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유리창은 물론 문까지 박살이 나고 가게 안은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와글와글 서로 부딪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바닥에 깔린 옷가지들을 밟고 또 밟으며, 걸려 있는 옷들을 끌어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깥 역시 난장판이었다, 여기서는 이리 뛰고, 저기서는 저리 뛰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잔뜩 든 인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경찰차가 번쩍번쩍 불을 켜고 정차해 있었고, 정복을 한 경찰관들이 여기저기에서 서성거렸지만, 아수라장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 막을 생각 같은 건 아예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가끔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고, 상가 건물 지붕 위에서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다. 미국 언론들은 그들을 ‘지붕 위의 사나이들’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으로 불렀다.

  1992년 4월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폭동 때, 나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 매달려 한국방송을 보고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순간, 한 아이가 화면에 가득 잡혔다. 얼굴이 까무스름한 히스패닉 사내아이였다. 네다섯 살쯤이나 되었을까? 아이는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몸을 바싹 오그리고 살금살금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가슴에 넘쳐나게 옷가지를 움켜 안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옴츠러들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스산한 바람이 나를 휩쌌다고나 할까?

  한 순간 아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아주 짧은 순간…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그 아이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엊그제 본 듯 눈앞에 생생하다. 표정 없는 얼굴에 뻥 뚫린 커다란 두 눈망울이 유난히도 나를 슬프게 했다. 어느 땐, 그 어린 눈망울이 가슴 저리는 아픔으로 다가와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시를 썼다. 그 눈망울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어린 눈망울>

 

  가게 안은 온통 아수라장 무법천지

  두 팔 벌려 한 아름씩 옷가지 움켜잡고

  서로 부딪치며 우왕좌왕 야단법석

  눈알 부라리며 두리번거리는 인간들…

 

  깨진 유리 사이로 몸 바싹 오그리고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 사내아이 하나

  너덧 살쯤이나 되었을까

  가슴 넘쳐나게 움켜 안은 옷가지

  표정 없는 그 얼굴에

  뻥 뚫린 커다란 두 눈망울…

 

  텔레비전 화면에 언뜻 스치고 지나간

  그날 4.29의 슬픈 장면, 그 눈망울…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가슴 저리는 아픔으로 여전히 거기 머문 시선

  자꾸만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아이의 눈망울…

 

  30년이나 지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그 아이의

  자식들도 뻥 뚫린 커다란 눈망울 가졌으려나?

 

  지금, 그 아이는 30 중반의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날의 일을 기억할까? 그날은 총성까지 울리고 바깥 역시 난장판이었으니 아마도 기억에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야윈 얼굴에 두 눈만 유난히 크게 보인 건, 어쩌면 영양실조 때문일지도 모르니, 보이는 나이보다도 한두 살은 더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할 수도 있겠다.

  기억을 하건 못 하건 간에, 내가 왜 이리 깊이 생각을 하는지…….

  그날, 아이는 아마도 엄마를 따라 그 상점 안에 들어갔을 게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옷가지를 잔뜩 움켜쥐게 되었을까? 엄마가 아이에게 옷가지를 잔뜩 움켜쥐게 하고는‘너는 나가 있어’라고 그랬을까? 세상에 어떤 엄마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른이 된 그 아이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커다란 두 눈망울에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무척이나 선하게 보였던 아이, 엄마가 아무리 무책임했다 하더라도 나쁘게는 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예쁘고 야무진 여자와 결혼을 하여, 큰 눈망울의 아이가 둘쯤 딸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은 슬픈 눈망울이 아닌, 기쁨 가득한 눈망울이기를... <*>

봄배경_2.jpg

 


  1. No Image

    다시 읽는 글: <일상의 기적> -소설가 박완서-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
    Date2023.04.26 ByValley_News
    Read More
  2. 오렌지 - 수필가 이진용 -

    제17회재미수필 문학가협회 공모 장려상 수상작 내가 오렌지를 처음 접한 것은 충청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지금부터 꼭 60년 전 일이다. 도로를 통행하는 자동차라곤 하루 종일 3~4대가 고작인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날도 동네 또래 너덧 명이 어...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3. 톨스토이, 행복의 여정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다. 톨스토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1천여명의 농노를 거느린 영지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그의 어...
    Date2022.09.02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나의 아름다운 여신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곽설리-

    봄이다. 봄은 늘 가슴 속에 미처 말하지 못하고 오래오래 키워온 아름다운 꽃망울들을 터뜨리며 온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시련이 많았기에 어느새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봄의 기척이 느껴지며 셀리의 시가 떠오른다.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5. No Image

    감동의 글 :얼마나 추우셨어요?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6. 천국으로 이사한 친구를 그리며 -강 완 숙-

    금년 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오랜 세월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함께했던 친구는 나에게 믿음의 대선배요, 존경하는 권사님이요, 또 언니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분이었다. 나 혼자서만 비밀스럽게 진실한 친구이며 롤...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감동의 글> 천국으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길> 어느 날 한 부인이 가정생활을 비관하며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때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살기 힘들지?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소원을 들어줄 텐...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8. No Image

