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편지
이해인 수녀, 시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맑고 환하게 트인 봄을 맞았으면 정말 좋겠는데, 야속하게도 코로나가 가로막아서네요. 잦아들기는커녕 이런저런 변이가 튀어나와서 극성입니다.
‘플루로나’라는 새로운 병도 등장했지요. 독감 인플루엔자(influenza)와 코로나(corona)의 합성어랍니다. 계절성 독감인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에 동시 감염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죠.
코로나19가 2월쯤에는 진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습니다. LA카운티 공공보건국(LACDPH) 바버라 페러 보건국장이 그렇게 전망했습니다. 백신과 부스터샷으로 어느 정도 면역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곧 힘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밝은 전망과 달리 현실은 그렇게 희망적이지 못한 것 같네요. 존스홉킨스대학은 지난 1월7일 현재 전 세계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3억명을 돌파했고, 누적 사망자는 549만명에 달했다 밝혔지요. 게다가 워낙 변수가 많아서...
어차피 역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리라는 전망이 강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는 퇴치 불가능하므로, 뉴노멀(새로운 표준) 공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전문가들은 뉴노멀의 첫걸음으로, 코로나를 독감을 포함한 여러 호흡기 바이러스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코로나와 함께 사는데도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바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지난 시간을 차근차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역병에 시달리며 잔뜩 움추려 사는 동안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달라진 인간관계와 고독에 익숙해지는 지혜일 겁니다.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면서, 거리두기와 비대면, 재택근무 등이 생활화되고,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멀리하는 버릇에 익숙해졌습니다. 집구석에 꼭 틀어박혀 혼밥, 혼술, 혼놀… 하는 동안 혼이 날아가 버린 것이나 아닌지?
현대인의 고약한 병인 고독이 코로나 때문에 한층 더 심각해진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찾는 예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은 지난 2018년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했습니다. 일본도 2021년 2월에 고독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고독의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고독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그 폐해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크면 장관급 부처를 새로 만들었단 말인가? 영국 정부는 고독부를 신설하면서“고독도 병이다. 고독은 이제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국가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고독감은 현대인의 피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고독한 감정을 얼마나 자주, 어느 정도 느끼는가에 따라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약 33%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고독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중 약 14%는 항상 고독감을 느낀다고 답해 고독감에 의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고독감에 따른 통증을 호소하는 미국 성인도 적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고통을 수반하는 고독감과 장기적인 고독감은 심각한 질병이며, 건강과 삶의 질을 해치기 때문에 적절한 해결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인 역시 고독감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고독감을 느끼는 기독교인의 경우 일반인보다 고독감에 따른 통증이 오히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가 31% 돌파하여, 고독병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인 가구는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될 가능성이 높지요.
외로움은 현대사회의 새로운 전염병입니다. 백세시대를 맞으며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는 곧 고독 사회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생활 양태와 복지 제도는 모두가 가족과 결혼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생활이 개인 위주로 돌아갑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놀고…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코를 박고 살고 있으니, 남과 잘 어울리는 슬기로운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지요.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하는 법도 익히지 못합니다. 마주 앉아서도 전화기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식이니 말입니다.
이민생활은 한결 더 외롭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나그네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지요.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아직 심각하게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바닥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예를 들면 우울증 같은 것…
그래서 교회를 비롯한 다양한 친목단체나 공동체, 사교모임들의 의미가 소중해집니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고독감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해답도 알고 있지요. 가족 간의 사랑, 우정, 자존감, 진정한 소통, 인간관계와 사회적 유대, 상대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눈빛과 목소리, 표정에서 나오는 감각을 직접 경험하는 것, 베풀기, 봉사활동 등등…
최근에는 발룬티코노미스트 적(봉사+경제활동) 삶을 권장한답니다. 자기 스스로 사회적 필요성을 유지하면서 찾아갈 곳, 찾아오는 이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자기만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면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일의 보람도 찾는 것이지요.
아무려나, 이제 그만 움추림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움직여야겠습니다. 너무 겁내고 미루지 말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전화도 걸고, 편지도 쓰고…
“죽기 전에 몇 번을 더 만날까”라는 마종기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특히 한국에 사는 오랜 벗들, 또는 부모님들…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전화나 편지라도 자주 해야 할 텐데…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통화할 수 있을까? 한 달에 한 번 전화하면 1년에 겨우 12번, 큰마음 먹고 매주 한 번씩 건다 해도 1년에 고작 52번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별 용건이 없는 이유로 자주 걸지 못합니다. 다음에 걸지 하며 미룹니다. 편지는 더 하지요.
미루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디 한국에 있는 친구들뿐인가요, 같은 미국땅 나성골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자주 못 만나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 아닌가요? 다음에 만나지 하고 미루지 말아야겠습니다.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봄이 향기롭게 무르익고 있습니다. 비 온 뒤 풀과 나뭇잎의 색깔이 너무도 곱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꽃구경도 하고 바다 냄새도 맡으러 나서야겠습니다. 마스크 잊지 말고, 조심조심… <*>