이야 정말! 운전하고 오던 중에 라디오를 듣는데, 오늘 날씨가 섭씨 30도가 넘으니 육십이 넘은 노인네들은 외출을 각별히 삼가하기를 바란다고 하잖니. 기분 나빠 혼났네. 우리 나이 칠십이 가까워 오지만, 야! 말 해봐! 우리가 어디 노인으로 보이니?”

   냉수를 마시고 진정을 하더니 친구는“하기야 며칠 전 덧버선을 오른쪽은 신었는데 왼쪽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 훌렁 벗어버렸더니 한쪽에 두 개를 신고 있었잖아! 그러니 노인네라는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하지 당연해!”하며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누르는 친구의 손에 검버섯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렇게 노인네 소리는 듣기 싫어하면서도 친구들끼리 맥도날드 햄버거 숍에 가서는 앞다투어“시니어커피”하고 목청을 돋군다. 극장 앞에 가서 당당하게“시니어!”하니 조조할인은 시니어 상관없이 할인요금이라 해서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어쩌랴. 

  미국인 이곳에서는‘I am a senior.’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인‘노인네'라는 말이 왜 그리 낯설고 기분 나빴던지? 

   요즘 은퇴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갈 곳이 많다. 한국 교회에서 봄, 가을에 오픈하는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이 많아 취미생활을 얼마든지 즐길 수가 있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이런 곳도 노인대학이 아닌‘시니어 칼리지’라고 명칭을 하니 노인대학보다는 더 활기차고 젊음이 넘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미국사회에도 55세만 넘으면 누구나 시니어센터에 갈 수가 있다. 그곳에도 여러 프로그램이 많다. 한 친구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뜨개질로 봉사를 하고, 또 다른 친구는 퀼팅으로 생활용품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며 행복해한다. 

   무엇보다 은퇴하고 남을 돕는 일을 한다는 건 더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한 친구는 간호사로 은퇴해 주위의 아픈 분들을 열심히 돌보며 인생 이모작의 삶을 보람 있게 사는 친구도 있다. 

   이렇게 봉사를 하며 열심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이라는 기준을 몇 살로 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육십 대에도 이미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고 부정적으로 우울하게 산다면 그 삶은 이미 노인이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무릎 꿇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회적인 유대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긍정적인 삶을 살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문득 김형석 교수가 떠올랐다. 1920년생이신 김형석 교수는 60세에서 75세 사이를 인생에서 가장 좋고 행복한“황금기”라고 강조했다.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과 배움을 통해 정신적 성장과 보람을 느끼며 인생의 열매를 맺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분의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2026년에는 이런 계획들을 해봤다. 노인네 소리가 듣기 싫으면 젊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겠다. 우선 건망증이라는 괴물이 내 머리 속으로 더 들어와 자리 잡기 전에 열심히 무엇인가로 채워서 재무장해야겠다. 날마다 산책은 당연한 일이고 책과 신문, 뉴스도 열심히 보면서, 인간보다 1만 배가 더 똑똑하다는 AI가 뭔지도 관심을 가져 보려 한다. 하지만 AI는 우리의 마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데에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다. 

   빠른 세상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최소한 따라는 가야겠다는 생각과 지나온 세월의 고통과 고난을 내려놓고 날마다 감사하며“사랑합니다.”를 자주 말하리라! 

   곧 봄이 오고 있으니 자칭 지란지교라고 자부하는 두어 명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샌클라멘테 피어에 가서 산책도 하고, 맛난 점심에 커피를 마시며 요즈음 읽고 있는 책과 영화, 음악 이야기도 해보려 한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사는 아름다운 노인이 되고 싶다. 그리하면“노인네”라는 말도 당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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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숙 약력>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미주 크리스천문학 수필 입상,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 단편소설 당선

미주 펜 문학상, <한국소설> 해외문학상

단편소설집 <먼 데서 온 편지>, 수필집 <그 따뜻한 손> 출간

단편소설집 <코비드19의 봄>(공저) /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yoonkums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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