    남은 삶의 여정 -이명렬 작가-

    매주 토요일 아침 6시면 <SBRT 마라톤> 회원들은 토런스에 있는 엘레티로(El Retiro) 공원에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레돈도비치 바닷가 옆으로 뛰며, 걸으며 10여년 넘게 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뛰지는 못하고, 굽이치는 바다 파도와 멀리...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9. 맹노인의 눈물 -수필가 이진용-

    효도 효(孝)자는 자식이 노인을 업고 있는 형상이다. 孝자를 접할 때마다 이웃집에 살던 맹노인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진다. 그는 1980년대 초 여동생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오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들만 삼 형제가 있는데 큰아들은 중학교 2년생, 두 아들은...
    Date2023.08.31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감사를 외치는 행복 -2023년 새해를 맞으며 - 소설가 윤금숙 -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3년은 계묘(癸卯)년 검정토끼 해라 합니다. 하필 왜 검정색일까 하고 찾아보니 한자의‘계’뜻이 검정이라 해서 검정토끼로 불린다하네요. 토끼는 예부터 우리의 정서에서 가장 사랑스런 동물로 인식이 돼 있었던 것 같습니...
    Date2022.12.30 ByValley_News
    Read More
  11. 그 어린 눈망울 -김 영 강 수필가-

    유리창은 물론 문까지 박살이 나고 가게 안은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와글와글 서로 부딪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바닥에 깔린 옷가지들을 밟고 또 밟으며, 걸려 있는 옷들을 끌어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깥 역시 난장판이었다, 여...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12. <사진과 시> 고구마 두 마리

    고구마 두 마리 사진: 이상모 (그래픽 디자이너) 시: 장소현 (시인, 극작가) 고구마 두 마리 정답게 정답게 무슨 노래 부르시나? 아리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 스리랑 두런두런 소근소근 무슨 이야기 나누시나? 고구마 두 마리 아리 스리 아리 아리 어디로 가시...
    Date2023.11.06 ByValley_News
    Read More
  13. No Image

    ‘김샜다’ -수필가 이진용-

    내 외동딸 라영이는 1982년 5월생이다. 나는 8남매, 아내는 6남매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우리는 한 명만 낳아서 잘 기르기로 이미 결혼 전에 약속한 터였다. 아내가 출산 기미가 있어 화곡동 단골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나는 퇴근 후 곧장 병원으로 갔...
    Date2023.11.30 ByValley_News
    Read More
  14. 헤어질 시간 - 조성환

    그날이 다가온 것 같다. 외출할 시간, 내 딴에는 조심스레 현관문을 나설 참이었는데 기미를 챈 모모는 마른 다리를 일으켜 후들거리며 일어서려다 만다. 그는 다 소모되어 꺼져버린 전구처럼 암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력을 다해 흐릿한 한쪽 눈을 치뜨...
    Date2023.11.06 ByValley_News
    Read More
  15. <노래의 추억>: 김민기의 <봉우리> -글: 장소현 (시인, 극작가)-

    김민기와 소극장 학전(學田)을 생각하며 그의 노래를 듣는다. 특히 <봉우리>를 거듭 듣는다. 가슴이 뻐근하고 눈시울이 더워 온다. 한국 소극장 문화의 상징인 <학전>이 창립 33주년을 맞는 3월 15일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는다는 소식, 지속적인 운영난에다...
    Date2024.03.01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지금, 나도 가고 너도 간다’ -수필가 이진용 -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42개국 회원국 중 1위라고 한다. 자살 사망자의 80% 정도는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90%가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된다니 인격장애가 자살 요인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 인격장...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17. No Image

    자화상(自畵像) - 수필가 국화 리/ 이정숙-

    장소현 작가의 신작 소설집 『그림 그림자』를 탐독하며 내 마음에 담은 구절이 있다. “나는 요즈음 자화상을 그리려고 발버둥 치고 있네. 지나온 자취들을 되돌아보고 나는 도대체 어떤 중생인가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 나 때문에 아팠던...
    Date2023.11.30 ByValley_News
    Read More
  18. No Image

    “99%, 폐암입니다” -수필가 이진용 -

    내가 60대 중반이었던 2018년 8월 중순경이었다. 그때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제대로 안 되었다. 직감적으로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호흡기 전문의인 주치의를 찾아가 증세를 설명하고 CT 촬영을 할 수 있게 리퍼(refer) 해 ...
    Date2024.04.03 ByValley_News
    Read More
  19. <삶의 지혜>좋은 죽음을 위한 네 가지 준비 -정현채(서울대의대 명예교수)-

    80대 후반의 지인으로부터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죽음이 두려운데, 내색은 못하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지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고령 분들이 이와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 ...
    Date2024.01.29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삶의 지혜> 마음꽃 가나다라

    마음꽃 가나다라 평생 만나고픈 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행복’입니다. 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것은‘아름다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즐거움’입니다. 라일...
    Date2023.11.06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