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31 16:05

속 터진 만두 이야기

조회 수 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60년대 겨울, 서울 인왕산 자락엔 

세 칸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빈촌 어귀에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 놓고 만두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습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 둡니다.  

  만두소 만들고 만두피 빚고 손님에게 만두 파는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 이름은 순덕 아지매였습니다.

  입동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 졌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가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 위에서 녹이고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어린 남매는 이미 떠나서 골목길 끝자락을 돌고 있었습니다.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이내 따라 올라갔습니다. 저 애들이 만두를 훔처 먹은 것 같아 혼을 내려고 했었습니다,  

  그때 꼬부랑 골목길을 막 쫓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바로 그 남매였습니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 멘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 적 없어. 이제부터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쯤 되는 남동생이 울며 말했습니다.  

  "누나야,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 하다가 더 무안해 할 것 같아 가게로 돌아 왔습니다.  

  이튿날도 보따리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 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 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어제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 가지고 갔구먼요."  

  어느 날 저녁나절 보따리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치길래.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불렀습니다.  

  "얘들아 속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가면서 

  "얻어먹는 버릇 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 알았니?" 하는 거였습니다.  

  어린 동생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순덕 아지매 귀에 닿았습니다.

  어느 날 보따리를 또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습니다. 

  "그 보따리는 무엇이며, 어디 가는 거냐?"  

  누나 되는 여자 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 가는 거예요."  

  메마른 한마디뿐이었습니다.

  더욱 궁금해진 순덕 아지매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 집사정을 알아냈습니다. 

  얼마 전 이곳 서촌으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이리 세 식구가 이곳으로 이사와 궁핍 속에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점에서 바느질꺼리를 맡기면 어린 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입니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 낳다가  그만 모두 이승을 갑자기 하직했다는 것입니다,  

  응달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남동생이 만두 하나 훔친 이후로도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며 다니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아예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고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너희 엄마 이름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남매를 잡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봅니다.  

  "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천지신명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꼭 껴안은 아지매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 살아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 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 자루씩 갖다 주었단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나절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 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순덕 아지매는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 개는 아예 만두피를 일부러 찢어 놓았습니다.  인왕산 달동네 만두 솥에 속 터진 만두가 익어갈 때 만두 솥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30여 년 후 어느 날 만두가게 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서고 중년신사가 내렸습니다. 신사는 가게 안에 꾸부리고 만두 빗는 노파의 손을 덥석 잡습니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쳐다봅니다,     

  "누구이신가요?"   

  신사는 할머니 친구 봉임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만두집 노파는 그때서야 옛날 그 남매를 기억했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명문 미국대학 유학까지 다녀와 병원 원장이 된 봉임의 아들 최낙원 강남제일병원 원장입니다. 

  

  이 글을 읽고 오늘 아침도 감동의 눈물로 하루를 출발합니다. 누나의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품격 있는 가치관, 그리고 만두가게 주인의 고상한 품격에 고개 숙여집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이 과연 이들의 삶에 비교 우위에 있었을까요?

  우리 주변에서 오늘날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훗날 쓰여질 수 있는 일들이 혹시나 나 자신이나 주위에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 아이들도 모두 이런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을런지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또한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내 친구는 누구인가? 사람이 60세를 넘기면 살아온 나이를 세지 말고 내 주위에 술 한 잔이나 싸구려 음식 하나라도 가끔 함께 먹을 친구나 이웃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 보아야 한답니다. 많을수록 인생성공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을 이기적으로 헛되이 살지 않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


  1.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정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드골 대통령이 1970년 서거(逝去)했다.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장(家族葬)으로 해라.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례(參禮)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라. 2차 대전(大戰) 전쟁터를 같이 누비며 프랑스 해방(解放)을...
    Date2022.08.02 ByValley_News
    Read More
  2. No Image

    아- 보이지 않는 몰매, 코로나 19 -박복수 시인, 문인 -

    이겨 내려는 몸부림 그러나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는 숨 막히는 가슴이여 지루한 하루, 당신의 몸부림 어느덧 잠꼬대로 신음하는 성 난 파도 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절규 하듯 공허한 선언이여 아- 나도 빨리 잠들어 저 고통을 나눠야지 여보 꿈 꾸었어요? 꿈 같...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3. No Image

    백신(vaccine)은 소(牛)에서 유래한 말 -종양방사선 전문의 류 모니카 -

    요즘처럼 일반인들이 전염병과 백신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코비드-19 사태 때문일 것이다. 코비드-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vaccine)이 곧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이르면 올가을에는 공급될 것으로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여...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뺨을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낫다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뺨을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낫다. Everybody loves a lord. It's good to be related to silver. 속담 중에는 읽고 나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들이 있는데, 이 속담이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남에게 빰을 맞는다는 것은, 가장 큰 모욕을 ...
    Date2022.04.29 ByValley_News
    Read More
  5. No Image

