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랜만에 봄을 노래하는 비가 내린다. 점점 마당의 풀빛은 더욱 진한 초록으로 바뀌어갈 것이고 우리의 마음엔 잔잔한 따스함이 퍼지리라. 얼마 전 성급하게 피어난 아몬드꽃이 행여 빗줄기에 떨어지면 어쩌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내 가슴은 노스탈자로 물들어 작은 그리움이 인다. 보고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셋... 많기도 하네.   

  두 번의 봄을 잃어버렸나. 일 년 전 새해를 맞으며 시작된 불길한 작은 속삭임은 봄쯤에 이르러 온 세상을 혼돈으로 밀어 넣었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에 태어난 나는 늘 전 세대보다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음을 축복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황해도 태생 부모님의 삶을 많은 얘기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세계대전과 해방, 6.25 전쟁과 피난생활의 역사는 어느 개인의 불행이기보다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지난 일 년이 어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생전 처음, 그것도 가장 인간의 자유가 보장 받는다는 민주국가 미국에서 꼼짝 말고 집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황당하다는 느낌도 잠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해가 바뀌도록 인간을 비웃는 듯 이리저리로 바람처럼 휘젓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크를 쓰는 일도, 함께 사는 가족 이외엔 모두가 내게 병을 옮길 수 있는 혐의자의 존재가 되고 만 세상에 익숙해져 갔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다. 

  나도 두 달 전 큰 형부를 떠나보냈다. 더욱 서러운 것은 큰언니마저 오늘도 병원에서 혼자 죽음과 마주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든 묻지 않는다. 주어진 완전한 소유다. 태어나서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로지 오늘 지금만이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내 몫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는 계속 커지는 풍선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녹아내리는 얼음덩어리일 수도 있다.   

  내 소유의 시간을 잘 관리해야 했다. 어차피 사회적 접촉이 막혀진 상황에서 개인적인 활동을 키우려 노력했다. 원래 차분히 집안 살림을 하지 못하고 바깥 활동에 익숙한 성격이다 보니 쉽지 않았다. 나이도 70줄에 들어가니 누구 말대로 이젠 나잇값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선 집에 머무르며 해야 할 일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미루어 오던 일들이 가득이다. 혼자 살면서 넘치게 쌓아놓은 물건들 정리부터 시작이다. 제멋대로 자라는 잡초로 밀림을 이루고 있는 마당정리에 정성을 쏟다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처음엔 힘든 노동에 비해 표나지 않는 모습에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말끔해진 마당은 마음 청소라도 한 듯 개운한 느낌이다.

    문득 사람 생각이 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던가. 한국에서 맺은 인연 중에는 지금까지도 깊게 이어져 있지만 잊혀진 관계도 많다. 새로운 땅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떠올린다. 40년 미국생활에서 만난 귀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과연 이처럼 어려운 시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수 없었던 지난 일 년 동안 진실로 나의 외로움을 염려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 참으로 사랑을 나누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격언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이다.

  한편 과연 나는 얼마나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염려했는지 반성도 한다. 마음은 있어도 소식 전하는 글 한 줄, 전화 통화 한 번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하루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의 흐름이다. 어찌 선선히 흘려버리기만 하겠는가.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이고, 오직 현재가 현금이란다. 오늘, 아니 지금을 소중히 할 일이다. 머물러 있지 않는 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비 개이고 햇빛이 구름 사이에 머뭇거린다. 시간 따라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갈 테고 우리의 삶도 시간의 끝을 향해 흐른다. 하루 하루.<*>


  1.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정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드골 대통령이 1970년 서거(逝去)했다.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장(家族葬)으로 해라.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례(參禮)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라. 2차 대전(大戰) 전쟁터를 같이 누비며 프랑스 해방(解放)을...
    Date2022.08.02 ByValley_News
    Read More
  2. No Image

    아- 보이지 않는 몰매, 코로나 19 -박복수 시인, 문인 -

    이겨 내려는 몸부림 그러나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는 숨 막히는 가슴이여 지루한 하루, 당신의 몸부림 어느덧 잠꼬대로 신음하는 성 난 파도 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절규 하듯 공허한 선언이여 아- 나도 빨리 잠들어 저 고통을 나눠야지 여보 꿈 꾸었어요? 꿈 같...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3. No Image

    백신(vaccine)은 소(牛)에서 유래한 말 -종양방사선 전문의 류 모니카 -

    요즘처럼 일반인들이 전염병과 백신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코비드-19 사태 때문일 것이다. 코비드-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vaccine)이 곧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이르면 올가을에는 공급될 것으로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여...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감사 십계명 -찰스 스펄전-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영국 침례교 목사, 설교가)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5. <감동의 글> 사향노루의 향기를 찾아서

