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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이었다. 서울에 사는 손위 시누가 이곳을 방문해,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갔었다. 삼층으로 막 들어서는데 코트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늘씬한 마네킹이 입고 있는 빨간 코트였다. 그녀도 시선이 끌렸는지 얼른 다가가서는 손으로 코트 자락을 만져보았다. 감색이나 깜장색을 즐겨 입는 시누이에게 빨강은 당치도 않는 색깔인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냥 지나치는 나를 그녀가 붙들었다. 한번 입어보라는 것이다.

  사실 이곳 로스앤젤레스의 겨울은 코트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 더구나 빨강은 내게도 거리가 먼 색깔이다. 아주 짙고도 밝은 빨간색이기에 더 그랬다. 사양하는 내게 시누이는 부득부득 입어보라고 했다. 살 마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마지못해 입으면서 가격표를 보니 값이 이만저만 비싼 게 아니었다. 그녀는 예쁘다고 탄성을 질렀다. 내가 봐도 아주 괜찮았다. 내 눈높이에 맞는 로스나 마샬 수준의 가격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가격은 그 몇 배가 넘었다. 나는 빨간색을 싫어한다는 이유를 붙여 완강히 거절했다.

  그랬더니 벽에 걸려 있는 초록색 코트를 사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뭔가 내게 사주고 싶어 하는 시누이의 마음을 헤아리니 고마워 가슴이 뭉클했다. 할 수 없이 또 입어보았다. 그것도 잘 어울렸다. 화끈한 그녀는 두 개 다 사라면서 돈 낼 차비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여기는 겨울에도 날씨가 춥지 않아 코트가 필요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또 거절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내 허리를 꾹꾹 찔렀다.‘가만있어라.’는 신호다. 나는 남편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이 그의 속내를 환히 안다.‘누이는 부자니까 받아도 괜찮아.’하는 남편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누구에게나 돈의 가치는 똑같다. 능력의 한계가 다르다 뿐이지, 코트 값이 나한테 큰돈이면 시누이에게도 큰돈인 것이다. 남편을 생각하는 시누이의 마음이 모성애만큼이나 각별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미안해서라도 이번만은 정말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얌체 같아. 누나한테 맨날 넙죽넙죽 받기만 하고.’ 

  ‘누나니깐 그렇지.’

  그는 실실 웃고 나는 찡그리고, 둘은 무언의 표정과 행동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눈치 빠른 시누이가 남편과 한마음이 되어 말했다.  

  “왜 자꾸 빨간색을 싫어한다 그러니?  빨간색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 네 신랑 좋아서 싱글벙글하는 거 좀 봐라 얘...”  

  그리고 진짜로 기분 나쁜 말투로 뒷말을 이었다. 짜증이 잔뜩 난 듯, 얼굴까지 찡그렸다.

  “사주면 그냥 고맙게 받으면 되는 거야. 사양하는 것도 지나치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구. 자꾸 그러면 정말 안 사줘. 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하나만 사기로 결정을 했는데, 시누이도 남편도 백화점 직원도 초록색보다는 빨간색이 내게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색깔로 따지자면 나는 빨강보다는 초록을 훨씬 더 좋아한다. 

  지금, 나는 그 코트를 즐겨 입으면서 그때 둘 중에서 빨간 코트를 선택한 것을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유행이 바뀌어도 몇 번을 바뀌었을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빨간 코트를 애용한다. 이 나이에는 걸맞지 않은 색깔인데도 아직도“괜찮다”는 말을 듣는다. 색깔도 디자인도 지금에 와서야 더 내 마음에 든다. 

  길이도 무릎 아래로 한참 내려왔으나 치렁치렁한 긴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겨울 코트를 자칫 잘못 입었다간 마치 드럼통이 굴러가듯 짜리몽땅하게 보이기 십상인 내 작은 몸매다. 한데 이 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아주 늘씬하게 만들어 준다. 화장을 정성들여 하고 머리를 잘 손질한 후, 까만 구두와 핸드백으로 조화를 이루어 거울 앞에 서면 나는 그만 자화자찬에 빠진다. 어떤 땐, 내 몰골이 너무 흉측해 거울이 보기조차 싫어 일부러 외면을 하면서도, 또 이런 때도 있어 위로가 된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놀란 것 중의 하나가 할머니들이 립스틱을 빨갛게 칠하고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지가 않고 아주 보기 좋았다. 이제 나도 미국 할머니가 돼버렸나 보다.

  나이 탓인지 세월이 갈수록 겨울이 점점 더 추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 코트를 즐겨 입는다. 서랍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내의를 꺼내 입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사주신 한국산 내의들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추위를 타지 않았다. 이십대 시절에는 그 추운 겨울에도 스타킹을 신지 않은 맨발에 하이힐을 신고 서울의 거리를 활보했다. 그때는 빨간 코트가 아닌 까만 코트였다. 어머니는 늘 내게 밝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권했지만 나는 마다했고, 빨간색은 더더욱 질색을 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빨간색을 좀 입지... 왜 나는 그 고집을 피웠을까?  

  지금은 이렇게 빨간색을 즐겨 입으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러나 빨간 코트 입은 내 모습을 아무리 보여드리고 싶어도 이제는 어머니가 안 계신다. 

  코트를 살 당시, 시누이를 보며 나는 어머니 생각을 했었다. 빨간색을 고집하는 것이 둘이 닮아서였다. 무조건 사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도.

  나는 오늘도 빨간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선다. 폭신한 코트에 두 분의 사랑이 함께 흐르고 있어 내 몸은 더욱더 따뜻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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