    감사 십계명 -찰스 스펄전-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영국 침례교 목사, 설교가)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Date2022.12.01 ByValley_News
    Read More
  6. <감동의 글> 사향노루의 향기를 찾아서

    어느 숲속에서 살던 사향노루가 코끝으로 와 닿는 은은한 향기를 느꼈습니다. "이 은은한 향기의 정체는 뭘까?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된 향기인지 꼭 찾고 말거야." 그러던 어느 날, 사향노루는 마침내 그 향기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험준한 산 고개를 ...
    Date2023.10.02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속 터진 만두 이야기

    60년대 겨울, 서울 인왕산 자락엔 세 칸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빈촌 어귀에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 놓고 만두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습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8. 천 번째 편지 -고 희 숙 -

    오늘도 우체통에서 빨갛고 파란 항공우편을 꺼내드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달에 두 번씩 한국에서 보내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섯 형제 중에 나만 혼자 미국에 와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연서(...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9. 이 사람의 말-전세계 사로잡은 젤렌스키 연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이“푸틴의 총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외신은 그가 자국민을 비롯해 전 세계로 보낸 메시지를 두고“이 시대의 게티즈버그 연설”&ldquo...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스승님 말씀 -서정홍 (농부 시인) -

    이놈들아, 어디서 무슨 짓을 하든 어깨 힘 빼고 살아야 혀. 어깨 힘 들어간 놈치고 인간 같은 놈 하나 없어. 돈깨나 있고 권력을 쥐고 있는 놈들 어깨를 가만히 봐. 장관이고 판검사고 어깨 뻣뻣해지면 볼 장 다 본 게야. 그런 막돼먹은 놈하고는 상종을 하지...
    Date2022.06.30 ByValley_News
    Read More
  11. 말씀 한 마디- 카잘스가 말하는 평화

    “나는 카탈로니아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스페인의 한 지방입니다만, 카탈로니아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였습니다. 나는 카탈로니아의 짤막한 민요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나는 이 곡을 14년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꼭 연주...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삶의 유산 - 박 복 수 <시인, 문인> -

    우리들의 생활 중에서 즐거운 일, 슬픈 일, 또는 사랑하는 일, 미워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의 뒤섞임. 그중에는 옳은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허무한 삶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혹은 죄악을 낳기도 하며 결국에는 누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13. 꽃수레를 타고 봄은 오는데 -수필가 김 화 진 -

    문득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일까, 이유는 뭘까. 계절은 순서가 있을까. 왜 봄을 늘 첫 자리에 놓아 시작하는 것일까. 한국말 뿐 아니라 영어에서도 Spring을 제일 먼저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봄이라는 단어는 희망과 따뜻함의 상징이자, 새로운 시작이라...
    Date2022.03.03 ByValley_News
    Read More
  14. 이어령 <눈물 한 방울>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많은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눈물 한 방울>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눈물 한 방울’이었다.” 이 책은...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5. <계절의 시> 어머니 -시인 이해인 -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이 담겨 있는 유년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
    Date2023.04.26 ByValley_News
    Read More
  16. No Image

    글벗동인 소설집 <다섯 나무 숲>을 읽고 -조 옥 동 문학평론가-

    몇 주 전에 가까운 지인의 한 분으로부터 책이 우송되었다. 무심코 책을 열었다. 같은 지역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5인들이 펴낸 동인소설집 <다섯 나무 숲>이었다. 누구나 몸을 사리고 일상의 활동을 숨죽여 지내고 있는 때에 예상치 못한 동...
    Date2020.11.23 ByValley_News
    Read More
  17. No Image

    생명력과 면역력 -이기정-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두 가지 힘을 겸하여 주셨다. 바로 생명력과 면역력이다. 생명력은 생명 활동을 위한 힘이고 면역력은 생명을 병마로부터 지키기 위한 힘이다. 사람이 생명력이 아무리 강해도 면역력이 없으면 생명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
    Date2020.11.23 ByValley_News
    Read More
  18. 시대의 별 이어령 선생이 남긴 말들

    시대의 지성, 우리 시대의 스승, 진정 시대를 앞서간 분으로 존경을 받은 이어령 선생은 많은 말을 남겼다. 디지로그(digilog), 생명 자본, 축소지향의 일본인, 가위바위보론, 보자기 문화론,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등… 그가 남긴 말들은 어제...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19. 감동의 글 : 아버지의 생일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시간, 어느 순대국집에 한 여자 아이가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들어섰습니다. 남루한 행색, 퀘퀘한 냄새… 주인은 한눈에 두 사람이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언짢은 얼굴로 차갑게 ...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20. No Image

    남은 삶의 여정 -이명렬 작가-

    매주 토요일 아침 6시면 <SBRT 마라톤> 회원들은 토런스에 있는 엘레티로(El Retiro) 공원에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레돈도비치 바닷가 옆으로 뛰며, 걸으며 10여년 넘게 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뛰지는 못하고, 굽이치는 바다 파도와 멀리...
    Date2023.12.29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