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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 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오랜 세월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함께했던 친구는 나에게 믿음의 대선배요, 존경하는 권사님이요, 또 언니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분이었다. 나 혼자서만 비밀스럽게 진실한 친구이며 롤 모델로 마음에 두고 지내왔었다. 

  그런 친구를 보내고, 나는 그 다음 날부터 방황(?)했다. 친구한테 가던 그 시간이 되면 견딜 수가 없어서 무작정 차를 타고 나가 아무 곳이나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무엇을 봐도 친구의 얼굴이 어른거려 가슴이 아파온다. 설교를 들을 때도 흘끔 친구가 앉았던 자리가 눈에 들어와 아프다. 휠체어를 보고도, 워커를 보고도 아프다.  

  가끔은 친구가 아직도 그곳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운전을 하고 달리다 깜짝 놀라 길에다 차를 세우기도 했다. 옆 자리에 앉았던 친구를 생각하고 또 가슴이 아파온다.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쯤에 나는 간단한 점심을 챙겨서 친구의 아파트로 갔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친구는 내가 들어가면서“나 왔어요.”하면 반가운 내색을 속으로 감추며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 

  “왔네?! 신세를 져서…”

  나는 친구의 속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못 들은 척했다. 친구는 성격이 깔끔해서 누구한테도 신세 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마음을 못 잡고 있던 어느 날,“주님만 붙잡고 기도하면 뭬가 외롭간?” 문득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평생을 성경말씀과 기도로 사셨던 친구! 그 후로 친구한테 더 이상 야단을 맞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래 전부터 몸이 불편했기에 친구가 나보다 먼저 갈 거라는 예측을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내게 남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94세의 생신을 금년 3월에 지내고 다음 달 홀홀히 떠났다. 살만큼 사셨다고 주위에서들 말하기에 슬픔을 나타낼 수 없었다. 친구가 없는 텅 빈 세상을 혼자 견딘다는 것이 이처럼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날은 유난히도 화창한 봄날이었다. 친구와 나는 단골미장원으로 갔다. 친구는 파머를 하고 나는 컷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했다.

  친구는 설렁탕, 나는 콩국수를 시켰다. 잘 먹던 설렁탕을 그날은 반도 못 먹고 수저를 놓으면서 계절 탓인지 입맛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콩국수라도 맛을 보라고 했지만 조금 먹더니 이것도 별로라며 밀어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는데, 역시 집이 좋다고 하며 유난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알고 보니 얼마 있으면 다른 주에 살고 있는 딸이 온다며 딸 이야기, 아들 이야기, 교회 이야기를 하며 보통 때 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러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보통 때는 혼자 외로워서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붙잡았는데, 그날은 유난히도 늦기 전에 빨리 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친구와의 마지막 날을 그렇게 잘 지냈다. 

  그리고 이틀 후, 아침에 도우미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가서 보니, 친구는 침대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누워있었다. 마치 자는 것 같았다. 

  친구는 아무에게도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조용히 새벽에 혼자 하늘나라로 갔다. 응접실 탁자에는 매일 보던 낡은 성경책, 지난주의 교회주보, 커피 잔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혼자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멍하게 서있었다. 어제까지 썼던 칫솔도 치약도 그대로 있는데… 친구의 숨결이 그곳에서도 느껴지는데… 금방이라도“왔네!”하고 일어날 것만 같은데….

  문득, 친구가 양로원에서 마지막 길을 떠나지 않았다는 일이 감사했다. 잠시 다리를 다쳐 양로원 신세를 진적이 있었다. 자유가 없는 이곳이 너무나 싫다며 당장 아파트로 데려다달라고 성화를 하신 적이 있었기에…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아무에게도 신세지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대로 간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 친구는 평생을 얼마나 많이 기도를 했겠는가! 그의 그런 마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조용히 혼자 새벽길을 떠나게 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 왔다. 친구가 먼저 가 기다리고 있는 천국. 그래서 그 천국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문학소녀였던 친구는 시니어 칼리지 <문학교실>이 개강을 하자마자 문학의‘문’자도 모르는 나를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친구가 없는 문학교실에 개근을 하고 있다. 나의 롤 모델이었던 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시 한편을 함께 한다.

 

  울지 않는다면서 먼저

  눈썹이 젖어

 

  말로는 잊겠다면서 다시

  생각이 나서 

 

  어찌하여 우리는

  헤어지고 생각나는 사람들입니까?

 

  말로는 잊어버리마고

  잊어버리마고…

  등피 

  아래서.

 

 

   <글쓴이 소개>

  이 글을 쓴 강완숙 권사는 간호사로 83세까지 일했고, 팬데믹 전까지 병원 클리닉에서 봉사했다.

  발렌시아에 거주하다가, 팬데믹 동안에 혼자 너무 힘들어, 지금은 엘에이 <무궁화 양로호텔>에서 지내고 있다.

  이 글은 에브리데이교회 시니어 칼리지 문예반(지도: 윤금숙 권사) 제3문집에서 옮겨실었다.

 

가을배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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