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환기/ 시 : 김광섭
2023.04.26 13:15
그림: 김환기 (화가)<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 : 김광섭 (시인) <저녁에>
<저녁에>
김광섭 (1905~1977)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족 한마디>
수화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의 제목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다. 가잔 친한 친구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따온 것이다.
김환기 화백은 뉴욕에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창작에 전념했다. 큰 화면에 수없이 많은 푸른 점을 찍어 완성한 이 작품은 전면점화(全面點畵)의 출발점이 되었다. 1971년 이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한국 미술계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술렁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점은 하나하나가 그리운 고향의 친구들이요, 정겨운 산천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점 하나하나를 찍었다는 이야기다.
그 그리움의 바탕을 이룬 것이 바로 김광섭의 시였다. 만년의 이산(怡山)김광섭 선생 시답게 일체의 시적 수사를 물리친 채 수묵(水墨)으로만 꾹꾹 눌러 쓴 듯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시인 김광섭의‘가짜 부고'를 듣고 애도하며 캔버스 가득 푸른 점을 채워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시와 그림은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