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보수 지성인 김동길 교수(1928~2022)가 지난 10월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4세.
이어령 선생, 김동길 박사 등 시대의 어른들이 떠나시니,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생각이 들며, 쓸쓸해집니다. 중심을 잡아줄 어른이 아쉬운 어지러운 세상이라서 더욱 그렇지요.
김동길 교수는 유언에 따라, 시신은 연세대, 살던 집은 이화여대에… 모두 기증하고 떠났습니다. 빈소도 병원 아닌 자택에 차렸는데, 정재계 인사, 일반인 등 600여명 조문했다고 합니다.
콧수염과 나비넥타이, 개성적인 말투로 유명한 김동길 박사는 교수, 정치인, 방송인, 수많은 강연과 기고 등으로 폭넓게 활동하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약자에겐 한없이 다정하고 강자의 잘못엔 물러서지 않던 분”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당연히 남긴 명언도 많습니다.“이게- 뭡니까?”같은 유행어도 탄생시켰지요. 주로 정치적 발언이나 사회 비판의 돌직구 명언들입니다만, 인간적 면모를 보이는 말씀도 많아요. 그중 몇 가지를 함께 되새기면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한글만 겨우 깨친 어머니였어요. 시골(평안남도 맹산) 면장을 하시던 아버지가‘노다지를 찾겠다’며 나갔어요. 집 팔고, 논 팔고, 밭 팔고, 늘 밖을 돌면서 돈을 벌어다 주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가족을 돌봤죠. 남의 집 빨래하고 삯바느질하고. 그러면서 누님을 공장에 보내지 않고 여학교에 보냈어요.
‘못살면서 계집애 공부시킨다’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절대 화를 안 내요.‘뉘 집에선 돈을 쌓아놓고 공부시키나요?’이렇게 대꾸하셨지요.
그 딸이 이화여대를 나오고, 총장이 되고, 문교부 장관이 되고. 이런 꿈은 한 여성(어머니)의 가슴에서 나온 겁니다.”(2013년 3월 조선일보 인터뷰)
좌와 우를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제일 웃긴 게 보수, 진보라는 구분법입니다. 보수는 뭘 지켜서 보숩니까?
대학교수 중에 미국 유학 다녀와서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사람들이‘6·25 때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고 맥아더 장군이 없었으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해요. 그럼 어떻게 됐을까요.
그런 교수들 보고 저는‘그때 통일됐으면 당신 같은 사람들은 유학은 고사하고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용어도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해줘요.”(2009년 6월 조선일보 인터뷰)
박정희의 공과(功過)
“박정희가 잘못한 거 많아요. 그렇지만 건강보험 만든 것도, 경제를 이만큼 만든 것도 박정희 정권이에요.
박정희 땜에 감옥에도 살았지만, 한 번도 욕하지 않아요. 다 끝나면 잘한 걸 생각해야지, 그때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고. 그때 말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때 말 못 했으면 입 다물고 있으란 말이에요.”(2020년 5월 월간조선 인터뷰)
결국은 끌어안는 포용이 중요
“(6·25 때) 이 근처 무허가 집에 살던 화가가 있었어요. 이북에서 온 사람들인데, 미처 피란을 못 갔어요. 살기 위해서, 밥 먹기 위해서 인민군을 도왔다고 해요.
그럼 돌아온 사람들이‘우리끼리 피란 가서 미안하다’하고 껴안아줘야지. 부역을 했다고 쏴죽였어요.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건데. 대통령이‘서울 포기 안 하니까 안심하고 계십시오’해놓고. 그걸 믿고 피란 못 갔다가 고생했으면 돌아와‘미안하다’고 해야지. 그걸 부역자라고… 민족이 이래선 안 되지요.
