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랜만에 봄을 노래하는 비가 내린다. 점점 마당의 풀빛은 더욱 진한 초록으로 바뀌어갈 것이고 우리의 마음엔 잔잔한 따스함이 퍼지리라. 얼마 전 성급하게 피어난 아몬드꽃이 행여 빗줄기에 떨어지면 어쩌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내 가슴은 노스탈자로 물들어 작은 그리움이 인다. 보고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셋... 많기도 하네.   

  두 번의 봄을 잃어버렸나. 일 년 전 새해를 맞으며 시작된 불길한 작은 속삭임은 봄쯤에 이르러 온 세상을 혼돈으로 밀어 넣었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에 태어난 나는 늘 전 세대보다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음을 축복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황해도 태생 부모님의 삶을 많은 얘기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세계대전과 해방, 6.25 전쟁과 피난생활의 역사는 어느 개인의 불행이기보다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지난 일 년이 어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생전 처음, 그것도 가장 인간의 자유가 보장 받는다는 민주국가 미국에서 꼼짝 말고 집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황당하다는 느낌도 잠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해가 바뀌도록 인간을 비웃는 듯 이리저리로 바람처럼 휘젓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크를 쓰는 일도, 함께 사는 가족 이외엔 모두가 내게 병을 옮길 수 있는 혐의자의 존재가 되고 만 세상에 익숙해져 갔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다. 

  나도 두 달 전 큰 형부를 떠나보냈다. 더욱 서러운 것은 큰언니마저 오늘도 병원에서 혼자 죽음과 마주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든 묻지 않는다. 주어진 완전한 소유다. 태어나서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로지 오늘 지금만이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내 몫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는 계속 커지는 풍선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녹아내리는 얼음덩어리일 수도 있다.   

  내 소유의 시간을 잘 관리해야 했다. 어차피 사회적 접촉이 막혀진 상황에서 개인적인 활동을 키우려 노력했다. 원래 차분히 집안 살림을 하지 못하고 바깥 활동에 익숙한 성격이다 보니 쉽지 않았다. 나이도 70줄에 들어가니 누구 말대로 이젠 나잇값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선 집에 머무르며 해야 할 일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미루어 오던 일들이 가득이다. 혼자 살면서 넘치게 쌓아놓은 물건들 정리부터 시작이다. 제멋대로 자라는 잡초로 밀림을 이루고 있는 마당정리에 정성을 쏟다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처음엔 힘든 노동에 비해 표나지 않는 모습에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말끔해진 마당은 마음 청소라도 한 듯 개운한 느낌이다.

    문득 사람 생각이 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던가. 한국에서 맺은 인연 중에는 지금까지도 깊게 이어져 있지만 잊혀진 관계도 많다. 새로운 땅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떠올린다. 40년 미국생활에서 만난 귀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과연 이처럼 어려운 시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수 없었던 지난 일 년 동안 진실로 나의 외로움을 염려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 참으로 사랑을 나누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격언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이다.

  한편 과연 나는 얼마나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염려했는지 반성도 한다. 마음은 있어도 소식 전하는 글 한 줄, 전화 통화 한 번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하루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의 흐름이다. 어찌 선선히 흘려버리기만 하겠는가.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이고, 오직 현재가 현금이란다. 오늘, 아니 지금을 소중히 할 일이다. 머물러 있지 않는 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비 개이고 햇빛이 구름 사이에 머뭇거린다. 시간 따라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갈 테고 우리의 삶도 시간의 끝을 향해 흐른다. 하루 하루.<*>


  1. No Image

    삶의 유산 - 박 복 수 <시인, 문인> -

    우리들의 생활 중에서 즐거운 일, 슬픈 일, 또는 사랑하는 일, 미워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의 뒤섞임. 그중에는 옳은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허무한 삶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혹은 죄악을 낳기도 하며 결국에는 누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2. 어머니날 글- 아름다운 사람들

    5월은 가정의 달.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사랑에 감사하는 계절. 코로나 때문에 길게 이어진 고립과 비대면 생활,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뉴노멀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 사회적 혼란 등을 겪으며 사람들의 심성이 많이 날카롭고 모질어져 갑...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3. 오월이면 더 그리운 어머니 -소설가 윤 금 숙 -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피천득- 어떤 이는 봄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낙엽 지는 가을을 좋아한다. 각자의 취향이지만 봄보다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어쩐지 우수에...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하루 -<수필가>김화진-

    오랜만에 봄을 노래하는 비가 내린다. 점점 마당의 풀빛은 더욱 진한 초록으로 바뀌어갈 것이고 우리의 마음엔 잔잔한 따스함이 퍼지리라. 얼마 전 성급하게 피어난 아몬드꽃이 행여 빗줄기에 떨어지면 어쩌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내...
    Date2021.03.29 ByValley_News
    Read More
  5. 아버님의 여자 -소설가 김영강-

    오늘이 아버님 장례식 날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민지는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다.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돌멩이가 얹혀 있는 것 같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법적으로 어엿한 아버님의 부인인 여자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
    Date2021.02.25 ByValley_News
    Read More
  6. No Image

    이름이 갖는 의미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류모니카-

    어렸을 때, 나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중학교 때부터이었던 것 같다. 내 코앞에서 선생님들이 나의 이름에 대한 일가견을 스스럼없이 펼쳤다. 기생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기생이란 조선시대 법적으로는 양민, 사회적으로는 천민대우를 받던 여성...
    Date2021.02.01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미주 문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우리말

