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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이면 습관처럼 전화를 하곤 했다.
그날도 평소대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하게도 전화가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전화를 바꾸었거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게 분명했다. 더 이상 그녀와의 전화 통화가 불가능해지다니…
   나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다니… 전화를 끊어버린 그녀가 원망스러웠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 들어 더 자주 그녀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것은 최근 그녀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오랜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병원에 입원 중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후 그녀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슬픔 때문에 거의 실신할 듯 했다. 더구나 그녀의 주위에는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이조차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멀리 떠나 살고 있었다. 그녀의 형제들 역시 모두 한국에서 살고 있어 그녀는 평소에도 혼자 고립된 채 살아왔던 셈이다. 그녀의 슬픔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나에게 늘 그 외로움을 호소했다.
   뒤늦게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뜬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그녀와 자주 만나고 싶었지만,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혼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있어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회피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전화로라도 그녀와 자주 안부를 주고받던 터였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비극 때문인지 더욱 더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극단적이 되어갔다. 나는 그녀가 점점 더 비정상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녀는 교회를 나간다거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다못해 동창회와 같은 모임에도 나가고 있지 않았다. 주위에 친한 친구도 하나 없었다.
하기야 그 동안 이십년이라는 세월 남편의 병세 때문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살아왔던 그녀였다.
   사실 나는 그 동안 그런 불안정하고 신경이 날카로운 그녀를 대하기가 너무나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그녀의 전화가 삽시간에 끊어져 버린 사실이 나로서는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으니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셈이니 말이다.
   현대인들은 어쩌면 이토록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늘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고 미숙한 관계 속에 머물고 있는지 모른다. 외로운 섬처럼 고립된 채 자신만의 궤도를 떠돌면서.
그녀의 모습이야 말로 현대인의 비극 같은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그 동안 내가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막상 그녀와의 전화 통화의 길이 막히고 보니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그녀라는 사실과 그녀의 남편이 전직 변호사라는 사실과 은퇴를 했고, 그가 앓고 있는 병세와 병명과 그가 이승을 떴다는 사실과 지극히 단편적인 그들의 과거사만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가 지금 어디에서 사는 지도 모른다.
   미시즈 리라고만 불러왔기에 그녀의 본명도 모른다. 그녀의 남편 역시 그녀의 남편이고 이 변호사라는 사실만 알뿐 그의 본명 역시 모르고 있다. 그녀에 대해 좀 더 알아둘 걸 하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최근에 이사를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녀의 사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녀의 정원에 하얀 장미가 피어있고, 그녀가 매일 장미꽃에 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물은 적이 없으니 나에 대해 모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단지 서로에 대해 혹은 서로의 관계를 그 동안 전화번호 하나에만 달랑 의존해 왔을 뿐이었다. 얼마든지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그 번호에만 의존해 있는 관계일 뿐이었다.
그나마 전화가 바뀌면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관계가 우리가 그동안 유지해 온 관계였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이토록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회한처럼 느껴졌다. 아는 거라곤 전화번호 하나 뿐인 알량한 관계 어쩌면 현대인의 관계란 종이한 장보다도 더 얄팍하고 허무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 안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남은 물론 자신조차도 모르는 나라는 존재…
그녀의 과거에 관한 기억만 엉성한 콜라주처럼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그녀의 웃음소리, 간간히 전화를 받으며 그녀를 바꾸어주었던 최근에 돌아가신 그녀의 남편의 목소리, 동부에 있는 대학으로 떠난 후 다시 집으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그녀의 아들. 남편이 떠난 텅 빈 집에 혼자 남아 울부짖고 있던 한 가련한 여인. 최근 몸무게가 이십 파운드나 빠졌다고 푸념하던 그녀.
   그리고 또… 참, 그녀는 살고 있는 밸리지역에서 곧 엘에이의 한 콘도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중얼거렸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 상황은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전화 통화가 끊어져서 덩달아 끊어져 버린 우리를 다시 이어지게 하는 건? 세상의 모든 그들, 아니 그 모든 고독한 섬들에 다시 가닿을 수 있게 하는 조각배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한 인간이 한 인간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 동안 서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만나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그 시간들이 이토록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 말인가? 이건 도무지 무엇인가? 그 오랜 시간을 주고받고도 우리는 서로 이렇게 끝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죽음처럼 끝난다는 말인가?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마음을 조이기로 했다. 그녀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면(적어도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어쨌든 그녀에 대해 더 알기 위해 노력하리라 생각해 본다.
   그 동안 나는 모든 관계에 대해 너무나 엉성하게 생각해왔다. 너무나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꼭 그녀에게 그녀가 사는 곳이 어딘지를 묻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소도 물어볼 것이다.
   그녀의 친구나 혹은 아는 이의 전화번호라도 하나 쯤 받아 놓으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를 우리 집으로 초대하리라. 다시 전화번호 하나로 끊어지는 사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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