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봄을 노래하는 비가 내린다. 점점 마당의 풀빛은 더욱 진한 초록으로 바뀌어갈 것이고 우리의 마음엔 잔잔한 따스함이 퍼지리라. 얼마 전 성급하게 피어난 아몬드꽃이 행여 빗줄기에 떨어지면 어쩌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내 가슴은 노스탈자로 물들어 작은 그리움이 인다. 보고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셋... 많기도 하네.
두 번의 봄을 잃어버렸나. 일 년 전 새해를 맞으며 시작된 불길한 작은 속삭임은 봄쯤에 이르러 온 세상을 혼돈으로 밀어 넣었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에 태어난 나는 늘 전 세대보다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음을 축복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황해도 태생 부모님의 삶을 많은 얘기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세계대전과 해방, 6.25 전쟁과 피난생활의 역사는 어느 개인의 불행이기보다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지난 일 년이 어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생전 처음, 그것도 가장 인간의 자유가 보장 받는다는 민주국가 미국에서 꼼짝 말고 집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황당하다는 느낌도 잠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해가 바뀌도록 인간을 비웃는 듯 이리저리로 바람처럼 휘젓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크를 쓰는 일도, 함께 사는 가족 이외엔 모두가 내게 병을 옮길 수 있는 혐의자의 존재가 되고 만 세상에 익숙해져 갔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다.
나도 두 달 전 큰 형부를 떠나보냈다. 더욱 서러운 것은 큰언니마저 오늘도 병원에서 혼자 죽음과 마주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든 묻지 않는다. 주어진 완전한 소유다. 태어나서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로지 오늘 지금만이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내 몫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는 계속 커지는 풍선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녹아내리는 얼음덩어리일 수도 있다.
내 소유의 시간을 잘 관리해야 했다. 어차피 사회적 접촉이 막혀진 상황에서 개인적인 활동을 키우려 노력했다. 원래 차분히 집안 살림을 하지 못하고 바깥 활동에 익숙한 성격이다 보니 쉽지 않았다. 나이도 70줄에 들어가니 누구 말대로 이젠 나잇값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선 집에 머무르며 해야 할 일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미루어 오던 일들이 가득이다. 혼자 살면서 넘치게 쌓아놓은 물건들 정리부터 시작이다. 제멋대로 자라는 잡초로 밀림을 이루고 있는 마당정리에 정성을 쏟다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처음엔 힘든 노동에 비해 표나지 않는 모습에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말끔해진 마당은 마음 청소라도 한 듯 개운한 느낌이다.
문득 사람 생각이 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던가. 한국에서 맺은 인연 중에는 지금까지도 깊게 이어져 있지만 잊혀진 관계도 많다. 새로운 땅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떠올린다. 40년 미국생활에서 만난 귀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과연 이처럼 어려운 시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수 없었던 지난 일 년 동안 진실로 나의 외로움을 염려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 참으로 사랑을 나누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격언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이다.
한편 과연 나는 얼마나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염려했는지 반성도 한다. 마음은 있어도 소식 전하는 글 한 줄, 전화 통화 한 번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하루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의 흐름이다. 어찌 선선히 흘려버리기만 하겠는가.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이고, 오직 현재가 현금이란다. 오늘, 아니 지금을 소중히 할 일이다. 머물러 있지 않는 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비 개이고 햇빛이 구름 사이에 머뭇거린다. 시간 따라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갈 테고 우리의 삶도 시간의 끝을 향해 흐른다. 하루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