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넘기 >
하늘과 땅 사이
검은 아이 흰 아이가
왼쪽과 오른쪽 줄 끝을 돌리고
다른 애들 둘이 줄을 넘는다
하나 두울
셋하고 네엣.
아시아와 라티노 애들 차례라
같은 줄을 잡고 훨훨 휘두르면
이번엔 다른 편이 신나는 줄넘기.
다섯 여섯
열하고 스물.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색들이
리듬의 프리즘을 이루고
장단 흥겨운 애들이 길을 따라
훌훌
세계 너머로 줄넘기.
인종은 몰라라 같은 줄을 붙들고
울긋불긋 즐거운 애들은
구성진 율동으로 같이 놀기.
하늘과 땅 사이
한자리에서 멋지게
줄을 넘는다.
(1993년 4월, L.A.폭동 1주년에)
<해설>
고원 시인은 서정시부터 현실참여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의 시를 썼다. 미주 한인이민자들의 애환과 나그네 정서를 노래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지만, 현실 문제에 대한 발언에도 늘 앞장섰다.
사이구 LA폭동을 다룬 일련의 시들로 현실참여의 대표적 작품들이다. 1992년 2월에 발표한 <검은 눈물로 가듭나>는 사이구의 배경이 된 두순자 사건을 다룬 작품이고, <LA애가(애가)>는 폭동의 현장을 안타깝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고발한 역작이다. 그리고 여기 소개한 <줄넘기>는 폭동 1주년에 즈음하여, 아이들의 줄넘기 놀이를 통해 인종 화합의 간절한 꿈을 노래하고 있다.
이 세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면 훌륭한 시극(詩劇)이 되는 구조로,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글: 장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