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서 갑자기 오래전 읽었던 한중록이 생각이 났다. 약 270년 전 사도 세자는 어쩌다 그리 짧은 불행한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부모와 자녀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번 칼럼은 사도 세자의 짧은 일대기를 한중록에 쓰인 글을 토대로 제가 설명해 드릴테니 한번 읽어보시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 어떻게 자녀를 지도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도세자의 할아버지는 숙종이다. 숙종은 인현 왕후가 아내이고 장희빈과 무수리 최 씨가 후궁으로 있었다.
장희빈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바로 숙종의 대를 있는 경종이다. 무수리 최 씨는 영인군을 낳았는데 이는 훗날 경종의 뒤를 있는 영조가 된다. 경종이 왕으로 있을 때 게장과 생강을 먹은 후 심한 복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영인군이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삼과 부자를 경종에게 선물을 했는데 이를 먹은 후 경종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 왕위 계승 1순위가 된 영인군은 경종의 뒤를 이어 영조 대왕이 된다. 영조는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 영조 대왕으로 불릴 만큼 열심히 일하고 능력있는 왕이 되어갔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칭송을 받는 여러 업적을 통해 조선 최고의 왕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힐 만큼 능력있는 왕으로 일을 하면서 영조의 후사를 이을 자녀가 필요했다.
영조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효장세자요 또 한 명은 사도세자이다. 효장 세자는 안타깝게도 10살 무렵 죽었고 영조 나이 42살에 늦둥이 사도세자를 낳은 후 너무도 귀하게 금지옥엽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사도세자는 천재였다고 기록된다. 2살 무렵 한자를 깨달았다 하고 지혜가 출중하고 여러 책들을 다 깨우쳐 어린 나이에도 대신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얼마나 똑똑했던지 영조는 대신들과의 회의 때도 5~6살 먹은 사도세자를 회의에 참석을 시켜서 그 지혜를 자랑시켰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자랑이었다. 어려서부터 너무 공부를 잘해서 영조가 마음이 흡족했었나 보다. 그래서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위해 책을 직접 써서 가르치고 아들을 향한 기대치가 엄청나게 높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성장을 하면서 사도세자가 공부보다는 검술에 관심을 더 갖기 시작했다. 영조는 이것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사도세자가 부모인 영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자, 공부하라고 사도세자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공부가 모자란 사도세자를 깨우쳐주기 위해 사도세자를 정무대신들과의 회의에 참석을 시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사도세자에게 물어보고 답을 못할 경우 정무 대신들 앞에서 무안을 주고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사도세자는 점점 자존감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오로지 부모가 말하는 것만 따라 해야 하는 자아 상실의 인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영조가 나이가 먹어가면서 사도세자를 왕으로 세우기전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대리청정은 왕이 사임하기 전에 새로운 왕이 일을 잘하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제도인데 영조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사도세자를 자기도 모르게 무참히 짓밟기 시작했다.
소위 사도세자를 바보로 만들기 시작했다. 사도세자가 국가의 일을 결정하면 영조가 왜 그렇게 했냐며 핀잔을 주었고 또 결정하기 전 영조에게 물어볼라치면 영조가 그것도 결정을 못 하는 무능한 왕이라며 또 핀잔을 주었다. 사도세자는 부모에 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능한 사람에서 점점 마음속의 울화를 표현하는 과격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어느 날, 아주아주 오랜만에 사도세자가 영조와 함께 왕궁 밖으로 나갈 일이 있었다. 한중록에는 사도세자는 궁 밖에 나가는 것을 고대하며 기다렸다고 기록했다. 맑은 날씨에 궁 밖으로 나와 영조와 사도세자가 걸어가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왔다고 한다.
이때 영조는 사도세자를 불러 맑은 날씨에 이런 소나기가 오는 걸 보면 재수없는 사도세자 너 때문인 것 같으니 너는 궁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도세자는 더 과격해지고 비뚤어졌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도세자의 상처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후 사도세자는 마음에 병이 들면서 사람을 함부로 죽이기 시작하자 영조가 사도세자를 불러 물어봤다고 한다. “너는 왜 사람을 죽이느냐" 그러자 사도세자는 “마음이 상해서 그렇습니다"라고 하자 영조는 다시 “왜 마음이 상하였느냐" 물어보았고 사도세자는 “사랑받지 못하고 꾸중만 듣고 또 무서워서 그리하였습니다"라고 답을 했다고 한중록에 기록되었다. 영조는 이제 그렇지 않겠다고 사도세자에게 화해를 시도했지만 이미 마음이 병든 사도세자는 오랜 기간 영조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으며 다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사도세자의 나쁜 행실과 신하들의 모함에 의해 영조는 사도세자를 불러 자결하라고 칼을 던져주었다. 자신이 치욕을 당하기 싫어 아들에게 죽으라고 칼을 준 것이다. 이를 사도세자가 완강히 거부하자 영조는 옛 쌀 보관통인 뒤주 속에 사도세자를 집어넣고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8일 만에 죽게 만들었다.
조선 최고의 왕 중 한 명이라고 칭송받는 영조 대왕,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을 쌀통에 가두어 죽인 비정한 부모이다. 또한 자식의 말보단 주위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며 자식을 죽인 어리석은 가장이 되었다.
우리의 자녀들은 어떠합니까? 혹시 부모 말대로만 따르게 하기해 자녀의 본성을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자녀가 미우십니까?
사도세자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는 사도 세자의 외침이…
문의: 818-470-4077, 818-366-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