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생활 중에서 즐거운 일, 슬픈 일, 또는 사랑하는 일, 미워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의 뒤섞임. 그중에는 옳은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허무한 삶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혹은 죄악을 낳기도 하며 결국에는 누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치 있고 감동적인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인생이 바탕이 돼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어떻게 죽느냐가 또한 인생의 중요한 문제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죽음은 나와 가장 깊은 실존적 관계를 갖는 생의 현상인 까닭에 살고 죽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일 수도 있다. 훌륭히 죽기 위해서는 훌륭히 살기를 배워야 한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이냐는 어떻게 살 것이냐를 의미한다. 우리 나름으로 죽음이 우리 생명의 문을 두드릴 때 추한 꼴이 아닌, 범연하게 맞을 마음의 준비를 평소에 해야 한다. 보다 뜻있고 가치 있는 우리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생활이 뜻있는 것들이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먼저 남과 자기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인격의 존재다. 인격은 도구나 물질, 기계가 아니다. 타인에게 대용될 수 없다. 타 인격과 교환 할 수도 없다. 더구나 돈으로 매매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스스로 인격을 자각하는 자만이 자존, 자애할 수 있다. 그런 자만이 남의 인격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다. 성실이 없는 대화는 진정한 인간관계라 할 수 없다. 먼저 나 자신에게 성실하고 남에 대하여 성실해야 한다. 만물의 창조주 되신 주께서 이제는 100세까지도 살 수 있는 시간과 건강, 많은 재주와 능력을 주셨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고 뛸 수 있는 무대도 주셨다. 그래도 아무것도 이루어 놓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 주신 우리 자녀들에게도 주께서 주신 재주와 능력을 잘 물려주어 성실하고, 위대한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가 남겨야 할 유일한 유산인 것이라 믿는다.
방학이 되자 대학을 졸업한 큰 손자, 손녀도 동부에서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이것저것 수상할 때마다 소리소리 지르며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어느덧 아름다운 추억들로 남았다.
해마다 연말이면 손자, 손녀들이 패션모델로 국제 모금 무도회에 서고, 졸업식 후 수고한 선생님들을 초대, 온 가족이 친지들을 초대해 축하연을 가질 수 있었던 일은 감사만으로는 부족한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었다. 더구나 90을 바라보는 이 할매 보다 네 살이 위인 할배와 방콕이 되기 직전까지도 참석할 수 있었던 은혜는 기적중 기적이었다. 애들 넷을 다 대학에 보낸 후 중단했던 박사학위를 받은 큰딸, 홀에서 연주를 마친 막내 손자, 손녀도 형과 언니의 뒤를 이어 큰애들이 졸업한 같은 명문대에 가게 되니 이 할망구 입에서는 그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만 연발!
어제 이것저것 정리하다 나온 감사한다, 축하한다, 고맙다는 카드들과 편지들, 유학 시절(60년 초부터 만난 인연들) 동거하던 동생의 오빠가 보내주신 "당신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라는 편지부터 60년이 흐른 오늘까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존경하고 아름다운 우리 언니..."라는 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혼하고 60년이 가깝도록 시댁 친척들, 한국의 방송인들, 문인들, 합창단 지휘자들, 대원들, 동생들 등, 맺어 주신 모든 소중한 인연들로부터 받은 과찬의 격려들 덕분에 행복했던 추억들이다. 은퇴를 앞둔 마지막 연주회에서 출연자 전원 45명에게 받은 내가 좋아하는 난 꽃 꽃다발, 미주 문협에서 "두 분께서는 미주 문협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라는 우리 부부에게 주신 감사장, 많은 공로상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 하늘에서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시기 위해 빌려주신 것들이다. 내 입에 한 숟갈 넣으면 남의 입에는 두 숟갈을 넣어주면 삶은 행복한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구나 아름다운 '삶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고운 미소로 서로 안부를 물으며 끝날까지 최선을 다해 파이팅(fighting) 하시길 두 손 모아 서로 응원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