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장소현 작가의 신작 소설집 『그림 그림자』를 탐독하며 내 마음에 담은 구절이 있다.

  “나는 요즈음 자화상을 그리려고 발버둥 치고 있네. 지나온 자취들을 되돌아보고 나는 도대체 어떤 중생인가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

나 때문에 아팠던 사람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야겠지…” 

                        -<자화상 그리기> 중에서

 

  그는 자화상을 그리려고 거울을 보았다. 웬 낯선 남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지만 뉘신가요?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였던가요?” 

  이렇게 묻고는 그는 끝내 그리지 못하고 말았다고 했다.

  저자는 미술과 문학 전공자로 시집, 희곡집, 소설집, 칼럼집, 미술책 등 27권의 저서와 50여 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을 ‘문화 잡화상’이란 표현을 쓰고 문인들은 그를 ‘나성 문화재 1호’라 부른다.

  천의 얼굴을 가진 광대로 그는 어떤 얼굴 모습이 그의 진짜인지 헷갈렸는지. 삶의 철학에 도달한 자화상을 그리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했는지.

 

  많은 화가는 젊어서부터 자신을 그렸다. 보이는 얼굴 안에 그들은 영혼을 담아 자화상을 그렸다.

  청년 고흐 자화상은 나를 섬뜩하게 한다. 그는 과감하고 거친 터치로 내면의 불안과 마주했다. 화가에게 내가 말한다. 

  “천재 화가님, 자학이 격해서 힘드네요.“

  렘브란트 말년 자화상에 내 눈이 오래 머문다. 붓으로 잔잔하게 그린 그림에서 균형미와 인간미를 느낀다. 그와 눈을 맞추면 연민의 눈으로 노 화가는 나에게 말한다. 

  “국화야, 참회할 시간이 많지 않아.” 

  내 얼굴이 땅끝을 본다.

  장소현 작가는 본문에서 조선 윤두서의 자화상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총구 같은 벌건 눈에서 총알이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윤두서의 표정. 한국화의 걸작으로 뽑힌다. 덥수룩한 수염의 한올 한올에서도 그의 심상이 드러난다. 당파의 벽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한(恨)의 표출인지 모른다. 글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이니 단칼 같은 빛이 보인다.

 

  젊은 시절 한때 그림을 그렸지만, 나는 자화상을 그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얼굴의 겉과 안. 지지부진한 삶에서 내 얼굴에 그림이 있었을까.

  세월은 삭풍을 동반하여 나의 희로애락도 춤을 추었다. 인생의 뿌리를 2번이나 옮겨 심으면서 생겨난 여러 풍경이기도 했다. 부부 사이의 틈은 나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혼자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가을낙엽은 낭만이 아니었다. 그때 시상(詩想)을 자화상으로 남길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는 안정기에 드는가 했다. 나의 장편소설은 2편쯤으로 끝냈지만, 단편들은 계속 생산되었다.

 

  내가 말수가 적고 시무룩하면 딸은 묻는다. 

  “엄마 또 무슨 일 있어요?” 

  세상사는 방식이 헐렁해서 돌부리에 걸리고 뒤통수 맞는 일도 생겼다. 나사들이 닳아서 그런지, 아니면 잘 맞지 않는 것을 대강 맞추어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에피소드를 달고 산다고 딸의 눈빛은 떨떠름하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식음을 전폐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때 나의 자화상도 그림이 될 만했다. 허탈한 내 얼굴에 겹겹한 우수의 그림자들.

  태생적으로 나는 동물성이기보다 이슬방울이 맺힌 식물성이다.

  꽃이라면 검붉은 장미나 보랏빛 수선화과는 되지 못했다. 내 삶은 밟아도 일어서는 잡초였다가 해바라기 같은 삶을 택하지 않았을까. 해를 따라가며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화’로 글을 쓰면서는 내 얼굴에도 글자 무늬가 그려졌다. 글자 사이로 장례식장의 노란 국화가 보였다. 죽은 냄새를 중화시켜 보라고 국화에게 말해 주는 것 같다.

  나이의 무게가 버거운 요즈음이다.

  나도 장소현 작가처럼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말을 걸었다.

  “정숙 씨인가요? 국화 씨인가요?” 