    남가주의 문인 몇 분에게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10개>를 가려 뽑아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응답해준 문인들의 대부분은 아름다운 우리말이 너무 많아서 10개만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미주 문인들이 가려 뽑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소개한다. (원고 ...
    Date2021.01.04 ByValley_News
    Read More
  8. No Image

    내게 특별한 우리 말 -박 복 수 시인, 수필가-

    나의 작은 실수로 불쾌한 일이 있었다. "머리 뚜껑이 열리네요."라는 이메일은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우리 사랑하는 멋진 천사언니~’라 부르는 동생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다툼은 할 생각을 말라. 현명한 사람도 무지한 자와 다투면 무지...
    Date2021.01.04 ByValley_News
    Read More
  9. No Image

    생명력과 면역력 -이기정-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두 가지 힘을 겸하여 주셨다. 바로 생명력과 면역력이다. 생명력은 생명 활동을 위한 힘이고 면역력은 생명을 병마로부터 지키기 위한 힘이다. 사람이 생명력이 아무리 강해도 면역력이 없으면 생명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
    Date2020.11.23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글벗동인 소설집 <다섯 나무 숲>을 읽고 -조 옥 동 문학평론가-

    몇 주 전에 가까운 지인의 한 분으로부터 책이 우송되었다. 무심코 책을 열었다. 같은 지역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5인들이 펴낸 동인소설집 <다섯 나무 숲>이었다. 누구나 몸을 사리고 일상의 활동을 숨죽여 지내고 있는 때에 예상치 못한 동...
    Date2020.11.23 ByValley_News
    Read More
  11. No Image

    바람이 부네요 -조성환 수필가, 시조시인-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대 얼굴이 떠올라… 창가에 음력 8월 보름달을 옆에 걸어 두고 <바람이 부네요> 노래를 듣는다. 지난여름 일흔일곱으로 작고한 한국 재즈계의 대모 박성연 씨의 노년에 취입한 허스키한 목소리. 소리는 ...
    Date2020.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백신(vaccine)은 소(牛)에서 유래한 말 -종양방사선 전문의 류 모니카 -

    요즘처럼 일반인들이 전염병과 백신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코비드-19 사태 때문일 것이다. 코비드-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vaccine)이 곧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이르면 올가을에는 공급될 것으로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여...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13. No Image

    그래도 난 이웃이 있어 행복해요! -밸리 노인회 전 회장 김재봉 -

    밤은 아직 초저녁인데 어디선가 명쾌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바로 저런 웃음이 우리 이웃에 골고루 번져 나갔으면 하고… 내게도 아직은 웃음이 남아있는가? 김형석 교수는 그이 에세이집 [고독이 머무는 ...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아- 보이지 않는 몰매, 코로나 19 -박복수 시인, 문인 -

    이겨 내려는 몸부림 그러나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는 숨 막히는 가슴이여 지루한 하루, 당신의 몸부림 어느덧 잠꼬대로 신음하는 성 난 파도 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절규 하듯 공허한 선언이여 아- 나도 빨리 잠들어 저 고통을 나눠야지 여보 꿈 꾸었어요? 꿈 같...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15. No Image

    온 노멀 시대, 가을을 앓다 -조옥동 시인, 수필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눈을 뜨면 밝은 햇살이 마치 내 기상을 기다리는 듯 침실 커튼 아래 앉아 있다. 제일 먼저 신선한 아침공기를 맞으려 발코니로 통하는 거실 문을 열면, 요즘 창문 밖에는 낯선 손님들이 찾아와 기다린다. 색깔도 모습...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시 <-우리 모두 낙타되어-> - 박복수 시인-

    -우리 모두 낙타되어- 박복수 시인 탯줄 끊어지는 흐느적한 고요 끝없이 펼쳐진 황막한 모래 벌판 풀도 마르고 선인장 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숨 죽은 종말의 늪 천지개벽부터 누누(累累) 억만년 불박이 별처럼 한 치도 요동치 않은 인류 문명사 지구는 지금...
    Date2020.08.25 ByValley_News
    Read More
  17. No Image

    <치자 꽃 도둑> - 곽설리 소설가-

    지진이 잦은 캘리포니아에 큰 지진이 왔을 때 그 지진으로 모두들 집과 집에 딸린 수영장과 땅이 쩍 쩍 갈라지는 피해를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둘로 갈라지고 집이 부서지는 큰 피해를 당했던 앞집에서는 지진이 멎자마자 대 공사를 벌렸...
    Date2020.08.25 ByValley_News
    Read More
  18. No Image

    그래도 꽃은 핀다 - 윤금숙 (소설가)

    코로나19로 인해 봄이 막 시작하려는 때부터 집에 감금당했다.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봄을 기다리며 사는 나에게는 실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올 봄에는 우리 집 뒷마당에 가득한 봄으로만 만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해마다 봄이면 너...
    Date2020.07.25 ByValley_News
    Read More
  19. No Image

    밥상머리 교육과 사회정의 실현 -류 모니카(종양방사선 전문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코비드-19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 감금 정도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오랜만에 어제 작은딸네 식구가 다녀갔다. 뒷마당에서‘사회적 거리 두기’에 준해서 떨어져 앉아 이른 저녁을 먹었다. 딸은 한국토종이고 사위는 백인이다. 이 딸네 부부는 ...
    Date2020.06.24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5월 어느 날, 채널아일랜드비치에서 - 조옥동 시인. 수필가-

    2년 전,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에서 온 친구가족과 벤츄라 시티로 가는 도중 옥스나드 하구를 찾은 것은 해양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채널아일랜드를 여행할 목적이었다. 요새미트, 데스밸리, 새코야 킹스캐년 등 어느 곳보다 가주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
    Date2020.06.24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