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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는 날이라 늦은 아침을 먹고 Sanjose길을 따라 산책 했다. 십 분쯤 걸었을까? 좌측으로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운동장에서 재잘거리며 뛰어 노는 어린 학생들을 보니 무척 부러웠다.‘참 좋은 때 다. 나도 저런 때 가 있었는데…’ 나는 그 곳에 한 참을 서서 구경하며 옛 추억에 잠겼다. 

   김포공항 입구에 송정 초등학교가 있다. 나는 이 학교의 28회 졸업생이다. 올 해에 졸업하는 학생은 아마 83회가 될 것이다. 나는 한국 전쟁 이후에 태어나 모두가 가난했던 60년대 초에 초등학교에 다녔다. 한 반이 70명이 넘는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수업했는데 교실 부족으로 저 학년은 오전과 오후반이 있었다.

   그 당시는 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빈곤이 거의 같은 수준이어서 도토리 키재기였다. 학교에서는 격일제로 맛있는 옥수수빵을 배급해 줬는데 그 구수한 냄새는 지금도 내 코를 자극하고 있다. 간혹 부잣집 애들 도시락은 흰 쌀밥에 계란 프라이가 덮어져 있었고 반찬은 어묵볶음이나 소세지였다. 나처럼 가난한 아이들은 보리밥에 반찬은 김치가 고작이었는데도,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키득거리며 불만없이 뛰어 놀았고 병원이 무엇인 줄 모르고 건강하게 자랐다. 겨울철에는 교실에 조개탄 난로를 피웠는데 양은 도시락을 난로에 얹어 놓았다. 맨 밑 도시락은 탈까 봐 당번이 위로 바꾸어 가며 놓았다.

   하굣길에 교문을 나서면 행상 아주머니 곁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 ‘또 뽑기’를 하였다.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려 놓고 흑설탕을 녹여서 별 모양의 금형을 찍은 것을 부러 뜨리지 않고 떼어 먹으면 한번 더 할 수 있었다. 또 하얀 돌 설탕을 국자에 녹여서 소다를 넣어 부풀렸던 것을 ‘달고나’라고 했는데 10원을 내면 먹을 수 있는 군것질이었다. 누에고치를 삶아서 명주실을 뽑아내고 남게 되는 것이 번데기인데 그 맛은 참으로 고소했다. 신문지를 잘라서 꼬깔콘 모양으로 만든 작은 봉투에 5원, 큰 봉투에 담은 것을 10원이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당시에 여자애들이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면 남자애들은 면도칼로 고무줄을 끊어 놓고 줄행랑 쳤었다. 좀 더 짖궂은 녀석들은 여자애들이 서 있는 곳으로 살금 살금 다가가 갑자기 치마를 걷어 올리며 ‘아이스케끼’ 소리 치고는 도망가기도 해 여자애들을 많이 울리기도 하였다. 그 여자애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 했었나 보다. 그 여학생들은 방과 후 운동장의 풀을 호미로 케내는 것도 숙제의 하나였다. 

   그 때는 피서 방법이 달리 없었던지라, 행주산성 맞은편 개화산 밑에 ‘보물 웅덩이’ 이라 일컫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여름철 한낮, 벌거숭이가 되어 동무들과 미역을 감곤 하였다.

   그 시절에 TV가 있는 집은 공항동 전체에서 한 집밖에 없었다. 김일 선수 레슬링 시합이 있는 날이면 낮에 그 집에 가서 마당 청소를 해 주고 밤에 그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짜인 대로 진행하는 쇼란 것을 성인이 된 후에 알았다. 하지만, 김 선수가 시종일관 반칙을 당하여 수세에 몰리다가 박치기 서너번으로 승부를 뒤집는 것을 보았을 때, 어린 마음에 어찌나 그렇게 통쾌했던가?

   소풍 가는 날, 줄지어 걸어서 학교 근처 야산으로 가는 것이 단골 행선지였다. 김밥에 삶은 계란 두어개, 사이다 한 병을 꿰차면 최고의 소풍 도시락이었다. 이 날은 멀쩡하던 날씨도 으레 비가 왔는데 ‘소사 아저씨가 커다란 구렁이를 삽으로 때려 죽여서 그렇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 순방차 출국하거나, 외국 국가 원수가 방한하면 전교생이 동원되어 도로변에 줄지어 서서 종이 태극기를 흔드는 것은 빠질 수 없는 행사였다.

   우리는 졸업 후 동창 모임을 사계절마다 한 번씩 연 4회 갖는다. 졸업 기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될 수 있으면 28일 개최한다. 나도 고국을 방문했을 때 두 번 참석한 적이 있다. 많을 때는 50명도 넘게 모일 때도 있다. 그 모임에서는 학력의 차이를 따지지 않는다. 또 빈부의 격차도 상관치 않는다. 더구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도 문제시 하지 않는다. 똑같이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면 격의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날을 회상해 보기도 한다. 할머니들을 아무개 엄마가 아닌 ‘영자’, ‘순자’로 호칭할 수 있어서 좋다. 남녀 구별없이‘너’로 통용되는 곳 이기도 하다. 그 때의 추억들은 이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지켜보며 지지와 격려를 해주고 받는 다정한 인연을 쌓아 가고 있으니 말이다.이 모든 지나간 일들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노을 진 석양, 서산에 걸려 있다.

   친구들아! 이제는, 우리도 내일 모레면 70줄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신의 섭리에 맡기고,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

   누런 콧물을 자주 훌쩍거리던 녀석을‘코 흘리개’란 별명으로 불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그 친구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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