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제17회재미수필 문학가협회 공모 

장려상 수상작

 

   내가 오렌지를 처음 접한 것은 충청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지금부터 꼭 60년 전 일이다. 도로를 통행하는 자동차라곤 하루 종일 3~4대가 고작인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날도 동네 또래 너덧 명이 어울려 하교하던 길에 신작로에 멈추어 있는 미군 트럭을 보았다.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미국인들이었다. 그중에는 흑인 병사도 있었다. 우리는 경외심으로 가득 차 그 광경을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시시덕거리며 떠들면서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당시 우리들은 까까중머리에 모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등교하곤 했다. 책가방이 아닌 책보를 둘러멘 우리의 모습이 신기하였으리라… 또 콧물 닦는 손수건을 앞 고름에 달고 다니면서도 누런 콧물을 훌쩍거리는 모습이 이상하였을지 모른다. 그들은 뭔가 먹고 있었다. 타이어를 다 고치고 떠나면서 먹고 있던 것 한 개를 우리 쪽으로 던졌는데 그것이 그만 도랑에 떨어져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떠내려가는 그것을 줍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뛰었다. 우리들 중에 키가 제일 큰 꺽다리가 먼저 도착하여 집어 들더니“어이쿠! 폭탄이다~”겁에 질린 꺽다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냅다 집어 던지고는 줄행랑쳤다. 

   나는 내 주먹보다도 더 큰 그것을 집어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왠지 나는 개선장군이 된 기분이었다. 의기 양양하게 집에 돌아온 나는 큰형과 마당에 콩 다발을 깔아 놓고 도리깨질 하시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나에게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애야! 이건 폭탄이 아니고 미깡이여… 왜정 때 읍내 우체국장 딸이었던 요시꼬가 가끔 까먹던 것하고 똑같은거여…”“아이고! 똑똑헌 내 새끼…”어머니는 품 안에 나를 안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어머니는 그것의 껍질을 쉽게 벗기고 쪼개어 우리 5남매에게 두 쪽씩 나누어 주셨다. 그것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새콤달콤”,“사르르….”입 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맛있는 것을 그때까지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하늘나라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비스런 맛이었다. 새콤달콤하고 단단한 노란 껍질을 갖고 있는 그 신비한 과일을 먹어 본 이후로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동경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오늘은 여러분들의 국가 선호도를 조사하고자 한다. 내가 나라 이름을 호명하겠다. 호명하는 나라에서‘태어났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손을 들어라 모두 눈을 감되 절대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아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프랑스, 덴마크, 스위스, 독일 등 유럽 국가를 먼저 호명하시었다. 이윽고“미국-“을 호명하시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몰래 주위를 살폈다. 나 혼자만 손을 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호명하시었는데 살며시 훔쳐보니 반 학생 거의 모두가 손을 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창피하지 않았다. 평소 미국을‘은혜의 나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미국을 막연히 좋아했지만, 차차 성장하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바로는 미국은 우리 한국의 우호국을 뛰어넘어 피를 나눈 동맹국이었다.

   일제 강점기 35년 식민지 통치를 일본 히로시마와 나카사키 등 두 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고 우리에게 해방을 안겨준 미국이 아니던가? 6.25 동란때는 3년 동안 자국의 젊은이들을 3만 6천 명 이상을 잃으면서도 그 참혹한 전쟁에서 우리를 지켜 준 나라가 미국이었다. 

   종전 후 우리나라를 무상 원조 국가로 지정하여 옥수수 가루와 우윳가루, 치즈 등을 배급해주고 배곯고 있는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 준 미국이 아니었더냐? 춥고 배고팠던 시절- 주말에 외출 나온 미군을 보면“헬로우! 깁미 초콜렛”을 외치며 쫓아 다녔던 어린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미제는 X도 좋다.”라는 가슴 속 밑바닥까지 저린 기조가 깔려 있었는데 그 말속에는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 속에서 도움을 준 미국인한테 감사함을 전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 국민이 미국을 존경하는 것은 事大主義가 아니다. 한때는 모국에서 일부 젊은이들이“Yankee, Go home!”이라 외치며 시위한 적이 있었다. 배은망덕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 정도 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한 번쯤 돌이켜 보았으면 좋으련만… 맥아더 사령관은 종전 후“초토화된 한국이 戰禍(전화)를 복구하자면 족히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했다지 않는가? 

