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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원 군     

 

정 병규 / 광고디자이너 ,  소설가

 

  대원군은 조선시대 말, 고종 임금의 아버지였으며 10년 동안 섭정을 하다 쫓겨난 좋지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원군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부정부패를 없애고 개혁을 주도한 정치가이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 하지 못하고 쇄국정치를 하였으며 며느리 민비를 죽이려 했다는  나쁜 평가도 있다. 

  조선 말, 부패한 세도가 양반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었으며 왕실까지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왕족이었던 대원군은 세도가의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바보 행세를 하며 궐 밖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꿈을 숨기고 있었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철종이 아들이 없이 승하하자 본인의 어린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정치에 뛰어 들게 되었다. 

  그 동안 살면서 피해 받는 백성들과 양반들의 횡포를 경험하였기에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하였다. 매관매직을 일삼는 부패한 양반 관리 들을 쫓아내고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인재들을 등용하였으며 서민 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대신에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하였다. 또한 양반들이 당쟁을 일삼아 왔던 많은 서원을 철폐하였으며 과감한 개혁 정치로 나라를 쇄신시키려 노력을 하였다.  

  그 시대는 개화의 물결을 타고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시대였고, 인접해 있던 일본, 청나라, 러시아들이 수교를 빙자하여 조선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대원군은 쇄국 정책으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며 미국과 프랑스도 왔지만은 단호하게 대포를 쏘아 후퇴를 시켰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 재건을 위해 양반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자 신하들과 민비가 합세하여 대원군을궁궐 밖으로 쫓아내었다. 그로인해 개혁은 중단되었고 다시 세도가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개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민비는 시해를 당했으며 고종은 쫓겨났고 나라는 일본에게 잡혀 먹히는 치욕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약 대원군이 계속 집권했더라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한 이유는 수교를 하여 문물을 들여오는 것보다 나라를 굳건하게 만드는 개혁이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썩어있을 때 문을 열어주면 잡혀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은 겉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속으로는 곪아 터지고 있다. 경제 성장만을 부르짖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에 많은 비리와 부정부패들이 사회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전 국무총리를 지내 셨던 분이‘우리나라는 경제보다도 나라개혁이 최우선’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엄청난 비리들이 터져 나와도 환골탈태하겠다는 말만 하고 흐지부지 끝나 버린다. 

  한 통계에 의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래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높으신 분들은 깊이 통촉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