링컨이 왜 위대해요. 남부 반란 때문에 지독히 고생하고도‘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라고 말했잖아요. 이게 뭔가 있는 문명 아닌가요.”(2013년 3월 조선일보 인터뷰)
청중을 사로잡는 강연의 비결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좋은 말이 아니에요. 좋은 말은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청중을 보면 얼굴에 나타나 있어요. 청중들 얼굴에 내 원고가 있는 거예요. 나는 따로 원고를 준비하는 대신 청중의 얼굴에 쓰인 원고를 읽어요. 그런 센스가 없어지면요? 나와서 얘기하는 거 그만둬야지요.”(2013년 3월 조선일보 인터뷰)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요소
“사람마다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요소가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꾸준함과 익숙함입니다. 꾸준한 습관과 생활환경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한 집에 오래 사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1947년부터 살던 집에 아직도 살고 있으니 벌써 68년째네요. 멀리 여행을 가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심됩니다.”(2015년 10월 헬스조선 인터뷰)
평생 독신으로 산 것에 대해
“한 번도 사랑하지 않고 살아본 적은 없어요. 여성을 떠나본 적은 없어요. 이렇게 사는 사람은 늘 동경 속에 살잖아요. 동경도 있고, 젊었을 때는 뭔가 많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노력으로 살았어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훼방을 놓는 일은 안 한다’는.
그런데 일흔이 넘으니 문제가 되지 않아. 공자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칠십이 되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라고.
형이상학적인 면에서 사랑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들도 많이 가고. 이들이 내 가슴속에 살아 있는 거지.”(2013년 3월 조선일보 인터뷰)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두라는 말도 하고 싶네요.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만큼 인생을 허무하게 보내는 일도 없을 겁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보세요. 살아 있는 시간이란 아름다운 인생의 마침표를 위해 준비하는 행복한 기간이라고 여기면 인생이 좀 더 의미 깊어질 겁니다.”(2015년 10월 헬스조선 인터뷰)
이글은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의 기사를 참고하여 간추린 것임을 밝힙니다.
김동길 교수의 명언: 세월
오늘 여기 살아 있지만 내일 이곳을 떠날 우리…
그래서, 나는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리라 마음먹습니다…
< 내 멋진 친구들에게…! >
친구야!
인생 별거 없드라…
이리 생각하면 이렇고
저래 생각하면 저렇고
내 생각이 맞는지 니 생각이 맞는지
정답은 없드라…
그냥 그려러니 하고 살자
내가 잘나 뭐하고 니가 잘나 뭐하나
어차피 한세상 살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건데
이 세상 누구도 영원한 삶은 없다네.
화낸들 뭐하고 싸운들 무엇하나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뼈에 박히고 가시가 있는 말들도…
우린 씹어 삼킬 나이와 가슴이 있잖아…
때로는 져주고 때로는 넘어가 주고
때로는 모른 척 해주자
그게 우리 아닌가 어차피 우린 친군데
그게 무슨 소용 있겠나
이왕 살다 가는 세상 그 무엇이라고~
안 되는 거 없고 못할 것도 없다.
여보게 친구 어느덧 우리 인생도
이제 가을이 되었네 그려…
꽃피는 봄 꽃다운 청춘
김동길 교수
그 좋았던 젊은 날들
이제 석양에 기울었지만
고운 단풍이 봄꽃보다 낫다네?
돌아보면 험난했던 세월
자네는 어떻게 걸어왔는가?
모진 세파에 밀려 육신은
여기저기 고장 나고
주변의 벗들도 하나 둘씩 단풍이 들어
낙엽처럼 떨어져 갈
가을 인생의 문턱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힘든 세월
잘 견디고 무거운 발길 이끌며
여기까지 잘 살아 왔으니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놓고
잃어버렸던 내 인생 다시 찾아
숙제 같은 인생 축제처럼 살자.
남은 세월 이제 후회 없이 살아가세나.
인생나이 60~70 이 넘으면
남과 여, 이성의 벽은 무너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 다 없어지니
부담 없는 좋은 친구들 만나 말동무 하며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마음껏 즐기다
언젠가 나를 부르면
자연으로 흔쾌히 돌아 가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