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현의 작은 소설> 동양과 서양 부딪치다

by Valley_News posted Feb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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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로 동양과 서양의 부딪침은 만만치 아니 하였으니,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서글펐다.

  우리의 강동석 선생은 고매한 인격을 갖춘 선비였다. 준수한 외모에 생각이 깊고 조심스러우며, 인간적 향기 그윽하니 가히 군자라는 칭송받기에 아무 모자람이 없었다. 박학다식하여 여러 모로 배울 점이 많고, 언제나 둘레를 두루 밝히는 어른이기도 했다.  

  동석(東晳)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오래 생각하여 지으신 것으로‘동양의 밝음’이라는 크고 넓은 뜻을 담고 있다. 대쪽 선비로 널리 이름난 할아버지는 결국은 동방의 정신이 서방을 밝히게 될 것이라는 큰 뜻을 품고 있었고, 그 뜻을 장손 이름에 담은 것이다. 자손을 향한 조부모의 마음은 늘 그렇게 뜨거운 법이다. 

  그런데, 강동석이 생각하는 바 있어 삶의 터전을 서방의 나라 미국으로 옮겼다는 단 하나의 탓으로 겪은 수난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통. 썩. 캥!    토옹 써억 캐애앵

  자기 이름이 이렇게 변질된 것을 처음 아는 순간 강동석 선생은 기절초풍 직전까지 갔다. 숨이 컥 막혀 견딜 재간이 없었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의 관문인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서 사무실에 끌려갔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 공항 직원은 버럭버럭 화부터 냈다. 방송을 통해 그렇게 여러 번 불렀는데, 왜 응답하지 않았느냐며 엄청 짜증을 냈다.

  날 불렀다구? 뭐라고 불렀는데?    뭐라고 부르긴! 당신 이름을 불렀지, 미스터 통썩 캥이라고, 토옹 써억 캐앵!

  뭐야! 그건 내 이름이 아니다. 내 이름은 강동석이다, 강!동!석!

  그렇게 동양과 서양은 첫 만남에서 정면충돌했다. 

  아무리 해도 조선의 선비‘강동석’이 요상망칙한‘통썩 캥’으로  

변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름이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고, 조상님 생각을 하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동양의 거룩한 정신적 가치가 서양에 와서 이렇게 무참하게 허물어지는 꼴을 봐야하는 건 혹독한 고문이다. 통썩캥이라니!

  물론 이 사람들이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남의 이름을 제멋대로 부르는 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한글처럼 훌륭한 문자를 갖지 못한 안타까움도 충분히 이해하고 불쌍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거나,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발음교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용히 물러서서 현실에 적응하라,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선비 체면에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개인적인 모욕이나 불쾌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상징적인 문제다. 동양정신이 서양인들의 무식과 무례를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   

  물론, 계속 맞서고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융통성 없는 꼰대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답답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여쭈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군자는 나가고 물러섬을 스스로 정하는 법이다.”

  스스로 정하기 어려워서 여쭌 건데… 이번에는 마음 통하는 이민 선배의 자문을 구했다. 그 선배도 이름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은 선험자다.

  상담 결과 얻은 것은 어쩐지 어정쩡한 절충안이었다. 일단, 충돌의 원인인‘동석’이라는 이름을 잠시 선반 위에 곱게 모셔놓고, 미국이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궁리 끝에‘도널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줄여서는‘돈’… 

 ‘돈’에 미쳐‘돈’인간이라는 느낌도 있고, 트럼프 대통령 이름과 같아서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나마 본명과 가장 비슷한 이름이었다. 

  성은 한층 복잡했다. 명색이 뼈대 있는 가문의 장손이 ‘성을 간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우선‘캥’을‘갱’으로 수정했다. 강아지처럼 캥캥거리는 것보다야 갱갱거리는 편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았다. Kang을 Gang으로 고치려니 갱단이 싫어할 것 같아서 Ghang으로 수정했다. 그렇게 고치는데 변호사비도 제법 들었고, 별 생각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Kang이라고 쓴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의 강동석 선생은‘도널드 갱’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무쪼록 평탄한 앞날을 위해서 간단하게 축하주도 한 잔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편하게 미스터 도널드 갱 또는 돈 갱이라고 불렀다. 어쩌다 가끔 도널드 강이라고 불러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반가웠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건 개의치 않으며 살기로 했다. 본질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졌다. 하긴,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처럼 세계무대에서 자랑스럽게 활동한 사람도 있으니…

  그러다가, 문제가 터진 것은 아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지었다.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자랑스러운 대한인의 자손 아브라함 강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씩씩하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이렇게 착하고 튼튼하게 자라면 정말 링컨 대통령처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특했다. 공부도 무척 잘 해서, 줄곧 학교 친구들의 부러움에 행복하게 시달렸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외모나 피부색에 대한 의구심과 갈등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도 문제는 이름이었다.

   친구들 중 몇이 아브라함을‘썬 오브 갱’이라고 부르며 킥킥거렸다. 처음에는 건들거리는 몇몇이 장난으로 그러는가 싶었는데, 얼마 뒤부터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어떤 녀석은 어떻게 알아냈는지‘썬 오브 통썩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강동석 씨에게는 그 명칭이 모욕적으로 날카롭게 가슴에 박혔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는데, 견딜 수 없게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우리의 강동석 선생은 눈을 감고, 신음처럼 토했다. 

  “아, 그만 돌아가고 싶구나!”

  어린 아들 아브라함이 물었다. “어디로요?”  고향으로… ”

“여기가 내 고향이라고 그랬잖아요.”   

  “누가?” “아빠가 늘 그랬잖아요.”

  강동석 선생은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흘렀다. 뜨거웠다.

  동양과 서양은 그렇게 잔인하고 부딪치면서, 섞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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