    어느 숲속에서 살던 사향노루가 코끝으로 와 닿는 은은한 향기를 느꼈습니다. "이 은은한 향기의 정체는 뭘까?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된 향기인지 꼭 찾고 말거야." 그러던 어느 날, 사향노루는 마침내 그 향기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험준한 산 고개를 ...
    Date2023.10.02 ByValley_News
    Read More
  6. No Image

    속 터진 만두 이야기

    60년대 겨울, 서울 인왕산 자락엔 세 칸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빈촌 어귀에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 놓고 만두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습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뺨을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낫다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뺨을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낫다. Everybody loves a lord. It's good to be related to silver. 속담 중에는 읽고 나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들이 있는데, 이 속담이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남에게 빰을 맞는다는 것은, 가장 큰 모욕을 ...
    Date2022.04.29 ByValley_News
    Read More
  8. 천 번째 편지 -고 희 숙 -

    오늘도 우체통에서 빨갛고 파란 항공우편을 꺼내드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달에 두 번씩 한국에서 보내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섯 형제 중에 나만 혼자 미국에 와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연서(...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9. 이 사람의 말-전세계 사로잡은 젤렌스키 연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이“푸틴의 총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외신은 그가 자국민을 비롯해 전 세계로 보낸 메시지를 두고“이 시대의 게티즈버그 연설”&ldquo...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스승님 말씀 -서정홍 (농부 시인) -

    이놈들아, 어디서 무슨 짓을 하든 어깨 힘 빼고 살아야 혀. 어깨 힘 들어간 놈치고 인간 같은 놈 하나 없어. 돈깨나 있고 권력을 쥐고 있는 놈들 어깨를 가만히 봐. 장관이고 판검사고 어깨 뻣뻣해지면 볼 장 다 본 게야. 그런 막돼먹은 놈하고는 상종을 하지...
    Date2022.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1. 말씀 한 마디- 카잘스가 말하는 평화

    “나는 카탈로니아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스페인의 한 지방입니다만, 카탈로니아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나는 카탈로니아의 짤막한 민요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나는 이 곡을 14년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꼭 연주...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삶의 유산 - 박 복 수 <시인, 문인> -

    우리들의 생활 중에서 즐거운 일, 슬픈 일, 또는 사랑하는 일, 미워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의 뒤섞임. 그중에는 옳은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허무한 삶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혹은 죄악을 낳기도 하며 결국에는 누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13. 꽃수레를 타고 봄은 오는데 -수필가 김 화 진 -

    문득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일까, 이유는 뭘까. 계절은 순서가 있을까. 왜 봄을 늘 첫 자리에 놓아 시작하는 것일까. 한국말 뿐 아니라 영어에서도 Spring을 제일 먼저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봄이라는 단어는 희망과 따뜻함의 상징이자, 새로운 시작이라...
    Date2022.03.03 ByValley_News
    Read More
  14. 이어령 <눈물 한 방울>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많은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눈물 한 방울>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눈물 한 방울’이었다.” 이 책은...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5. <계절의 시> 어머니 -시인 이해인 -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이 담겨 있는 유년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
    Date2023.04.26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글벗동인 소설집 <다섯 나무 숲>을 읽고 -조 옥 동 문학평론가-

    몇 주 전에 가까운 지인의 한 분으로부터 책이 우송되었다. 무심코 책을 열었다. 같은 지역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5인들이 펴낸 동인소설집 <다섯 나무 숲>이었다. 누구나 몸을 사리고 일상의 활동을 숨죽여 지내고 있는 때에 예상치 못한 동...
    Date2020.11.23 ByValley_News
    Read More
  17. No Image

    생명력과 면역력 -이기정-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두 가지 힘을 겸하여 주셨다. 바로 생명력과 면역력이다. 생명력은 생명 활동을 위한 힘이고 면역력은 생명을 병마로부터 지키기 위한 힘이다. 사람이 생명력이 아무리 강해도 면역력이 없으면 생명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
    Date2020.11.23 ByValley_News
    Read More
  18. 시대의 별 이어령 선생이 남긴 말들

    시대의 지성, 우리 시대의 스승, 진정 시대를 앞서간 분으로 존경을 받은 이어령 선생은 많은 말을 남겼다. 디지로그(digilog), 생명 자본, 축소지향의 일본인, 가위바위보론, 보자기 문화론,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등… 그가 남긴 말들은 어제...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19. 감동의 글 : 아버지의 생일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시간, 어느 순대국집에 한 여자 아이가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들어섰습니다. 남루한 행색, 퀘퀘한 냄새… 주인은 한눈에 두 사람이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언짢은 얼굴로 차갑게 ...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남은 삶의 여정 -이명렬 작가-

    매주 토요일 아침 6시면 <SBRT 마라톤> 회원들은 토런스에 있는 엘레티로(El Retiro) 공원에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레돈도비치 바닷가 옆으로 뛰며, 걸으며 10여년 넘게 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뛰지는 못하고, 굽이치는 바다 파도와 멀리...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