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 깜빡깜빡 -<소설가>김영강-

by Valley_News posted Jul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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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이야 이혼-- 이번에 못 찾으면 이혼이야--. 진짜로 이혼한다고오--”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다. 

  “언제 외출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열쇠 없어진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 아냐? 한번 두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야?”  

  뭐? 열쇠 잃어버렸다고 이혼을 해? 70이 넘은 나이에? 그깟 일로 이혼했다면 벌써 골백번은 갈라섰겠다.

  “이젠 정말 나도 지겹다 지겨워. 맨날 따라다니며 챙겨줘야 하니 나도 지쳤다고. 다른 집은 남편 뒤치다꺼리를 와이프가 해준다는데 우리 집은 완전 거꾸로 됐다고. 어디 열쇠뿐이야. 선글라스도 다 잃어버렸잖아?” 

  언제는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살랑거리더니, 이젠 맘이 변했다 그거지? 그렇지만 지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경자라 목구멍으로 말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또 냄비란 냄비는 다 태워 먹었잖아? 여자가 왜 그래? 그러다가 언젠가는 집까지 홀랑 태워먹을 게 뻔하다. 뻔해.” 

  주제가 열쇠면 그 얘기 하나로 끝내야지 왜 이런저런 다른 일까지 들추어내면서 마누라 속을 긁어? 쪼잖케시리···.  하지만 그의 말대로 가물가물 깜빡깜빡이 한번 두번도 아니니 화를 낼 만은 하다. 그러나 이혼이라는 단어는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쨌든 원인 제공자는 자신이 아닌가?

  경자는 열쇠를 찾는 척하며 서재로 슬쩍 피했다. 다행히 남편이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길길이 뛴다고 발 달린 열쇠가 놀라 튀어나올 리 만무이고, 이왕지사 일은 벌어졌는데, 좀 점잖고 존경스런 남편 노릇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컴퓨터를 켜놓고 우두커니 앉았는데 문 닫는 소리가 쾅! 하고 들렸다. 얼른 창가로 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자동차를 타자마자 그는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보통 때보다는 더 큰 소리가 부르릉거렸다. 

  경자도 요즘 기억력이 뚝 떨어진 것을 실감한다. 가물가물 깜빡깜빡 가물가물… 

  외출을 하려고 여기저기 열쇠를 찾다보면 가방을 든 손가락에 키가 걸려 있질 않나, 어느 땐 약도 안 먹고 핸드폰도 두고 나와 도로 집엘 들어가서 일단 약 먼저 먹고 핸드폰 찾느라 또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럴 땐 전화를 걸어보는 수밖에. 이제는 귀도 갔는지 소리는 들리는데 어딘지를 몰라 이방 저방을 또 헤맨다. 그러다가 찾고 나면 이제는 손에 들고 있던 열쇠가 없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식당에서 나와서도 맡겨놓은 키를 찾느라 가방을 뒤지지를 않나. 키뿐이 아니다. 안경이 한 두 개가 아닌데 다 어딜 갔지?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헤매다보면 안경은 벌써 귀에 걸려 있다. 텔레비전 리모컨트롤을 전화기 받침대에 꽂으면서 이게 왜 맞지가 않아? 하다가 폭소를 터뜨린 적도 있다.

  친구들이 모여 이게 치매니? 건망증이니? 하고 쏟아놓는 이야기들에 비하면 경자는 그리 중증은 아니었다. 별 희한한 일들이 많아 배꼽을 잡고 웃다가 결론은 다 건망증 쪽으로 나기 마련이다. 

  열쇠를 어디다 놓았는지를 몰라 찾아 헤매면 그건 건망증이고, 열쇠를 손에 쥐고 이게 뭐하는 물건이지? 하고 요리조리 살피면 그건 치매란다.  

  

  경자는 본격적으로 열쇠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누구는 냉장고에서 전화기를 찾았다기에 냉장고 안도 들여다보았다. 침대보에 시트까지도 들춰보았다. 재킷 등, 바지 호주머니까지도 다 뒤져보았다. 심지어 휴지통까지 쏟아 보았으나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방, 거실, 부엌,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보고 또 보았다. 보통 때는 들지 않는 핸드백까지 백이란 백은 다 뒤져보았다.

  현관에 있는 장식장 거울 앞이 열쇠 놓는 자리다. 거기에 없으면 핸드백 안에 있거나 어디에 있거나 두루두루 찾으면 별 탈 없이 찾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뒤져도 오리무중이다. 열쇠가 한두 개가 아니고 한 뭉텅이가 달렸으니 어디 사이에 끼일 리도 없다. 경자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 혹시 남편 열쇠를 놓아두는 곳에 두었나 하고 안방 침대 왼쪽 스탠드 아래까지도 살펴보았다. 밖에서 잃어버렸을까도 생각해 봤으나 그건 절대 아니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편이 주로 운전을 했고, 요즘은 혼자 나간 적이 거의 없어 언제 열쇠를 사용했는지조차도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거꾸로 쳐 올라가봤다. 그래도 감감했다. 

  열쇠를 새로 만들려면 돈이 오백 달러가 넘게 든다. 남편한테 욕먹는 것보다 돈 들어가는 것이 더 속상하다. 보나마나 남편은 지금 열쇠 만들러 간 게 분명하다. 예전에도 그랬다. 며칠을 참지 못하고 후다닥 튀어나가 열쇠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만든 지 사흘 만에 찾았다. 아깝게 돈만 날려버려, 왜 저렇게 남자가 참을성이 없을까 하고 돌아서서 쭝얼거렸다.

 

  해가 서산에 걸렸는데도 남편에게서는 소식이 없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니아니, 절대 그럴 리는 없어! 그러다가 또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하고 몹시 불안했다. 별의별 상상이 머리를 자꾸 어지럽혔다.

  드디어 남편의 차 소리가 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후닥닥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 

  금세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야 할 그가 소식이 없어 내다보니, 옆문을 열고 뒤뜰로 가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잡동사니 연장들을 보관하고, 페인트를 칠하거나 지붕에 올라가야 할 일이 있을 때 입는 작업복들을 걸어두는 곳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 남편이 경자 앞에 나타났다. 한데 뜻밖에도 잃어버렸던 열쇠 뭉치를 들고 있지 않는가? 얼른 열쇠를 뺏어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아니····. 이거 내 키잖아? 어디서 찾았어요?”

  남편의 입에서 금세 한 옥타브 올라간 소리가 나올 것 같아 

단단히 각오를 했다. 한데 그의 자세가 왠지 엉거주춤하고, 

표정 역시 어설펐다. 게다가 말도 더듬거렸다.

 

  “며칠 전에 내가 당신 키로 옆문을 열고 들어가 창고 정리를 했거든··· 근데 말야··· 그러니까··· 그때 입고 있던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키를 넣어놨나 봐. 그리고는 그만 깜빡했네.”

 

  뭐라고? 경자 입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따발총처럼 튀어나와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지극히 잔잔했다. 뭐랄까, 동지가 생긴 것 같은 야릇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시 구절이 하나 떠올랐다.

 

  가물가물 깜빡깜빡 속상한 그 심정

  이제는 아시려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

망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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