   미국이 어버이 나라는 아닐지라도 분명‘은혜의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도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70년이 넘도록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자유대한을 지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 이민 온 후 나는 옛 추억을 그리며 오렌지를 자주 사서 먹는다. Florida 産 오렌지도 먹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껍질이 얇아서 벗기기가 힘들었다. California 産은 그 껍질이 더 두껍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껍질을 쉽게 벗기셨던 것이다. 

   어렸을 적 미군이 우리에게 던져 준 그 오렌지는 틀림없이 California 産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California 하늘 아래에서 지금 20년 가까이 숨을 쉬고 있다.<*> leejiny0721@gmail.com

오렌지.jpg

 

 


  1. No Image

    이매진 (Imagine)-곽 설 리 소설가-

    눈을 뜨자 새벽하늘이 스르르 하루의 창문을 열고 있다. 새벽은 아직 어스름했고 쥐죽은 듯 고요했다. 아직 아침 새들이 찾아와 수다를 떨기 전. 하얀 백지 같은 공백의 시간이었다. 공백의 시간 뒤엔 적막이 검은 벨벳 휘장처럼 깔려 있다. 아직 도시가 잠이...
    Date2022.04.29 ByValley_News
    Read More
  2. No Image

    이름이 갖는 의미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류모니카-

    어렸을 때, 나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중학교 때부터이었던 것 같다. 내 코앞에서 선생님들이 나의 이름에 대한 일가견을 스스럼없이 펼쳤다. 기생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기생이란 조선시대 법적으로는 양민, 사회적으로는 천민대우를 받던 여성...
    Date2021.02.01 ByValley_News
    Read More
  3. 이 사람의 말-전세계 사로잡은 젤렌스키 연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이“푸틴의 총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외신은 그가 자국민을 비롯해 전 세계로 보낸 메시지를 두고“이 시대의 게티즈버그 연설”&ldquo...
    Date2023.03.29 ByValley_News
    Read More
  4. 욕쟁이 할매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햇살의 사랑을 품은 들풀들 사이로 족히 40년도 더 되어 보이는 허름한 판잣집 앞 오래된 나무 간판에 <욕쟁이 할매 국밥>이라고 써놓은 가게 안에는 오늘도 손님들로 시끌벅쩍합니다. 구수한 시래기 국밥 한 그릇에 빨갛게 익은 깍두기를 얹어 먹으며 얼기설...
    Date2022.02.01 ByValley_News
    Read More
  5. No Image

    온 노멀 시대, 가을을 앓다 -조옥동 시인, 수필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눈을 뜨면 밝은 햇살이 마치 내 기상을 기다리는 듯 침실 커튼 아래 앉아 있다. 제일 먼저 신선한 아침공기를 맞으려 발코니로 통하는 거실 문을 열면, 요즘 창문 밖에는 낯선 손님들이 찾아와 기다린다. 색깔도 모습...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6. 오월이면 더 그리운 어머니 -소설가 윤 금 숙 -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피천득- 어떤 이는 봄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낙엽 지는 가을을 좋아한다. 각자의 취향이지만 봄보다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어쩐지 우수에...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7. 오렌지 - 수필가 이진용 -

    제17회재미수필 문학가협회 공모 장려상 수상작 내가 오렌지를 처음 접한 것은 충청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지금부터 꼭 60년 전 일이다. 도로를 통행하는 자동차라곤 하루 종일 3~4대가 고작인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날도 동네 또래 너덧 명이 어...
    Date2023.02.26 ByValley_News
    Read More
  8. No Image

    영어속담 한국속담;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김순진 교육학박사-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There is no accounting for tastes. 수많은 한국속담을 읽어 내려가다가, 내가 처음으로 반가운 느낌을 받은 속담이다. 사회적 신분에서는 물론 모든 가치체계에서 위계질서가 굳게 자리 잡고 있던, 전통 한국 사회에서, 평...
    Date2022.02.01 ByValley_News
    Read More
  9. No Image

