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정리: 장소현 (극작가, 시인)
이순재는 대한민국의 최고령 현역 배우다. 올해 여든아홉이 됐다. 구순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작품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젊고 강하다.
배우 이순재는 구순을 앞둔 나이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열연하여 큰 감동을 주었다. 지난 6월18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이 공연에서 이순재는 16회차 공연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내 큰 박수를 받았다.
이 공연으로 이순재는 세계에서 최고령에 리어왕을 연기한 배우로 기네스북에 오를 예정이다. (그는 호적상 1935년생으로 88세지만, 실제 출생 연도는 1934년이라고 한다.)
연극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대작으로, 오만함과 분노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 늙은 왕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갈등과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시적(詩的) 언어가 품은 향취와 문학적 진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작을 각색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공연시간이 무려 3시간 20분에 달한다.
배우들의 대사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특히 리어왕 역의 대사량은 살인적인데, 구순을 앞둔 노배우가 그 많은 대사를 몽땅 다 외워서 연기를 했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젊은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존경스럽다.
이순재 선생은 젊은 세대들로부터도 진정한 어른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연극계에 이런 스승들이 계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는 까닭은 완벽한 자기 관리와 완성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순재의 후배 사랑도 각별하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연예계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는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역설한다.
명배우 이순재 선생이 열연하는 연극무대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라도 가르침을 얻기 위해 그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되새겨본다.
원로배우 이순재의 말씀들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고 하니 늙어 보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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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는가? 쉬워요. 꼰대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습성과 사상, 이것을 젊은이들에게 전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목표, 새로운 능력을 갖고 새로이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구닥다리 꼰대들이 끼어서 훼방을 놓냐는 말이에요. 그러지 말자, 다만 뒤에서 그들이 창의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 그게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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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젊은이들, 종족(種族) 자체가 개량됐다고 봅니다. 용모와 체격, 머리 다 달라졌어요. 학교에서 수업할 때도 보면 예전엔 한 달씩 걸리던 게 지금은 보름이면 돼요. 잠재돼 있던 민족적인 기능이 깨어난 것이라고 봅니다. 이걸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젊은이들이 정말 마음먹고 목적하는 바를 향해 최선을 다하면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은 앞길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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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지고 있던 30∼40년 전 편견을 젊은 세대에 강요해 오염시키면 안 됩니다.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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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친한 정치인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젊은 세대들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우리가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활기 있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조건들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각 분야에서 글로벌 스타, 노벨상 수상자 나옵니다. 충분히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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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둑놈도 해보고 사기꾼도 해보고 왕도 해보고 거지도 해보고 다 해봐야죠. 출연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서 다양한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그걸 경험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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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제게 의무이고 과제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죠. 엄살 부리려면 드러누워야죠. 허허. 멀쩡해 보이지만 자려고 누울 땐 아이고아이고 곡소리 해요.
그런데요, 우리 예술은 한이 없어요. 완성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그냥 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끔 착각하는 게, 수입도 많아지고 인기도 높아지면 그게 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위에 또 있습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조건들이 계속 남아요. 그걸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남는 거지, 한때의 인기로 연명했던 친구들은 다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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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 되면 암기력이 문제예요. 떨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자기 점검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 통계 자료들을 암기했다 일주일 후에 되새김해 보는 훈련을 합니다. 대본을 외우다 보면 더러 막히는 데가 있어요. 어쩔 수 없죠, 나이가 있으니. 다시 떠올리고 기억해두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번 막히는 데서 자꾸 막혀요. 그러면 더 반복해 아주 몸에 익혀버립니다. 그래야 실수를 안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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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이 주는 교훈은 현대에도 적용됩니다. 리더는 군림하지 말고 항상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울 방법을 생각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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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완성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꾸준히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도 수십 개의 상을 타고 돈도 수십억을 벌어 빌딩 몇 개 가지고 있으면 안주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지도 않고 그런 것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고요. 새로운 작품을 한 편 한 편 할 때마다 난제가 생깁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완하고 노력하죠. 이게 우리 작업의 연속입니다. 물론 천재적인 예술가가 나타나 한 작품으로 완성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배우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아요. 명배우는 더러 있었으나 그게 연기의 완성은 아니다 이겁니다. 사실 완성은 없어요. 도달하지 못합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완성은 아니지요. 그 이후 새로운 음악가들이 나와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잖아요. 마찬가집니다. 그저 저는 이렇게 꾸준히 해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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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이순재는…
배우 이순재는 대한민국 연기 역사의 산증인이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일 때 서울대 연극반을 재건해 활동하며, 1956년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TV 방송국인 대한방송 드라마와 KBS의 첫 TV 드라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했다. 그의 연기 인생은 대한민국 TV 드라마 역사의 처음부터 함께한 셈이다.
이후 67년째 쉴 틈 없이 연기해왔다. 그동안 출연한 영화도 100편 이상, 연극도 100편 이상이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제14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평균 시청률이 59.6%에 달했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대발이 아버지’, 드라마 <허준> <베토벤 바이러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야동 순재’로 열연해 큰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국민배우’다.
완벽한 자기 관리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대중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연기에 대한,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젊고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