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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텔레비젼 시청을 하다보면 음식에 관한 프로를 자주 접하게 된다. 유명한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어 놓고 맛을 보게 한다.‘무슨 맛집’하며 길 찾아 나서서 음식맛을 보고 평을 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다가 어느 순간 내 입 안에 침이 고일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벌떡 일어나 냄비를 꺼내 계란 하나 풀어 넣은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할 것만 같다.

  어제 저녁에 우연히 맛집 프로를 시청하게 됐다. 다섯 군데의 각기 다른 음식점을 소개하며 각 식당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대표음식에 대한 평을 하게 한다. 그런데 한결같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들이 있었다. 

  “음… 정말 담백해요!” 

  육수로만 간을 낸 듯 맑은 장국에도 담백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재료와 고추장이 듬뿍 들어간 걸죽한 부대찌개도 담백하다며 손가락을 치켜올린다. 크림소스 때문에 보기만 해도 속이 니글거릴 것 같은 파스타를 후루룩 빨아 삼킨다. 소스가 잔뜩 묻은 입술을 혓바닥으로 슬쩍 닦아내며 또‘아, 정말 담백해요’한다. 

  한 열 명이 족히 넘는 사람들 모두 각기 다른 빛깔과 맛을 내는 음식들이 한결같이 담백해서 맛있다며 흡족해한다. 피식 웃음이 나더니 슬쩍 속이 불편해졌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공연히 심술이 났다. 요즘 한국의 음식은 어떤 음식이건 내 입에 맞으면 담백한 맛이고, 담백하다는 뜻은 무조건 맛이 있다는 거구나! 빈정거림이 위장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담백이란 과연 무슨 맛이지? 정말 그 진짜 맛이 궁금해졌다. 사전을 뒤적여 봤다.

  ‘최소한의 양념으로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려낸 맛’이 담백한 맛의 정확한 의미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찰의 음식들이 대표적으로 담백한 맛을 내는 음식이다. 사전 속에서조차 요즘 언론의 영향으로 무조건 음식이 맛있으면 담백하다며 무분별한 표현을 지적한다.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아직은 다행이다. 조미료가 범벅인 음식에 담백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사전에서 알려주기라도 하니 말이다.

  ‘착하다는 뜻이 뭐야 고모?’하고 묻는 대학생 조카에게 장난스럽게“고모 같은 사람… 크크크…”하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둥절해하는 조카에게 한국어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 줘야했다.

  착한 몸매, 착한 가격… 그렇게 외쳐대는 텔레비전 속의 말잔치를 들으며‘나는 한국사람인가?‘하고 속으로 물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살던 어릴 적, 내가 배운‘착하다’는 물건의 가격이라든지 사람의 몸매에 붙일 수 있는 형용사는 적어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좋은 것, 오직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한국인들은 착하다는 평을 하고 있구나 라고 대충 어림잡아 받아들였다. 

  그리고‘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짙은 한국어의 뜻들이 이제는 지독한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반영하듯 그 본래의 뜻조차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만치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됐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뒷맛은 여전히 떫고 쓰다.

  내가 알고 있던 예전의 한국과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른 것 같다. TV나 신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국의 변화에 대한 불편함이 내 마음속에 많이 부정적으로 일그러져 가고 있다. 어쩌면 나도 한국인인 줄 알고 있는데 정작 그 속에 들어가면 절대로 한국인으로 섞여 살아내지 못할 것 같은, 이질감에서 오는 작은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에 베란다에 있는 여린 화초들에 물을 준다. 아침 공기와 가냘프지만 자연의 힘으로 자라나는 생명의 모습이 상쾌하다. 덩달아 나도 하나씩 껍질을 벗어내고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내 영혼이 단순해지는 걸 느낀다. 그러기를 소망한다.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조미료가 버무려져 있을까. 그래서 지금 나는 어떤 맛을 내고 있는 걸까. 원래 내 안에 있는 원재료는 과연 어떤 맛을 낼 수 있을까. 세상이 아무리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치 변해간다 해도 할 수만 있다면 담백한 인생을 살아내고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신이 선물해주신 내 본연의 맛만, 그대로 느끼고, 간직하고 감사하며 살아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담백한 인생은 아닐까. 

  자연과 더불어 착하게 살고 싶다. 이 아침에 작은 소망이 가슴에 움을 튼다. 가볍다, 개운하다, 담백하다.

  ‘마음씨나 행동이 곱고 바르며 상냥한’정말 착한 사람이 될 것만 같다. 피식 웃으며 작은 수첩에 한국어로 짧게 메모한다.

  “역시 담백한 게 좋은 거구나…”

 

   김향미

   1979년 도미. 2004년 <문학세계> 수필 부문 신인상, 미주한국일보 문예 공모 수필 부문 입상. 미주한국일보 <여성의 창> 필진 역임. 글마루문학회 회원. 고원기념사업회 회계이사. 미주한국문인협회 총무이사 역임, 현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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