    영어속담 한국속담: 초가삼간 다 타도... -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타 죽어서 시원하다. He got angry with the fleas and threw his fur coat into the oven. It's like burning one's house to get rid of the mice. Don't cut off your nose to spite your face. 빈대는 날지도, 뛰지도 ...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10. No Image

    영어속담 한국속담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티끌 모아 태산이라. " From small things a great heap is made. Light gains makes a heavy purse. 티끌 같이 작은 물체라도 꾸준히 모으면, 언젠가는 태산 같은 거대한 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친숙한 속담으로, 아무리 적은 푼돈이라...
    Date2021.07.24 ByValley_News
    Read More
  11. No Image

    영어속담 한국속담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핑계 없는 무덤 없다> There's reason in all things.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무덤에 묻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관례였다. 하지만, 삶의 끝에서 죽는다 것은, 예외 없는 운명이지만, 죽음을 맞게 된 원인은 사람마다 다를...
    Date2021.08.26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영어속담 한국속담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The sky may fall, but there is still a way to escape alive. Where there is life, there is hope. When misery is highest the help is nighest. As long as there is breath, there is hope. When all is lost, the ...
    Date2021.10.05 ByValley_News
    Read More
  13. 어머니날 글- 아름다운 사람들

    5월은 가정의 달.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사랑에 감사하는 계절. 코로나 때문에 길게 이어진 고립과 비대면 생활,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뉴노멀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 사회적 혼란 등을 겪으며 사람들의 심성이 많이 날카롭고 모질어져 갑...
    Date2021.04.28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알아두세요: 세계 각국 5월의 재미있는 기념일

    자료: Allison+Partners 세상에는 우리가 몰라서 그냥 지나치는 기념일이 참 많다. 단순히 재미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상업적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기념일도 많다. 아무려나 하루하루를 기념하고 축하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런저런 기념일...
    Date2023.04.26 ByValley_News
    Read More
  15. No Image

    안다는 것은? - 곽설리 소설가

    오전이면 습관처럼 전화를 하곤 했다. 그날도 평소대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하게도 전화가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전화를 바꾸었거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게 분명했다. 더 이상 그녀...
    Date2020.02.22 ByValley_News
    Read More
  16. 아버님의 여자 -소설가 김영강-

    오늘이 아버님 장례식 날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민지는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다.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돌멩이가 얹혀 있는 것 같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법적으로 어엿한 아버님의 부인인 여자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
    Date2021.02.25 ByValley_News
    Read More
  17. No Image

    아래로 피는 꽃 - 김화진

    아래로 피는 꽃 김화진 <재미수필문학가 협회 회장> 마당이 초록빛으로 출렁인다. 지난 겨울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봄과 함께 뒤늦게 찾아와 땅을 적셨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들풀들이 한꺼번에 키 자랑이라도 하듯 매일매일 커 간다. 시골스러운 내집 넓은 마...
    Date2018.11.02 ByValley_News
    Read More
  18. No Image

    아~보이지 않는 몰래 코비트 19 -박복수 시인-

    아ㅡ 삶의 아픔을 이겨내려는 ‘몸부림’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숨 막히는 가슴이여 지루한 하루, 당신의 몸부림 어느덧 잠꼬대로 신음하는 성난 파도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절규하듯 공어한 선언이여 아, 나도 빨리 잠들어 저 고통을 나눠야지 여보...
    Date2021.06.23 ByValley_News
    Read More
  19. No Image

    아- 보이지 않는 몰매, 코로나 19 -박복수 시인, 문인 -

    이겨 내려는 몸부림 그러나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는 숨 막히는 가슴이여 지루한 하루, 당신의 몸부림 어느덧 잠꼬대로 신음하는 성 난 파도 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절규 하듯 공허한 선언이여 아- 나도 빨리 잠들어 저 고통을 나눠야지 여보 꿈 꾸었어요? 꿈 같...
    Date2020.10.02 ByValley_News
    Read More
  20. 시대의 별 이어령 선생이 남긴 말들

    시대의 지성, 우리 시대의 스승, 진정 시대를 앞서간 분으로 존경을 받은 이어령 선생은 많은 말을 남겼다. 디지로그(digilog), 생명 자본, 축소지향의 일본인, 가위바위보론, 보자기 문화론,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등… 그가 남긴 말들은 어제...
    Date2022.03.31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