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혐오, 끝없는 반목의 현실 앞에서, 베토벤의“장엄미사 Missa Solemnis”는 단순한 종교 음악을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간절한 기도로 들려옵니다.
이 작품에서 베토벤은 평화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 입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두려움과 불안, 희망과 간구를 모두 끌어안고“그럼에도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라고 끝까지 묻고 또 청합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웅장하지만 안락하지 않고, 숭고하지만, 결코 안이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증오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되묻고 있습니다.
장엄미사는 하나님께 바치는 미사이지만,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모두 함께 들어야 할 평화를 향한 인간의 양심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 독재 권력, 전쟁을 혐오했던 베토벤은,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황 속에서, 1823년 평화를 기원하며 최고의 대작“장엄미사”를 완성했습니다. 여러 작곡가의 미사곡 대부분이 미사 전례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과는 달리,“장엄미사”는 미사용이 아닌 연주회용으로 작곡된 대규모 악곡이어서, 실제 미사에 쓰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베토벤은 전체 작품 수에 비해 교회음악을 많이 작곡하지는 않습니다. 미사곡 두 곡,“장엄미사”와 오라토리오“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 Christus am Olberge”가 전부입니다.
대개의 미사곡처럼 베토벤의‘장엄미사’도 키리에 Kyrie(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글로리아 Gloria(대영광송)-크레도 Credo(사도신경)-상투스Sanctus(거룩하시다)-아뉴스 데이Agnus Dei(하나님의 어린 양)로 나뉩니다. 라틴어로 된 기도문들의 내용도 여느 미사곡과 다를 바 없는데, 그 많은 미사곡 가운데‘장엄미사’가 듣는 이들에게 유난히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모든 미사곡의 작곡자들도 물론 이 기도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기도문에 베토벤만큼 극적인 호소력을 불어넣은 작곡가는 없었습니다.베토벤 스스로가“장엄미사”를“나의 모든 작품 중 최고의 대작이다”라고 했습니다.
음악을 진정 사랑하고 후원했던 루돌프 대공 Archduke Rudolph of Austria과 베토벤은 깊은 우정을 맺었고, 베토벤은 대공에게 여러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대공이 올로뮈츠의 대주교 Erzbischof von Olmutz로 임명되자 베토벤은 대주교 취임식 때 연주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이 작품이 바로“장엄미사”였습니다.
그러나“장엄미사”를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1819년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해였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작곡한다는 건 초인적인 투쟁이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무렵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져서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작곡을 하기란 불가능했다고 전해집니다. 1820년에 대공의 취임식이 열렸지만‘장엄미사’는 미완성 상태였고, 연주 시간이 1시간 반에 달하는 이 대곡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난 1823년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지난 2005년 11월 4일 독일 드레스덴 성모마리아 성당 Frauenkirche Dresden에서 연주되면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단 사흘간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됐었습니다. 재건된 성당의 축성식 후 꼭 일주일 만에 성당에서 열린 음악회, 장엄미사의 선율은 새로운 평화의 상징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곡이었습니다.
“장엄미사”의 드레스덴 성당 연주 실황을 Youtube로 감상한 한 독자는 이렇게 소감을 밝힙니다.
The greatest, the most soulful, the most original, the most adventurous, the most all around superb composer of all time.
영화“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이 시작되며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장례미사에서“장엄미사”의 연주로 영화가 이어집니다. 저는 키리에(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 연주되면서 합창이 크레센토로 키리에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부분에서,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다른 미사곡에서는 들을 수 없는). 그리고 이 곡은 반듯이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ichard Wagner의 악극 Parsifal을 감상할 때처럼 …
베토벤의 장례식 행렬에 2만 명 이상의 빈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했으며, 빈의 모든 학교가 이날 휴교했다고 전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