  말년에는 국화로 살기로 했으니 국화 얼굴을 그릴까. 연필을 들었는데 내가 너무 많아 어른거리기만 한다.

  정숙으로 산 세월은 프리다 칼로처럼 내 가슴에 몇 개의 못을 박았었다. 오늘 보니 생선 가시였고 흐물거렸다. 찌르지도 못하니 더 이상 가시도 아니다.

  나에게도 흘러간 자화상은 여러 개 있었다. 별로 남기고 싶지 않은 것들이기에 없어서 좋았다.

  내 얼굴은 나는 볼 수가 없기에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 작가가 말했다.

  남의 얼굴만 보고 살았기에 나에게 남아 있는 자화상이 있다.

  박경리나 박완서 작가의 말년 모습이 좋다. 같은 여성으로 거친 삶이 만나는 지점들도 많았다. 풍진 세월을 걸레질하며 버릴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는 그 표정을 담으면 좋겠다.

  나는 두 여성 작가를 모델로 삼았으니, 나의 자화상은 단순할 수밖에 없다.

  윤곽만 그린 국화 얼굴에 텅 빈 하늘을 담을까.<*>


  1. No Image

    호랑이에 대한 속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깊은 시골에 있는 사람조차도 저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찾아온다는 뜻으로, 어느 곳에서나 그 자리에 없다고 남을 흉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 ▲세 사람만 우겨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 여럿이 떠들어 소문내면 사실이 아닌 ...
    Date2022.01.06 ByValley_News
    Read More
  2. 호랑이 형님 -<아동문학가> 방정환-

    이 글은 잡지 <어린이> 1926년 신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편집자 주> 옛날 호랑이 담배 먹을 적 일입니다. 지혜 많은 나무꾼 한 사람이 깊은 산 속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길도 없는 나무 숲속에서 크디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며칠이나 주린 듯싶은 무서운...
    Date2022.01.06 ByValley_News
    Read More
  3. 헤어질 시간 - 조성환

    그날이 다가온 것 같다. 외출할 시간, 내 딴에는 조심스레 현관문을 나설 참이었는데 기미를 챈 모모는 마른 다리를 일으켜 후들거리며 일어서려다 만다. 그는 다 소모되어 꺼져버린 전구처럼 암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력을 다해 흐릿한 한쪽 눈을 치뜨...
    Date2023.11.06 ByValley_News
    Read More
  4. No Image

    하루 -<수필가>김화진-

    오랜만에 봄을 노래하는 비가 내린다. 점점 마당의 풀빛은 더욱 진한 초록으로 바뀌어갈 것이고 우리의 마음엔 잔잔한 따스함이 퍼지리라. 얼마 전 성급하게 피어난 아몬드꽃이 행여 빗줄기에 떨어지면 어쩌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내...
    Date2021.03.29 ByValley_News
    Read More
  5.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정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드골 대통령이 1970년 서거(逝去)했다.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장(家族葬)으로 해라.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례(參禮)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라. 2차 대전(大戰) 전쟁터를 같이 누비며 프랑스 해방(解放)을...
    Date2022.08.02 ByValley_News
    Read More
  6. 톨스토이, 행복의 여정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다. 톨스토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1천여명의 농노를 거느린 영지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그의 어...
    Date2022.09.02 ByValley_News
    Read More
  7. No Image

    태평양 예찬론 -이진용-

    나는 태평양을 좋아한다. 우리 한국인에게는‘은혜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이 하와이 진주만 미 해군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함으로서 종료된다. 미국의 핵폭탄 ...
    Date2024.01.29 ByValley_News
    Read More
  8. No Image

    태양은 다시 뜨고 -박복수 시인-

    환희의 새날 태양은 다시 뜨고 새로운 도약을... 조용히 나래 펼치는 2022년! 새 달이 밝아왔습니다. 역사의 장에 메아리쳐 오는 당신 소리에 귀를 밝히면 뛰는 맥박을 읽을 수 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온 한 민족의 역사가 새 달의 다짐 앞에 모아진 당신의 ...
    Date2022.02.01 ByValley_News
    Read More
  9. No Image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김 순 진 교육학 박사-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An apple does not fall far from its tree. Eagles do not breed doves. Egg-plants never grow on cucumber vines.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온다는 당연한 자연의 현상을 말하고 있다. 사과는...
    Date2022.06.02 ByValley_News
    Read More
  10. 천국으로 이사한 친구를 그리며 -강 완 숙-

