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밸리주하나교회>오정택 목사-

by Valley_News posted Sep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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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손해를 입어 고통을 겪었다면 괴롭고, 화가 나고, 갚아주고 싶고,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그런 생각이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주 만나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용서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용서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용서가 단지 감정이라면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에게 상처와 고통과 손해를 끼친 그 누군가를 생각하면 감정적으로 절대 좋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나 감정이 상하고 우울해지게 분노하게 되고 심지어는 적대감이 커집니다. 그 사람이 와서 감정을 풀어주기 위해 큰 노력을 한다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습니까? 그래서 용서는 선택입니다. 내가 용서하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탈봇신학교 교수였던 닐 앤더슨 박사는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는 책에서 용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용서는 과거에 누군가에서 받은 고통과 상처와 손해에 대해 어떤 모양으로든 되돌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 공정한 판단을 맡기는 것이다.”“용서는 누군가가 만든 문제와 함께 살기로 결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는 이 두 번째 용서의 개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에 대해 나쁜 소문을 내고 악담한 사람을 용서한다고 해도 그 소문을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그 모든 문제와 결과와 함께 사는 방법밖에 없고, 힘들어도 그 결과와 함께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남편의 빚보증으로 인해 집을 잃어버리고 경제적 고통을 겪는 아내가 남편을 용서한다는 것은 남편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인 경제적 고통마저도 감당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용서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고, 또한 용서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용납, 용서의 바탕 위에서 우리와의 관계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바탕 위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의 함정에 빠져듭니다. 사탄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계속해서 분노와 적개심, 복수심을 증가시켜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개인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첫째, 내가 받은 상처와 고통... 손해의 결과로 내가 인생의 깊이를 깨닫고, 변화되고 성숙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그 사람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도 희생자입니다. 그 사람 역시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책임이 나에게도 부분적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해 봅니다. 그와의 관계에서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분이 대학생 시절 형편이 어려워서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저녁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배가 매우 고팠는데, 우연히 모퉁이 근처에 있는 집 대문 앞에 놓인 우유가 2병 보였습니다. 순간 갈등을 겪습니다 ‘그래도 한 병쯤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훔쳐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대문 앞에 우유 3병이 놓여있었습니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보니 한 병 위에‘아저씨 우유’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순간 고맙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아저씨 우유’ 한 병을 마시고는 다시는 우유를 훔쳐 먹지 않고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훈계와 책망이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용서가 해답입니다. 용서를 선택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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