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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시니어 칼리지 <문학교실>을 맡은 지가 어느덧 7년째가 됩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잠시 쉬었다가, 이번 가을학기부터 다시 강의를 시작하고 보니 수강생들의 열기가 한층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수강생들의 수준을 잘 몰라 수필은 어떻게 쓰는가, 수필의 종류 등을 가르쳐봤는데 반응이 냉랭했죠.    

  그래서 글을 어떻게 쓰느냐 보다는 아름다운 시와 감동적인 수필을 읽고 감상하고 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문학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수강생 모두가 청춘이었을 때 읽었던 글들을 노년이 되어 다시 곱씹으니 또 다른 의미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며 좋아들 했죠.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깊은 뜻을 그곳에서 발견하게 되니 나이 듦이 너무나 좋습니다. 황혼의 내리막길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 감동을 더 갖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가을 학기, 2교시에는 수강생이 많지 않아 오붓하고 친구들끼리 담소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쉽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L수강생은 내 맞은편에 앉아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첫인상부터 눈에 띠게 묘한 아우라가 있어,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가게 되는 분이었죠. 수업이 끝나면 항상 내 옆으로 와서 환한 얼굴로“감사합니다. 참 좋았습니다.”하며 잊지 않고 손을 잡았습니다. 여운이 남는 수강생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듣게 되니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고한다며 내게 작은 상자를 손에 들려주었어요. 집에 와서 풀어보니 예쁜 화선지에 마른 꽃 이파리를 붙이고, 타이핑으로 ‘Happy Holiday! coffee하고 드세요!’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견과류를 넣은 쌀강정이 반듯한 규격으로 차곡차곡 예쁘게 담겨 있었습니다. 손수 만든 듯 했어요. 아까워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L수강생은 파킨슨병을 10년 째 앓고 있어 글씨도 손으로 못 쓰고 볼펜으로 키보드를 꼭꼭 찍는다고 했어요.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어 의자에 앉을 때나 일어날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걸을 때도 혹시 삐꺽해서 넘어질 까봐 옆에 도우미가 있어야 한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그런 환자가 항상 환한 미소를 지을 수가 있으며, 손이 많이 가는 강정을 예쁘게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던지… 

  이번에도 볼펜으로 꼭꼭 찍어 수필 한 편을 써와서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또 다른 수강생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직 시니어가 아닙니다. 60이 채 안 되었으니까요. 나중에 운전을 못하게 되면 오고 싶어도 <문학교실>에 오지 못 할 것 같아 미리 왔답니다. 저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어 밤마다 진통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잡니다. 저의 친정아버지께서도 같은 병으로 6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눈가를 닦는 모습들이 따뜻했습니다. 이렇게 소통을 하고 말 없는 위로를 해주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시를 감상하면 수강생들의 표정이 그 시에 젖어 온 강의실이 환하게 밝아옵니다. 어느 화원인들 그리 화사하고 아름다울 수 있겠어요? 가르치는 나의 마음에도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이 들어 온 얼굴에 주름살 가득 접으며 밝은 미소 지을 수 있는 모습이 처연했습니다. 그 주름살 하나하나가 살아온 삶을 말해주니 온통 추억이었죠.

 

  황진이의 시 <꿈길에서>를 낭독했을 때, 갑자기 뒤에 앉았던 수강생이 폴더로 얼굴을 가리더니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나는 읽다 말고 당황해서 내가 뭘 잘 못했냐고 옆에 친구 수강생에게 물었습니다.

  “지난달에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우울증이 걸릴 것 같아 내가 데리고 나왔더니 아직은 아닌가 봐요. 죄송합니다.”하더니 그 친구도 밖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문학교실에서는 메말랐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해서 아름답고, 쌓였던 슬픔을 풀어낼 수 있으니 좋은 힐링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나이 들어 눈이 잘 안 보인다 할지라도 책을 가까이 한다면 성장하는 삶과 동시에 아름답게 늙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학기 석 달 동안에 10권의 책을 읽었다는 수강생 두 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독상도 드렸죠.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음 시간에도 L수강생, 류마티스 수강생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뜁니다. 남편과 사별한 수강생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오기를 기원해봅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을 통해 스트레스도 우울증도 다 날려 보내는 문학교실이었으면 합니다.

  나이 들었다고 미리 포기하지 않고 뭔가 배우려고 아침 일찍부터 시니어칼리지로 발길을 재촉하는 모든 시니어들 모습이 활기차 생기가 납니다.

  끊이지 않는 배움의 열정으로 나아가는 나의 문학교실 수강생들에게 파이팅을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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