    금년 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오랜 세월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함께했던 친구는 나에게 믿음의 대선배요, 존경하는 권사님이요, 또 언니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분이었다. 나 혼자서만 비밀스럽게 진실한 친구이며 롤...
    Date2022.10.31 ByValley_News
    Read More
  11. 천 번째 편지 -고 희 숙 -

    오늘도 우체통에서 빨갛고 파란 항공우편을 꺼내드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달에 두 번씩 한국에서 보내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섯 형제 중에 나만 혼자 미국에 와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연서(...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12. No Image

    책임을 잘 지키는 삶

    책임을 잘 지키는 삶 - 김승완 <Canoga Park> 거주 우리들은 우리의 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다. 우리들의 책임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다. 우리들은 책임의 중요성을 먼저 알고,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책...
    Date2018.09.07 ByValley_News
    Read More
  13. 지울 수 없는 이름, 가족 - 김 화진

    지울 수 없는 이름, 가족 김화진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드라마 시청은 중독성이 있다. 혼자되신 친정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동안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는 일은 일상의 큰 과제였다. 당시엔 유난히도 역사극이 많았는데 아버지 또한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
    Date2018.09.07 ByValley_News
    Read More
  14. No Image

    지금, 살아있음이 행복이다

    1991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부부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끝내 죽고 말았다. 당시 75세의 남편 던컨과 68세의 아내 체이니 부부는, 자녀들의 노력 끝에, 죽은 지 2개월 뒤인 5월 1일에야 시신으로 발견...
    Date2022.08.02 ByValley_News
    Read More
  15. No Image

    존경받는 어른 -김 용 (한울 운동 대표)-

    철학의 원조라고 알려진 소크라테스는“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2천4백 년이 지나 과학이 많이 발전해 우리 자신이 의학적, 철학적으로 해명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생명이 있어 살아 움직입니다. 생명은 삶의 욕망이며 그것...
    Date2022.06.02 ByValley_News
    Read More
  16. 장소현의 짧은 이야기 모음 <철조망 바이러스>를 읽고 -칼럼니스트 최정임-

    1월 한 달 간 두 권의 읽고 있던 책을 끝내고, 장소현의 짧은 이야기 모음<철조망 바이러스>를 읽게 되었다. <철조망 바이러스>의 교감은 명치끝을 울리며 한국인임을 타종한다. 시집에서 희곡에서 <문화의 힘>에서, 어떤 글에서든 한국인을 뼛속까지 침잠하...
    Date2022.03.03 ByValley_News
    Read More
  17. No Image

    작은 천사의 선물_감동의 글

    어린 소년이 추위에 대비한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준비됐어요.” 목사인 그의 아버지가 묻습니다. “아들, 무슨 준비냐?” “아빠, 밖에 나가서 전도지를 나눠 줄 시간이에요.” “오늘은 매우 춥고 ...
    Date2021.12.01 ByValley_News
    Read More
  18. No Image

    자화상(自畵像) - 수필가 국화 리/ 이정숙-

    장소현 작가의 신작 소설집 『그림 그림자』를 탐독하며 내 마음에 담은 구절이 있다. “나는 요즈음 자화상을 그리려고 발버둥 치고 있네. 지나온 자취들을 되돌아보고 나는 도대체 어떤 중생인가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 나 때문에 아팠던...
    Date2023.11.30 ByValley_News
    Read More
  19. 임윤찬이 할리웃보울에 온다 -소설가 곽설리 -

    한국의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8월1일 할리웃보울에서 LA 필하모니와 협연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LA 필의 지휘는 전 세계가 그녀의 지휘를 기다린다는 한국의 여성거장 마에스트라 성시연이 맡는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반갑다. 더구나 임...
    Date2023.04.26 ByValley_News
    Read More
  20. 이어령 <눈물 한 방울>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많은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눈물 한 방울>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눈물 한 방울’이었다.” 이 책은...
    Date2022.09.27 ByValley_News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