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태도가 상대방에게는 큰 무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운전할 때 실수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꿨다가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작은 부주의로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속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지르는 잘못을 우리는 흔히“부지중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교회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바로 이“부지중에”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표현이었는데, 함께 읽고 묵상하다 보니 이 단어가 주는 울림이 참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를 읽어보면“부지중에”라는 표현이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샤가(shagah)라는 단어인데, 이는 “실수, 무지, 의도치 않은 잘못”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고의로 반역하거나 알고도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저지른 죄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죄로 보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몰랐으니 괜찮다” 할 수 있겠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실수조차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죄였고, 반드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짓는 죄만이 아니라, 부지중에 짓는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의 말, 우리의 표정, 우리의 무지와 게으름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종종 경험하는 것은 누군가 의도치 않게 한 행동 때문에 다른 성도가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입니다. 본인은 전혀 몰랐는데, 상대방은 밤잠을 설칠 정도로 힘들어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다 알 수도, 다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12).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는 더 이상 매번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 심지어 알지 못하고 지은 죄까지도 덮으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지은 죄든 모르고 지은 죄든, 고의든 부지중이든,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교우들과 함께 이 구절을 나누었을 때,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사님, 저는 제가 몰라서 짓는 죄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것까지도 용서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저는 그 고백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죄가 많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그 모든 죄를 이미 덮으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성경을 읽는 공동체가 큰 힘이 됩니다. 혼자서는 놓치기 쉬운 진리를 함께 발견하며 은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주님, 제가 알게 지은 죄와 알지 못하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부지중의 잘못’도 기꺼이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의도치 않았을지 모르지만, 내가 받은 상처는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부지중”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부지중에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여전히 붙드시고 용서하시며, 날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오늘도 이 은혜를 붙들고 겸손히, 감사함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알게 지은 죄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고 지은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부지중에 범한 허물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유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 감사와 용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