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정병규 / 광고디자이너 , 소설가
‘12426703’ 필자의 군번이다. 나이가 들어도 자동적으로 나온다. 70년대에 3년 동안 육군에 복무했었다. 그때가 나이로 보나 신체적으로 보나 인생의 절정기였고 앞으로 살아나가는 진로를 개척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 인생의 중요한 시기 3년을 시간만 죽이고 나왔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경험이다.
나는 미술대학을 다녔고 몸도 튼튼한 편이 못되어 군대 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미루다 보니 졸업을 하고서야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서울에 있는 부대에 행정병으로 배치를 받았다.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는 총은 넣어두고 볼펜만 들고 살았다. 내가 생각 할 때는 별로 중요치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체제여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만 하고 지냈으며 졸병 신분으로써는 아무런 창의적인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서무계여서 바깥에 나가 가짜 영수증 구해오는 일이 많았다. 쉽게 말해서 돈은 위에서 사용하고 아래에서 뒤처리를 해주는 일이다. 높은 분이 오시는 날이면 잔디밭에 초록색 페인트를 뿌렸으며 평소 식사시에는 국에 닭발만 보였는데 그 날은 몸통이 보였다. 군대를 갔다 와야 ‘진짜 사나이’가 된다고도 말하지만 실제로는 비리, 복종, 무사안일에 젖은 ‘가짜 사나이’가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돈이 많거나 고위층에 있는 자식들은 알게 모르게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이다. 요즈음 국회 청문회를 하는 것을 보면 병역비리들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지금도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이빨을 빼며 신체를 훼손 시키는 일들이 종종 있다.
사실 본인의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의무이기 때문에 싫어도 간다. 입대하는 날부터 제대 할 날짜만 기다리며 지낼 뿐이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별로 없다. 그래서 가끔 군 생활에 적응을 못해 자살을 하거나 사고를 내고 탈영을 하는 군인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인권을 유린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애국심이 강하고 군대가 체질에 맞아 말뚝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20개월 근무한다고 한다. 훈련을 받고 숙달이 되면 제대를 하고 또 신병을 훈련시키고 막대한 국방비를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미국처럼 모병제를 실시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것이 아닐까. 일반 직장 수준의 월급을 주고 좋은 혜택을 주면 일없어 놀고 있는 청년 백수들에게 반가운 일이 아닌가. 지금은 전쟁이 나도 예전처럼 군인들이 맞붙어 싸우는 것이 아니고 최신 무기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군대 가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을 억지로 붙들어 가서 허수아비로 만들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불하고 신념을 가진 군인들로 만들어 지면 더욱 굳건하게 나라를 지켜 내리라고 본다. <*> (chung526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