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바이러스’를 읽고-
바이러스가 지구를 휩쓰는 위력을 간파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장소현 작가는 2021년에 <철조망 바이러스>라는 작품으로 특종 바이러스를 소개했습니다. 본적이 이북인 실향민들 가슴을 부풀게 하는 바이러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철조망 바이러스>는 그의 친애하는‘친구 발명왕’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 친구 발명왕은 가끔 나를 찾아오곤 합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지요. 획기적인 발명품을 들고 오거나, 아니면 술병을 들고 옵니다. (중략)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쳐 발명에 일로매진하고 있는데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친구는 외롭기도 하겠지요.”
-<철조망 바이러스> 본문 중에서
둘은 석양빛이 녹아든 석류 주를 마시며 친구 발명왕이 들고 온 발명품 설명을 들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풀어 놓는다며, 그의 발명품 만드는 데 10여 년 걸린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철조망을 먹는 특수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이것을 잘 사용하면 한반도 허리춤에 쳐놓은 철조망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발명왕의 말을 듣고 작가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작가도 6.25 한국전쟁 피해자이군요. 작가뿐이겠습니까. 글을 읽는 독자 국화도 가슴에서부터 뜨거움이 올라왔습니다.
발명왕은 말합니다. 비무장 지대로 들어가서 철조망에다 뿌려서 실험해야 하는데 삼엄한 감시로 실험은 못 한 상태라 합니다.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절실한 사람들이 만들었으니까요.
6.25전쟁 피해자는 입으로는 인제 그만 포기하자, 부모님은 다 가시지 않았느냐. 너는 별로 기억도 없는 곳인데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
이상한 일입니다. 그 상처는 건드리면 지금 일처럼 와락 성을 냅니다.
풍자의 달인인 작가는 독자를 껄껄 웃게 하고나서, 책장을 덮으면 통곡의 벽에 서게 합니다. 며칠 이불 속에서 울고 싶었습니다.
새벽녘에 날벼락이 떨어지자 엄마는 옷가지와 귀중품만 챙겼답니다. 가족은 먼저 의용군 차출을 피해 아버지가 숨어있던 친척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니 방문도 열려 있고 다락 안도 훤히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을 나와 한 걸음으로 가족이 있는 집을 향하여 뛰었겠지요.
운명의 장난은 가혹합니다. 만남은 어긋나버렸고, 그는 어디로 가족을 찾아 떠났을까요. 마누라와 자식 잃은 호랑이의 포효를 전에는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엄마 그리고 아들 잃고 살아가야 하는 할머니 두 여인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실존이고 삶에서 반복적으로 회자되어온 주제였습니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아빠라고 불러보기도 했을 텐데, 우린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 것도 금기였습니다. 내 엄마가 평생 병을 달고 살아 할머니가 굿판을 벌여야 했던 이유를 몰랐습니다.
얼마 전 내가 속한 문학회의 남성작가는 <크게 불러보고 싶은 내 아버지>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도 나처럼 아버지를 생이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광화문 근처를 지날 때 아버지는 청사를 가르키며“내가 일하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합니다. 어린 아들은 큰 건물에서 일하는 공무원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해 보였겠습니까.
그는 언제쯤 그 얘기를 끝낼 수 있을까요. 그 작가분에게도 철조망 바이러스 발명품을 소개하면 두 손을 흔들며 얼굴에 빛을 띠울 것입니다.
전쟁 끝난 지 70년이 넘었는데 삼팔선을 막아놓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이산가족의 심정을 몰라 행동으로 바꾸기가 힘드나요. 가족 중 한 명만 며칠 소식이 없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고 방방곡곡을 뒤지지 않습니까. 세월 잘 못 만난 네 팔자다, 라고 외면하시겠습니까. 가혹한 형벌입니다. 아직도 이권을 놓고 계산만 하는 열강의 정치인들 제발 귀를 열어 주십시오.
오죽하면 피해자의 자손, 발명왕이 뭘 해보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는 북한 출신 피난민이며, 제2의 고향인 남한도 떠나온 미주교포인 것이 분명합니다. 저같이 가슴에 무덤 몇 개 가진 연배 친구들 같습니다. 그들은 역량 있는 작가들로 포기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에 든든합니다.
“정치가는 가라. 실향민 민초가 뭉치겠다.”라고 구호를 외쳐야 합니다. 한반도의 철조망을 두고 세월이 약이 된다며 잊고 살 수 있겠습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그 한을 품고 저세상으로 갔으나 중천에 떠돌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우리 자손까지 죽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아무도 관심 두지 않게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남아서 술병을 기울이며 시작을 합니다. 아무리 70년 묵은 곰팡이 밴 이야기라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철조망 비극은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와 발명왕은 말합니다.
“성공하면 한방으로 끝나는 겁니다. 한방에! 큰 거 한방이면 노벨상도 문제없지요. 그것이 발명의 매력이지요, 치명적인 매력!”
거나하게 취한 두 사나이의 넋두리가 석양빛에 빛나고 있습니다.
장소현 작가는 그동안 50여 편의 희곡을 발표하여 무대에 올렸던 극작가이며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판타지 소설 <철조망 바이러스> 속에서 한나절 웃고 울어 보았습니다. 절망적인 현실에서 철조망 바이러스라도 발명해야 했던 두 광대의 비애가 올겨울을 더 얼어붙게 할 것 같습니다. 가을 하늘을 질러 어딘가 사라지는 기러기의 외마디, 라고 한들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국화는 믿습니다. 발명왕의 철조망 바이러스는 이미 삼팔선 철조망을 먹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실향민들이 모여 함성을 지르며 나아갈 때 철조망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