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본 듯이 보거라>
오문강 (시인)
대문 열고 한 발짝만 나서면
아버지가 심어주신 향나무가 오른쪽에 서 있다.
‘나 본 듯이 보거라’
바로 옆엔 내가 심은 연산홍이
봄이면 진달래처럼 피어 향나무를 떠받들고 산다
나무를 무척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향나무를 으뜸으로 치셨다
아버지 농장은 향나무가 거의 다 차지하고 있어서
귀하다는 야자나무도 기를 펴지 못하고
밤나무, 대추나무 따위는 이름표도 달지 못했다
모두 양지바른 곳에 살고 있는 것도 다행인지
주눅 들지 않고 우쭐우쭐 잘들 살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셨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시고
병문안 자주 갈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향나무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향나무는 나를 내려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무도 우시는가?’
오랜만에 셋째 여동생 집에 계시는 아버지를 방문했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오후
우린 앞마당 낮은 돌담에 나란히 앉아서
말없이 서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 할머니 산소 어딘지 아냐?’
한낮이라 따듯한데 금세 한기가 돌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아버지는 멀리 가신 할머니를
이름이 서로 다른 어머니를
아버지와 나는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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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강 시인
숙명여고, 이화여대 졸업
1986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까치와 모국어> <거북이와 산다>
<선생님 꽃 속에 드시다> 출간
미주문학상, 미주시인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