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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기와 소극장 학전(學田)을 생각하며 그의 노래를 듣는다. 특히 <봉우리>를 거듭 듣는다. 가슴이 뻐근하고 눈시울이 더워 온다.

  한국 소극장 문화의 상징인 <학전>이 창립 33주년을 맞는 3월 15일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는다는 소식, 지속적인 운영난에다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가 겹친 때문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많이 아프고 저리다. 김민기는 위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중이라고 한다.

  태평양 바다 건너에 살면서 한국의 일에 무슨 호들갑이냐 싶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문화 상징이 사라지고 소중한 정신적 가치가 스러지는 일이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김민기와 극단 학전, 학전 소극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학전은 배울 학(學)에 밭 전(田) 자를 쓴다.“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 즉, 모내기 할 모를 기르는 조그만 논으로 나중에 크게 성장할 예술가들의 디딤돌 구실을 하는 곳이라고 김민기는 말했다.

  그런 바람대로 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학전에서 자라났다. 한국 공연문화를 떠받치는 든든한 인물들이다.‘학전 독수리 5형제’로 통하는 배우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를 비롯해 세계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도 이 무대를 거쳤다. 윤도현은 1995년 <개똥이>로 첫 뮤지컬 출연을 했다.

  가수로는 동물원, 들국화, 강산에, 장필순, 박학기, 권진원, 유리상자, 노찾사  등 많은 예술가들이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하며 성장했다. 김광석은 199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꾸준히 공연을 펼쳐 1천회를 채웠다. 학전 앞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꽃을 가져다 놓는다. 

  이들은 입을 모아 “우리 모두는 김민기와 학전에 문화적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며,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 애쓰고 있다.

  많은 기록도 세웠다. 소극장 뮤지컬의 대명사가 된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된 이후 4275여회 공연되면서 73만명 이상이 관람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로 공연되는 등 숱한 기록을 세웠고, 세계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런 상징적 의미와 문화예술인들의 안타까움과 정성이 전해졌는지, 나라에서 나서서 지원을 약속했고, 그 덕에 폐관은 면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단은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살린다고 해서, 한 예술가의 투철하고 아름다운 정신까지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민기와 학전의 전설은 한 시대정신의 굵직한 이정표 같은 것이다.

 

  학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김민기의 노래 <아침이슬>은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애국가 다음으로 널리 불린 노래다.

  김민기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노래극 또는 시극(詩劇)이다. 깊은 사연이 담겨있을 때도 많다. 1985년에 발표된 이 노래 <봉우리>도 그렇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양희은의 설명을 들어보자. 

  “김민기가 다큐멘터리 주제음악(OST)으로 만든 거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메달을 못 따서 선수촌에도 못 남고 집으로 돌아간 선수들을 위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작가가 송지나였고, 그 주제곡으로 만든 노래가 <봉우리>였다.”

  모두들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열광할 때, 이기지 못한 낙오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따스한 눈길로 위로하는 노래… 과연 김민기답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잘 들어보면 <봉우리>는 김민기의 지금 형편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김민기와 학전이 그동안 이룩한 많은 성취들은 잘 생긴 <봉우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민기는 지금 잠시 누워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아무쪼록 그가 공언한 대로 툭툭 털고 반드시 일어나서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힘차게 출발하기를 손모아 기도한다. 그리고, 김민기라는 한 예술가의 아름다운 예술정신, 신념과 고집 등의 정신적 가치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

 

 

<봉우리> 

                       김민기 작사, 작곡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김민기1.jpg

 

김민기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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