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큰 회사의 간부로 외형은 꽤 괜찮았지만, 정신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 급진적 성향으로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한 수감 및 고문, 불안과 절망의 고비에서 자살 시도 등 젊은 시절의 헝클어진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로의 걷기 여행이었다.
그는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에 깃든 마법 같은 힘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피폐해진 영혼에 물이 차오르듯 설렘의 느낌을 맛보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여행에 감화되어 쓴 첫 소설이 “순례자”이고 그를 명망 있는 작가로 올려놓는다.
누구나 이메일을 쓰고 카톡을 보내지만, 그러나 청춘의 한 시절, 그리운 이에게 밤을 앓으며 편지를 쓸 때 느낀 그 설렘은 다 어디로 갔을까?.
늙는다는 것이 육체적인 노화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낌에 감정이 메말라 더 이상의 설렘이 없을 때 늙는 것이다.
코엘료를 살게 한 걷기 여행이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설레어 보았는가? 누구나 은퇴 후의 여행을 꿈꾼다. 그걸 실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가 체력이다. 체력이 되어야 여행을 할 수 있고 시차 적응을 할 수 있다.
예전, 여고 동창회 모임에서 들은 어느 선배님의 이야기.
딸이 오랫동안 계획한 가족 유럽 여행에 설렘을 안고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의 멋진 숙소에서 꿈같은 첫날 밤을 보낸 후, 대망의 유럽투어 첫발을 내디딘다.
파리와 유럽 여러 도시, 모두 비슷하게 지하철과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만, 관광명소와 박물관, 미술관 등 장소 이동 때마다 걸을 일이 무척 많다.
젊은 딸의 계획 중에는 나이 드신 부모님의 체력이나 걷는 속도 등은 미처 예상할 수 없었다. 평생 운동과는 담쌓고 살았던 그 선배는 딸의 여행 스케줄을 전혀 맞출 수 없었다. 재촉하는 딸의 잔소리에 무거운 발을 끌며 따라나섰으나 루부르, 샹젤리제, 베르사이유 궁전 등등, 황홀하게 꿈꾸었던 파리의 명소들이 하기 싫은 숙제의 나열일 뿐이더란다.
결국 선배 내외는 숙소 근처만 적당히 어슬렁거리고 딸 내외는 어쩔 수 없이 자기들만의 변경된 여행을 소화하며, 기쁨과 감동이 없는 반토막 난 유럽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난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게 가까이 살고 있는 딸이 종종 여행을 다니면서도 부모님들께는 더 이상 동행 권유가 없더라며, 그게 그렇게 섭섭하고 괘씸하더란다. 그러면서 자신의 저질 체력을 한탄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게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남편의 환갑 기념으로 딸이 유럽 가족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여행에 진심인 큰딸은 대학 때 6개월을 휴학하고는 아빠의 커다란 백패킹용 배낭을 빌려서 유럽 배낭여행 계획을 촘촘히 적은 6개월 스케줄표 프린트 한 장을 남기고 떠나서는 그 계획에 한 치 오차 없이 여행을 실행하고 무사히 돌아온 바 있었던 터라, 딸의 여행 계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출발 전부터 조금 긴장했었다.
예상대로 딸의 여행 스케줄은 쉽지 않았다. 2주일 유럽 여행하는 동안, 하루에 걷는 걸음이 거의 8~10마일씩이었다. 다행히 10년 넘게 남편과 동행한 주말 등산 활동이 이 강행군을 너끈히 견디게 해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 여행 이후, 딸은 틈만 나면 가족여행을 추진한다. 사실 여행의 모든 걸 딸들이 다 계획하고 예약하고 실행하니, 남편과 나는 편안하게 동행만 할 뿐이다.
가끔 딸들에게 얘기한다. 아빠 엄마는 항상, 셀렐 준비가 되어 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